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들의 성지, 제주 세계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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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세계술박물관

제주에는 별별 테마를 지닌 박물관이 다 있는데요, 물론 술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박물관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술박물관입니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이곳은 제주 성산부터 서귀포까지, 제주 동남부를 여행하며 들르기 좋습니다. 주차장도 넓고 관람 마지막쯤엔 시음도 가능하지만, 운전하시는 분은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꾹 참으셔야 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세계술박물관의 테마는 술이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분들도 방문하기 좋습니다. 전통술의 종류와 양조 과정을 다룬 파트에서는 우리 전통문화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7~80년대 막걸리를 담던 막걸리통
막걸리를 배달하던 자전거

여기서 잠깐, 전통주 공부 시간!

술을 빚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바로 누룩입니다. 술의 발효, 숙성을 돕는 누룩은 보통 밀이나 쌀, 보리 등으로 만듭니다. 한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누룩을 만들어 왔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만드는지 통밀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선 맷돌로 밀을 빻은 후 물을 뿌려 반죽하고, 네모난 틀 안에 넣고 꽉 눌러 모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볏짚에 올려 누룩을 띄운 후 햇볕에 말려 잡균과 잡내를 제거하지요. 보관은 그늘에서 하고요.

곡식을 가는 돌확, 누룩 가루를 걸러주는 어레미, 지금도 곡식의 양을 잴 때 사용하는 홉·되·말

한국 술의 주원료는 대대로 쌀이었습니다. 여러 해 흉년이 들었을 때 주조를 금지한 것도, 6.25 전쟁부터 경제 부흥기 이전까지 쌀이 아닌 밀로 막걸리를 빚으라고 강제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쌀로 술을 만들 때는 고두밥을 지어야 합니다. 깨끗이 씻어 물에 불린 쌀을 시루에 담고 찌는데 아주 고들고들한 밥을 만들기 위해 불 조절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이 고두밥을 누룩과 섞어 술독에 넣고 발효한 뒤 ‘용수’라는 체 바구니를 깊이 박아 넣습니다. 이때 고이는 맑은 술을 떠내면 청주가 되고, 남은 탁한 부분은 탁주가 됩니다. 탁주는 활용법이 많습니다. 물을 타서 체로 거르면 막걸리가 되고, 솥에 붙고 소줏고리에 올려 불을 지피면 소주를 얻을 수 있지요. 맛도, 알코올 도수도 전부 다른 술이지만, 모두 한 독에서 나옵니다.

탁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 소줏고리

수많은 양조장을 한 자리에서

청주, 탁주, 소주 등 전통주의 주조법과 특징을 눈에 익히고 나면 본격적으로 전국 방방곳곳 전통주 소개가 시작됩니다. 지역마다 저만의 양조법을 오랜 세월 이어 온 양조장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양조장과 술도 보입니다. 실로 술은 인간과 뗄 수 없는 음식이었던 것이지요.

제주에 있는 술 박물관답게 제주의 술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개성 소주, 안동 소주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소주에 꼽힌다는 고소리술이 그 주인공입니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기념품이나 선물로 오메기떡 많이 사시지요? 좁쌀로 빚은 오메기떡이 있다면, 좁쌀로 만든 오메기술도 있습니다. 이 오메기술을 증류한 소주가 바로 ‘고소리술’이고요. 왜 고소리술이냐면, 제주 방언으로 소줏고리를 부르는 말이 ‘고소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제주의 소주, 고소리술
지금은 문을 닫은 제주 한백주조의 술

진로주조, 이강주, 안동소주, 계룡백일주, 문배주…,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술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주사위 하나가 나타납니다. 신라시대 귀족들이 사용하던, 무려 14면체의 이 주사위에는 면마다 한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술을 마시면서 공부도 했던 것일까요?

경주법주에서 만들었던 사군자 술병
진로주조가 1992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만든 그 해 띠 동물 술병

‘주령구’라 불리는 이 물건은 바로 술자리 여흥을 위한 벌칙 주사위였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다가 돌아가며 주사위를 굴립니다. 그리고 지시 사항에 따라 노래 없이 춤도 추고, 술 석 잔을 한 번에 마시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코를 때리기도 하는 등 벌칙 수행을 했다고 하네요. ‘술 게임’ 역사가 이토록 오래되었는지, 어찌나 지금과 비슷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음주와 가무를 좋아하던 우리 조상님들답지 않나요?

주령구 | 신라시대에도 술 게임이 있었다

알고 보면 레트로 박물관, 그때 그 시절 술병들

제주의 사설 박물관을 다니면 설립자의 수집력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세계술박물관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술의 변천사는 물론, 이제는 역사가 된 술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소주, 맥주부터 리큐어, 위스키까지 한국에서 판매된 다양한 주류들

빛만 조금 바랬을 뿐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라벨지가 붙은 7~80년대 술병들, 신문에 실리거나 술집 벽에 붙어 있던 오래된 광고들, 주조 회사에서 발행한 수십 년 된 달력과 그때 그 시절 술 판매를 촉진했던 여러 모델들이 나타납니다. 중장년층 관람객은 이 술 기억난다, 무릎을 칩니다. 20대 관람객은 내가 지금 마시는 소주나 맥주가 옛날엔 이런 모습이었구나, 신선하고요. 현대의 상품 패키지와는 사뭇 다른, ‘레트로풍’이 아니라 ‘레트로’ 그 자체인 디자인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추억의 포스터, 달력

지금도 밤만 되면 TV와 유튜브에서는 술 광고가 흘러나오지만, 예전에는 경쟁이 더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달력, 부채, 성냥 등 온갖 판촉물이 다 등장합니다. 이 오래된 소장품들을 보고 있으면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 어둑어둑한 술집에 모여 한 잔 술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던 선배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도 같습니다. 아마 십수 년 후 지금 우리가 마시는 술병을 보는 후배들도 21세기 초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겠지요.

요즘의 프로모션용 플라스틱 부채와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
아X히 맥주가 아닙니다

외국 술 소장품도 적지 않습니다. 요즘도 수입되는 술이 많지만, 확실히 예전 디자인이 더 예쁘다는 생각도 듭니다. 통조림을 닮은 외국 캔 맥주도 신기하네요. 요즘 모 일본 맥주가 다시 붐을 일으킨 통째로 열리는 캔 뚜껑도 옛날엔 흔했습니다.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덴 아무래도 토출구가 큰 편이 유리할 테니까요.

다양한 캔 맥주, 미니어처 맥주

전시의 마지막은 종류별로 전시된 수많은 미니어처 술병이 장식합니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장난감 같은 술병은 그 자체로 예술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술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여기선 눈을 떼지 못할 정도네요.

관람을 마치면 몇 종류의 술을 시음하고 기념품도 살 수 있습니다. 제주 특산 막걸리와 고소리술은 물론, 숙소에서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면 좋을 저렴한 위스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분들은 여기까지 오는 중 술 한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지셨을 텐데요, 오늘 밤 제주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취향에 맞는 술 한 잔 골라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세계술박물관

주      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한마음초등로 431
관람시간 | 09:00~18:00 / 09:00~18:30(6, 7, 8월) / 연중무휴
관람금액 | 성인 7,000원 / 청소년 5,000원 / 초등학생 2,000원 / 경로(65세 이상) 5,000원 (도민할인 가능)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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