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문체반정' 맞선 이옥의 글쓰기

김삼웅 2026. 1. 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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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의 향연 51] 이옥의 '패관잡기' 문장을 소개한다

[김삼웅 기자]

▲ 화성행궁 옆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화령전에는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정조대왕의 어진이 고요히 모셔져 있다. 조선의 무사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정조대왕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화성행궁 옆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화령전에는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정조대왕의 어진이 고요히 모셔져 있다. 조선의 무사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정조대왕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조선왕조 시대에 두 차례 반정(反正)이 있었다.

반정이란 바른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담긴다. 인조반정과 중종반정이 이에 속한다. 이같은 두 반정 외에 '문체(文体)반정'이 있었다. 정조 16년(1792)이다. 이 반정은 국왕 정조가 주도하였다. 친위쿠데타인가 싶지만 임금은 절대 권력자여서 권력 강화나 임기 연장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그럼 왜? 정조는 역사상 드문 반정을 일으켰을까.

정조는 흔히 학문을 좋아하는 호학군주, 개혁군주, 문화군주, 계몽군주로 불린다. 실제로 이같은 호칭이 와 닿는 군왕이었다. 세종대왕에 다음가는 군왕으로 꼽힌다. 당시 조선사회에는 '패관잡기'라 불리는 서책이 널리 나돌았다. 이른바 소설책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패관소품이 나돌아 백성들뿐만 아니라 유생들까지 파고들었다.

청국에서 건너오기도 하고 국내에서 생산된 것도 많았다. 여기에는 왜란·호란을 겪은 백성들은, 백성을 두고 도망치는 군주(선조)와 무릎 꿇은 군주(인조)를 지켜보면서 지배층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백성들의 의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이 선호하는 '패관소설'과 각종 잡기는 전통적인 성리학에 절어 있는 군주나 사대부들에게는 도도한 문화침투였을 것이다.

정조는 16년(1792) 신하들에게 소설 문체의 폐해를 언명하였다.

요즈음 선비들의 기상이 점점 나빠져서 문풍이 날로 고약해지고 있다. 과거시험에 올라오는 문장들을 보더라도 모두 폐관 소품의 문체를 모방하러 경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뜻들도 전혀 소용이 없다.

내용도 별로 없으면서 기교는 어찌나 부리는지 옛 사람의 채취도 찾아볼 수가 없고 조급 하고도 경박한 것이 평화로운 세상의 문장 같지도 않다. 이는 세상의 도와 길이 이어져 있으니 실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조선왕조실록>, 정조 16년 10월19일)

정조의 언설은 부드러운 듯 하지만 내용은 매섭다. 문체반정의 포고령이었다. 성리학으로 체질화되고 관직에 오른 조정대신들도 이론이 있을 리 없을 것이었다.

정조는 <열하일기> 등 문체반정의 핵심 당사자인 연암 박지원을 지목해 반성하는 자송문(自訟文)을 쓸 것을 지시했다.

오늘날 문풍이 이와 같이 된 것은 그 근본을 따져보면 모두 박 아무개의 죄이다. <열하일기>는 내 이미 보았으니 어찌 감히 속이고 숨길 수 있겠느냐? 이 자는 바로 법망에서 빠지려는 거물이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에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당연히 문제를 일으킨 자가 스스로 대변해야 하지 않겠느냐?(박지원, <연암집>)

박지원은 자송문을 통해 "...이토록 잘못했으니 어찌 감히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뒤늦게나마 급히 돌이킬 것을 토로해 다시는 이 어질고 평화로운 시대의 죄인이 되지 않도록 하지 않겠습니까?"라 하였다.

정조는 다산 정약용도 지목했다. 아직 귀양 가기 전이다. 그의 자송문 한 대목이다.

혜성과 흙비가 오는 것을 '하늘의 재앙'이라 하고, 가뭄과 홍수로 마르거나 무너지는 것을 '땅의 재앙'이라고 한다면 패관잡서는 '사람의 재앙'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음탕한 말과 추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면 사특하고 요사스런 내용이 사람들의 지식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고 괴이한 이야기는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부추기며, 겉만 화려하게 꾸며 몸과 마음을 야하게 하는 문장은 사람의 씩씩한 마음을 모두 섞어버립니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문체반정')

문체반정의 거센 폭풍우에 조정의 신료는 물론 사대부들은 추이를 지켜보면서 글쓰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 용기 있는 문인이 있었다. 과거사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가문이 한미하고 정치적 뒷배가 없어 미관말직에 좋아하다가 그마져 내쫓김을 남한 이옥(李鈺)이다. 1760년 경기도 남양 매화동에서 태어났다. 문체반정 시기에 과거장에서 당당하게 '패관잡기'식의 답안을 써냈다. 정조에게 보고되고 불려가 혼쭐이 났으나 문체를 바꾸려하지 않았다.

이옥의 '패관잡기' 문장을 소개한다.

아, 이것은 벌레우는 소리로다
깨끗하게 숨어 살아 세상에 쓰이지 않았기에
그 자취 차고도 맑으며
풀을 먹고 녹(綠)을 먹지 않아서
그 마음 비어 있으면서도 심묘하구나
그리하여 너 비록 몸은 미물이나
또한 하늘이 낳은 것이고
너 비록 울음소리는 네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실은 하늘이 너를 실려 우는 것이니
그 울음은 네 소리가 아니라
곧 하늘의 정한이로다.(이옥, <경금소부>, '벌레 소리를 닮은 분')

이옥은 호를 경금자(絅錦子)라 하였다. 경(絅)은 홀옷을 금(錦)은 비단을 뜻한다. 그러니까 화려한 비단 옷을 가리려고 그 위에 홀겹 옷을 덧입는다는 뜻이다. 풀어보면, 타고난 뛰어난 제주를 숨기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조도 막지 못 한 경금자의 산문 '오뉴월 벌레들의 일대기' 한 구절이다.

작은 산 무성한 계수나무 숲속에 깃들어 만승천자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스스로 그 한 몸을 깨끗이 하는 자로 열린 눈으로 보자면 곧 한낱 반딧불이다.(...) 고관대작의 집에 고약한 객이 있어 힘없는 자들 등지고 권세 있는 자를 좇아, 이익이 있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달콤한 것을 핥고 빨기를 혹시라도 남에게 뒤질까 저어하는 자를 열린 눈으로 보자면 곧 한낱 파리이다.(...)

감사와 수령처럼 뿔 나팔을 불고 깃발을 뽐내며 남의 뼈를 깎고 피를 빼앗아 백성을 창백하게 하고 제 배를 불리는 자를 열린 눈으로 보자면 곧 한낱 모기이다.(이옥, <백운집>)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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