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분만실 있지만 딴 곳으로 가는 산모들... 왜?

유영주 이류빈 김세윤 2024. 10.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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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분만실 유명무실①] 전문의료진 수급 등 한계...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점검 필요

[유영주 이류빈 김세윤 기자]

강원도 양구군에 거주 중인 나영은(32)씨는 2023년 둘째를 낳았다. 지역 병원 중 유일하게 분만실이 있는 산부인과를 갖춘 양구성심병원(이하 성심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고, 출산도 이곳에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만 전날, 막달 검사에서 의사의 조언을 들은 이후로 영은씨는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저혈압이 있어서 자연분만에서 제왕절개로 넘어가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럴 경우 마취의가 필요한데, 문제는 성심병원에는 마취과 선생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결국 그는 성심병원과 연계된 강원대학교병원(이하 '강대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춘천시에 있는 강대병원까지 영은씨는 자차로 50분 넘게 꼬박 달려야 했다. 농어촌 서비스 기준에서 목표 기준으로 제시된 '이동시간 30~50분'이라는 요건을 넘어선 시간이다. 전문가들은 이보다 멀리 거주하는 임산부는 출산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강대병원은) 동네에 있는 성심병원보다 훨씬 멀다 보니 불편했죠. 출산 가방을 가지러 가는 데만 해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는데···."

영은씨처럼 양구군에 거주하는 산모들은 지역 내에 분만실이 있지만 타지로 원정 출산을 가고 있다. 양구의 관내 분만율은 성심병원이 본격적으로 산부인과 분만실을 운영하기 시작한 2021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0%로 나타났다. 관내 분만이란 거주지 안에서 아기를 낳는 것을 뜻한다.

분만실 생겼지만 이용 저조
 양구군 번화가에 있는 양구 성심병원
ⓒ 유영주
성심병원은 양구군의 제안으로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통해 2020년 12월 산부인과와 분만실을 개설했다. 분만 취약지란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분만 산부인과가 설치·운영될 수 있도록 시설·장비구매비 등을 지원한다.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은 '분만 산부인과 지원', '외래 산부인과 지원', '순회진료 산부인과 지원' 이렇게 세부 사업 세 가지로 구분된다. 세부 사업 중에서 '분만 산부인과 지원' 부문은 분만 산부인과 과목이 운영되도록 시설·장비구매비와 운영비를 지원한다.

성심병원 분만실 및 산부인과는 인건비를 포함한 개설 비용으로 총 9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았고, 이후에는 매년 인건비 5억 원을 지급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신생아 6명을 받은 이후로는 아기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산모들이 지역 분만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 산모 지안(가명· 28세)
씨는 줄곧 불임 상담을 받아온 강대병원에서 재작년 출산을 마쳤다. 성심병원은 검진을 급히 받기 위해 몇 차례 방문한 게 전부였다.

지안씨는 "춘천에 있는 병원은 양구보다 장비도 더 좋아 보이고 의료진도 더 믿음이 갔다"면서 "힘들게 얻은 아기인 만큼 무사히 낳고 싶어 (강대병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안씨의 거주지에서 강대병원까지는 자차로 50분 걸렸다. 시댁이 춘천이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대개 시댁에 며칠씩 머물렀다. 그는 "거리가 있어 힘들었고, 시댁에서 지내는 것도 눈치 보였다"며 한숨 쉬었다.
▲ 개원 이래 양구 성심병원 분만율 2020년 개원 이후 양구 성심병원에서 태어난 아이 수는 6명에 그쳤다.
ⓒ 이류빈
실제로 성심병원은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분만 산부인과 필수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규정상 산부인과 전문의 2명, 소아과 전문의 1명, 마취과 전문의 1명이 필요하지만, 성심병원에서 근무 중인 산부인과 전문의는 단 1명에 불과했다. 소아과 전문의는 있지만, 마취과 전문의는 산부인과를 연 이래 계속 공석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소아과 및 마취과 전문의는 기관에서 직접 고용하는 방식 외에도 타 의료기관과 연계 체계를 구비하는 방식을 함께 허용했으나, 실상은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 성심병원 관계자는 "첫해에는 타 병원과 업무협약(MOU)을 맺는 방식으로 마취과 전문의를 구했지만, 분만이 꾸준하지 않다 보니 결국 1년 만에 끊겼다"고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분만실의 존재 자체를 몰라 이용하지 못한 산모도 있었다. 영은씨는 2021년 김포 A 병원에서 첫째를 낳았다. 그는 "당시에는 양구에 분만실이 생긴 줄도 몰랐다"면서 "양구에서 김포까지 2시간 이상 차를 타고 병원에 다녔다"고 회상했다. 성심병원에는 출산 선례가 몇 안 돼 이용이 꺼려진다는 산모도 적잖았다. 강대병원에서 셋째를 출산한 김지애(36)씨는 "여기(양구)서 출산했다는 사람이 많이 없어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처럼 지역 내 유일한 분만실에 대한 홍보와 지원이 부족한데도, 정작 분만실 설립을 제안했던 양구군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양구군 보건소의 한 관계자는 "관내 분만율이 저조한 건 아쉽지만, 산모들에게 (성심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홍보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만실 관련 보도자료를 내는 등 정작 양구군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자는 "양구는 인구 수가 적은 지역이라 굳이 보도자료를 뿌리지 않아도 알음알음 알게 된다"면서 "성심병원은 의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커진 병원이라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했다.

성심병원에 분만실이 생긴 이후 양구군의 분만 취약지 등급은 A등급(전체 분만 중 70% 이상이 다른 시·군에서 이뤄지고, 분만 병원까지 이동 시간이 60분 넘는 지역이 30% 이상인 곳)에서 C등급(분만실 접근성 및 이용률이 낮거나, 가임 여성 인구가 부족한 곳)으로 완화됐지만, 양구군 산모들은 여전히 '출산 난민'이다. 성심병원 관계자는 "인건비만 억 단위로 마이너스일 정도로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면서 "이제는 지역 안에서 분만을 기대하기보다는 (산모들에게) 다른 방향의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호소했다.

효과 입증 안 됐는데 지원 늘리는 정부
▲ 최근 5년간 분만취약지사업 선정지 평균 관내분만율 분만 취약지 사업 선정지 평균 관내 분만율은 20%대로 낮았다.
ⓒ 이류빈
한편,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받은 지자체의 관내 분만율은 양구군 이외 지역에서도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분만 취약지 33곳의 평균 관내 분만율은 22.5%에 그쳤다. 한국모자보건학회지에 실린 '한국의 관내 분만율 현황' 보고서는 2020년 기준 전국 평균 관내 분만율을 44.5%로 산출했는데, 이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사업 규모를 꾸준히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의 예산은 18억 원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113억 원까지 늘렸다. 사업 지역 역시 첫해에는 2곳에서 시작해 현재는 33곳까지 불어났다. 사업의 효과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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