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논객도 칭찬한 생중계 업무보고, '조선'은 "직장 갑질"...실제는 이렇습니다
[임병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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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업무보고, 생중계를 통해 대통령의 질문과 기관장과 담당 공무원의 답변과 보고가 실시간 방송됐다. |
| ⓒ KTV 유튜브 갈무리 |
[질타 사례] "계산도 안 해봤나?"... 준비 안 된 기관장의 진땀
이번 업무보고는 준비된 자에게는 파격적인 기회를 안겨주었고, 안일한 자에게는 가혹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 속에서 칭찬과 질타의 대상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수천억 사업인데..." (최문규 한국석유공사 직무대행)
지난 17일 한국석유공사 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대왕고래'라 불리는 동해 유전개발 사업을 도마 위에 올렸습니다. 이 대통령이 "생산 원가가 높다면 채산성이 없을 텐데, 생산 원가를 계산해 봤느냐"라고 묻자 최문규 석유공사 사장 직무대행이 "변수가 많아 계산해 보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사업 자체를 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변수가 많아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업에 수천억 원을 투입할 생각이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국책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려 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책갈피 외화 검색" 설전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지난 12일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보고에서는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전 자유한국당 의원)과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대통령이 "1만 달러 이상은 해외로 반출할 수 없는데, 100달러 지폐를 책갈피처럼 끼워 나가면 안 걸린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질문하자 이 사장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대통령으로부터 "말을 길게 하십니다"라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추후 이 사장은 SNS를 통해 반박에 나섰습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하고 뒤에서 딴소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관련 기사를 보다가 댓글을 봤다. 관세청과 공항공사가 업무협약(MOU)을 맺어 공항공사가 대신 검색하는 게 맞다는 내용이 있더라. 대중이 다 아는 것"이라며 공개 석상에서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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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하는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국장 |
| ⓒ KTV 유튜브 갈무리 |
지난 11일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에서 GMO(유전자변형식품) 콩 수입 규모를 묻는 이 대통령의 기습 질문에 변상문 식량정책관은 "100만 톤이다. 식용은 Non-GMO로 입증된 업체로부터 수입한다"라며 막힘없이 답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치와 논리를 제시한 변 국장에게 이 대통령은 감탄했고, 네티즌들은 '콩GPT'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대통령실은 그를 차관으로 파격 발탁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전해집니다. 실력만 있으면 '라인'과 상관없이 누구나 발탁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론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물론 이후 변 정책관의 답변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18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답변 내용 중 일부를 정정하면서 "질문을 이해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다"면서 "대통령실은 답변 내용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일부 오류를 파악했다, 저도 대통령님께 직접 보고드렸다"고 밝혔습니다.
식약처, 국정자원 화재 대응 (김익상 식약처 정보화담당관)
16일 식약처 보고에서는 실무자를 직접 챙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당시 식약처가 하루 만에 대체 시스템을 구축한 일을 언급하며, "담당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김익상 정보화담당관"이라고 답하자 대통령은 "아주 훌륭하게 잘 처리했다. 박수 쳐 달라"며 좌중의 호응을 유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 실무자의 공로를 대통령이 직접 치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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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대통령실 제공 |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생중계의 진짜 목적이 '투명성'과 '솔직함'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숫자를 외운 걸 체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아는 척하게 되면 판단과 의사 결정이 왜곡되고 그건 못된 것"이라며 허위 보고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이어 "관철할 일이 있으면 공직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를 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상사가 아닌 국민이기에, 국민의 시각에서 솔직하게 답하라는 주문입니다.
"속 시원하다" vs. "직장 내 갑질"... 엇갈린 평가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 방식을 두고 여론과 언론,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댓글 창은 뜨거웠습니다. "장관이 쩔쩔매는 모습 처음 본다", "관료 사회의 무사안일주의를 깨부수는 사이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국민을 위한 진짜 업무보고"라며 밀실에서 이뤄지던 보고를 투명하게 공개하니, 국민이 국정 운영의 주체가 된 것 같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옵니다.
눈길을 끈 건 보수 논객 정규재씨의 반응입니다. 정씨는 "정부 업무보고를 방송으로 본 것이 참 오랜만"이라며 "공공기관의 방만함과 업무 파악도 못 하는 지도자들을 국민이 목격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행사"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이런 흐름이 오히려 확대되고 더 공개돼야 한다"며 "재미있다"는 관전평까지 남겼습니다. 진영을 떠나 '관료주의 타파'와 '국정 업무 공개'라는 명분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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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15일 '조선일보'의 업무보고 관련 사설 |
| ⓒ 조선일보 갈무리 |
<조선일보>는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사설 ' '직장 내 갑질' 같은 대통령 업무 보고, 민망·유치하지 않나'에서 "공개된 자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질책할 때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며 "일반 직장에서도 상급자가 모욕적 말로 꾸짖으면 '갑질'로 징계 대상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일선 기관장을 생방송에서 면박하는 모습은 국민 보기에 민망하다"며 "만약 앞 정부 인사를 내쫓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유치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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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
| ⓒ 대통령실 제공 |
하지만 위험 요소도 존배합니다. 실무자급 디테일까지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은 자칫 장관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만 바라보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번 업무보고는 언론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민들이 언론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국정 운영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박건식 MBC 기획본부장은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들이 업무보고를 통해 행정부 일과 정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큰 소득"이라며 "언론을 통해 보지 못했던 내용도 접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박 본부장은 "언론이 정쟁보다 정책 위주로 보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라며 기성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의 투명한 공개"라는 명분과 "공포 분위기 조성"이라는 비판 사이. 생중계 업무보고가 단순한 이벤트로 끝날지, 공직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확실한 건, 이번 겨울 세종시 공무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연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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