"난 포르노 주인공이고 싶다" 그 후 25년, 서갑숙의 지금

김나한 2024. 10.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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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갑숙을 아시나요. 1999년 자전적 에세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써 세기말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배우입니다. 지금은 ‘성(sex)’이 예능에서도 단골 소재이지만, 90년대엔 달랐습니다. 커다란 금기였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래지 않습니다. 고 마광수 교수가 92년 『즐거운 사라』라는 ‘야한 소설’을 썼다고 투옥됐습니다. 7년 뒤 서갑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주에 사는 그를 만나 책 한 권으로 경력이 끝장나고 여자로서, 엄마로서 지탄받던 시절을 돌아봅니다.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요.

배우 서갑숙의 삶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지난 7월 말 제주시 구좌읍에서 그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 서갑숙씨 어떡하죠? 위에서 당장 갑숙씨 빼라고 난리예요. 아무래도 오늘 촬영은 안 되겠어요…. " 1999년 10월 22일, KBS 드라마 ‘학교’에서 음악 교사 역을 맡고 있던 나는 평소처럼 녹화 장소인 KBS 세트장에 들어섰다. 그런 나에게 달려온 젊은 감독의 목소리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이 묻어났다.
" 나를 당장 빼라고요? 그게 무슨…. " 되물으려던 순간, 이곳에 오면서 들은 뉴스가 머리를 스쳤다.

‘교보문고, 서갑숙 성 고백서 전량 반품 결정’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비판 받고 있다는 경향신문 기사.

국내 최대 서점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흘 전 출간된 내 책의 판매를 거절했다. 영풍문고와 을지서적 등 또 다른 대형 서점들도 내 책을 판매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드라마에서 나가라니…. 멍하니 있는 나에게 이번엔 동료 여배우들이 다가와 채근했다.
" 어머 언니 어떡해. 얼른 위에 올라가서 잘못했다고 그래 봐 좀. " " 함께 촬영을 못 하게 돼 서운하기는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한 거니? " 내 말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를 둘러싼 동료 중 한 명이 입을 뗐다.
" 언니…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 사고를 쳐 놓고는 왜 당당하냐는 말로 들렸다.
" 나는 내가 죄를 지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할 것 같아. " 짧게 답하고 그 길로 돌아서 촬영장을 나왔다. 돌아보면 그때가 배우로서 나의 경력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배우 서갑숙 하면 이 책을 떠올린다. 그들은 지금도 나에게 ‘포르노그래피’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들어간 책을 왜 썼는지 묻는다.

책을 내고 온 세상으로부터 매 맞는 듯했던 두 달, 나의 해명은 어디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그 책을 쓴 이유는….

서갑숙 본인의 유년 시절, 심장판막증을 진단 받은 청소년기, 이로 인해 우울에 빠져 있던 대학 시절, 탤런트가 된 후의 삶 이야기가 실렸다. 목차로 짐작할 수 있듯 각 시기에 저자가 겪은 연애·섹스 이야기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책 출간 뒤 교보문고가 밀봉 판매하지 않으면 전량 반품하겠다고 출판사와 맞서며 유명세를 탔다.


나는 왜 썼나


서갑숙은 1982년 MBC 공채 탤런트 15기로 데뷔했다. 90년대 안방 스타로 한창 활동하던 때의 모습. 중앙포토.
나는 1999년 3월부터 약 6개월간 이 책의 원고를 썼다. 나는 세 가지 작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벗는 작업, 그리고 이 책 논란 직후에 발간된 누드 에세이를 통해 몸을 벗는 작업,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작업.

책은 그중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10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심신이 피폐하던 때 만난 새로운 사람이 나의 생활을 정상 궤도에 올려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문득 연애와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감성적이었던 나에게 사랑과 성을 다루는 1990년대 분위기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성은 인간으로서 가진 본능인데 당시 아내는, 딸은, 어머니는 그런 걸 감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는 사랑의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운동장에서 내놓고, 부끄러워 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이해해 보자고 하고 싶었다.

물론 겁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선 나보다 앞서 이미 마광수 교수, 장정일 작가, 이현세 만화가 등의 작품이 음란하다며 온갖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논란은 예상했지만 비난의 정도는 내 각오를 넘어섰다. 나는 ‘학교’ 촬영장에서 쫓겨나듯 나온 지 사흘 만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내가 왜 책을 쓰게 됐는지 진심 어린 해명을 하면 받아들여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자청한 기자회견, 날 선 질문들


10월 25일 서울 정동 세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수십 개 매체가 몰려들었다. 마이크 앞에 앉자마자 날 선 질문들이 날아왔다.
서갑숙씨는 책 발간 열흘 뒤인 1999년 10월 25일, 논란에 대한 해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중앙포토
이 책의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입니까?
A : 저는 사랑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사랑이 삶의 처음이고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억압된 성을 밝은 장소로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

Q : 돈 때문에 책을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A :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정말로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저에게 많은 데미지를 주는 이런 방법이 아닌, 보다 안전하고 은밀한 방법을 택했을 겁니다.

Q : 연인과의 성관계를 찍은 영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상대 남성이 그걸 공개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A : … 난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모든 신문·방송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그들은 주로 ‘공인의 아내’로서 이런 책을 썼느냐며 전남편인 배우 노영국씨를 거론했다. 혹은 당시 12세, 9세던 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냐는 물음도 나왔다.

난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질문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난 가정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철저히 피했다. 내가 겪어온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노영국씨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좋은 기억에 관해서만 서술했다. 그는 실제로 좋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후배의 전화 “검찰 내사 들어갔대”


숨 가쁜 인터뷰에 응하는 동안 한국간행물윤리위에서는 내 책의 판금 여부를 심사하고 있었고, 연예인 노조에선 방송 3사에 나를 출연시키지 말라는 요청 공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심란하던 와중에 정치부 기자를 하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 선배, 검찰에서 책 내사 들어갔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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