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뭄으로 배추 말라죽어, 세 번 심어도 소용없어"

옥천신문 양수철 2024. 9. 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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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 농작물 피해] 가을폭염-가뭄-병해충 기승...농민 시름 "밭 갈아엎고 싶은 심경"

[옥천신문 양수철]

 “폭염·가뭄·병해충에 속수무책, 배추 등 수확기 농산물 비상” 가을 수확기 채소농가가 가을폭염·가뭄·병해충 등의 악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사진은 면 지역 배추밭이다. 벌레가 배추 잎을 갉아먹은 모습을 볼 수 있다.
ⓒ 옥천신문
추석 이후까지 이어진 이례적인 폭염에 채소 농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늦더위를 비롯해 가뭄·병해충으로 인해 배추·파·고추 등 김치에 쓰이는 작물은 물론 쌈채소 등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거나 병충해 피해를 입는 등 기후위기가 농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상황이다.

9월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9월 중순(9월 11일~20일) 기온은 27.1℃로 평년 기온인 20.9℃보다 6.2℃ 높다. 특히 최고기온도 평년보다 5.5℃ 높은 31.5℃이고, 최저 기온도 평년보다 7.3℃ 높은 24℃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9월의 경우에는 10일·14일·17일·18일 옥천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바 있다. 9월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추풍령기상대 기준).

문제는 이례적인 늦더위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뭄·병해충 등은 농작물의 생육 패턴은 물론 농민들의 농업 방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늦더위 피해는 수확철을 앞둔 김장채소 위주로 발생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 면 지역에서 5000평 밭에 배추 농사를 짓는 A씨는 전체 경작지에 절반 가량 피해를 봤다고 예상한다. 폭염과 가뭄으로 심는 족족 배추가 말라 죽는 탓에 두 번이나 다시 심고 물을 줬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평년 같으면 배추를 심을 시기나, 키울 때 비가 적당히 왔지만, 올해의 경우 날은 뜨거운데 비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배추가 잘 자란다 싶으면, 각종 벌레가 달라붙어 잎을 갉아 먹어버렸다.

"9월에까지 이렇게 날씨가 더운 건 처음"

지난 9월 24일 오후에 A씨의 밭을 찾았다. 배추가 자라지 못한 채 벌레가 이파리를 갉아먹어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거나, 줄기까지 갉아 먹은 모습이었다.

A씨의 경우 5000평 밭에 배추를 심기 위해 투입한 생산비는 대략 계산해도 1700만 원 이상이다. ▲모종값 약 400만 원 ▲멀칭비닐 약 125만 원 ▲멀칭 비닐을 깔고, 배추심는 등 인건비 약 250만 원 ▲스프링쿨러 구입비 약 600만 원 ▲비룟값 약 200만 원 ▲농약값 약 120만 원 등을 투입했다. 대부분의 자재를 농협에서 외상으로 구입했는데, 배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인 타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A씨의 말이다.

"9월에까지 이렇게 날씨가 더운 건 처음이다. 통상 8월 중순이나 말에 배추를 심는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일부러 9월 초까지 늦춰서 심었는데도 너무 덥다. 스프링클러를 계속 가동해도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소용이 없다. 밤에도 더우니 저온성 식물인 배추가 자라지 않는 건 당연하다.

배추가 좀 크려고 하면 벌레가 와서 다 먹어버린다. 솔직히 밭을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다. 옥천의 경우 배추농가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배추 농사를 짓는 B씨도 "4000평 배추밭 중 70%는 피해를 본 것 같다"며 "봄철 옥수수를 심자마자 가뭄피해를 입고, 감자도 장마 때문에 피해를 봤다. 배추까지 이렇게 되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배추 90톤 이상 수확을 목표로 규모를 늘렸는데, 30톤 정도 생산하면 다행일 지경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장에 들어가는 다른 채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파 농사를 짓는 C씨는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다. 너무 가물고 비가 안 와서 생각대로 농사가 안 됐다"며 "모종이 계속 죽으니 사람들이 종묘사에 가서 모종을 계속 산다. 종묘사도 지금 모종이 동이 났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늦더위에 병충해도 기승, 농민들 시름 깊어져

늦더위로 인해 병충해도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특히 관행농보다 유기농·친환경 농가에 피해가 크다. 농민들은 "요즘 밭에 벌레가 '창궐'하는 것 같다"며 병충해 피해도 호소하는 상황이다.

고추 농사를 짓는 안남 제판권 농민은 "덥고 가물었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고추생산량이 20~30%는 줄어든 것 같다"며 "평년 대비 일주일 가량 빠르게 고추 농사를 정리했다. 숨멎이병, 담배나방, 총체벌레 등 병해충이 말도 못하게 늘었다"라고 전했다.

유기농 쌈채소 농장을 운영하는 D씨의 경우 200g짜리 쌈채소 모음은 지난해 8월에 1401개, 9월에 1105개를 각각 생산했는데, 올해의 경우 8월에 1005개, 9월에 832개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70% 수준으로 떨어진 것.

D씨는 "봄에는 진딧불, 9월 중에는 청벌레, 근심이, 쥐며느리 등이 이파리와 새순을 갉아먹어서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많지 않다"며 "쌈채소를 한번 심으면 통상 40~50일 동안은 사는데, 올해는 벌레가 너무 많고 날씨도 덥다보니 금방 죽는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속 농가소득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 필요
 9월 24일 오후 서울 한 시장에 배추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기후위기로 인한 날씨 변화로 농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오는 상황 속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농업 피해에 대한 보다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농사를 짓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은 아니지만, 농산물과 농업을 공공의 영역으로 보고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더 강화돼야 한다"라며 "농업정책에 정부 개입이 심한 이유는 농업이 공공재이고 시장의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농민들 또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덜 쓴다던지, 땅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나서며 기후농정을 펼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현철 옥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기후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일일이 대응하는게 쉽지는 않지만, 농업 재해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황규철 옥천군수는 "농가 피해 현황을 계속 파악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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