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용 (8) “아이 배에 큰 구멍” 임신 초기 진단에 절박한 기도
“아이 장기 몸 밖에 나와 있다”
임신 중단 권유에 금식기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신 커져

1995년 산상 철야 집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을 체험한 다음 날 아침,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 마주한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나무의 잎사귀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머금은 채 몽글몽글 살아 움직였고, 스쳐 지나가는 빛줄기마다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듯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 역시 영롱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육안과 영안이 동시에 열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겹쳐 보이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나 삶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나 역시 무지렁이 같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살아 있음’을 맛보는 감격이 밀려왔다. 이 잊을 수 없는 감격은 평생을 버티게 할 강력한 영적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사로 거듭난 기쁨도 잠시, 우리 부부 앞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하고 참혹한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은 뒤 마침내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소중한 생명인 첫딸 은지의 이야기다. 임신 소식을 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곧이어 반전의 소식이 이어졌다.
임신 초기 6주 검사에서 단백질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왔다. 정밀검사 결과를 보던 의사의 표정이 무겁게 굳어지더니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렸다. “아이 배에 아주 큰 구멍이 있습니다. 위와 간 같은 장기들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먹먹해진 내 귓가에 의사의 담담한 설명이 쐐기처럼 박혀왔다. “이런 아이들의 절반은 뇌 손상을 입고, 나머지는 심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생존율은 2%에 불과하니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중단이라는 단어가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병원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꺼이꺼이 눈물만 쏟아냈다. 그날 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부부는 생전 처음으로 같은 기도를 올렸다. 차마 살려달라는 서원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나님 이 아이의 얼굴만이라도 한 번 보게 해주세요. 딱 한 번만 안아보게 해주세요”라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로 매달릴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단단한 확신이 솟구쳤다. 의학은 불가능하다고 선고했지만 생명의 주권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이었다. 우리는 다시 무릎을 꿇고 무모하지만 절박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육신의 연약함과 장애는 부모인 저희가 평생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뇌만큼은 정상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다. 뱃속에서 툭 하고 작은 움직임이 느껴질 때마다 “오늘도 은지가 살아있구나”라고 확인하며 금식 기도를 이어갔다. 양가 부모님의 고심 끝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라’는 뜻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은지’라 지었다. 절망적인 확률 앞에서도 아이를 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던 아내의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하지만 그 가혹한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붙잡는 처절한 훈련의 과정이었다.(창 18:14)
인간의 계산으로는 절대 건널 수 없었던 2%의 실개천 너머에서 생명의 조직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위해 신묘막측한 기적의 손길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셨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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