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물 오게한 항구도시... 이 짬뽕이 이래서 유명했구나
올해 1월 한 달 동안 다녀온 일본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세계 도시여행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자말>
[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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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가네바시 골목마다 이야기가 서려있는 나가사키는 흥미로운 명소가 많다. 안경을 닮아 메가네바시라 불리는 이 다리에는 하트모양의 돌이 숨겨져 있다. |
| ⓒ 운민 |
그런데 일본의 규슈, 서쪽 끝 인구 40만의 나가사키는 어딘가 모를 낯선 향기가 느껴진다. 그렇다. 이 도시는 300년 가까이 외부세력이 못 들어오게 나라 전체를 자물쇠로 잠겨놓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고였다.
작은 항구도시를 통해 들어온 문물들은 일본을 넘어 아시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짬뽕은 나가사키의 한 화교가 개발했으며 카스텔라는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전래된 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나가사키는 조선업과 방위산업의 중심지로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징용되는 아픔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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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지마 일본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유일한 창구로 기능했던 데지마는 네덜란드 상인이 생활했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
| ⓒ 운민 |
흡사 부산과 비슷해 내적 친밀감을 가져다준다. 좁고 기다란 시가지를 따라 구석구석 이어주는 전차를 타고 데지마역에 내리면 심상치 않은 건물들이 담너머로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곳이 유일한 서양문화 전래 창구로 기능했던 데지마 상관이다.
5천 평 규모의 인공섬안에 조성된 이 상관은 본래 포르투갈인들을 수용했으나 그들을 내쫓고 히라도의 네덜란드 상관을 이전하며 본격적인 쇄국정책이 시작되었다. 매립과 도시개발로 한때 사라졌으나 복원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상인들의 숙소를 비롯해 창고와 전시된 각종 자료를 살펴보면 마치 그 시대의 네덜란드 상인이 된 것 같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은 중국인들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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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먹거리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먹거리 나가사키 짬뽕은 이곳에 사는 화교가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
| ⓒ 운민 |
그들도 이 도시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했지만 양인과 달리 비교적 도시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유산인 짬뽕은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상품화된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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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가사키의 상징 오우라천주당 2차대전 당시에 큰 피해를 겪었지만 살아남은 오우라 천주당은 현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 ⓒ 운민 |
1864년 프랑스인 선교사가 박해로 인해 순교한 26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교회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비록 2차 대전 당시 원폭피해로 지붕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피해를 입었지만 복원과 보수작업으로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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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라바엔 토마스글로버가 살던 저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구라바엔은 현재 많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
| ⓒ 운민 |
그는 신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쓰비시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개발한 맥주는 훗날 기린맥주의 모태가 되었다. 목조 방갈로 형태의 이 목조저택은 내부에 온실과 응접실, 대식당을 두루 갖추고 있어 부유했던 그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항구가 바라보이는 이 언덕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배경을 연상하게 하며 입구에는 푸치니의 흉상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서양 뿐 아니라 중국 건축물도 보이는 나가사키
나가사키에는 서양양식의 건물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건설한 건축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붉은색 기둥과 황색지붕을 갖춘 전형적인 중국의 전통가옥이다. 그들의 성현을 모셔놓은 공자묘와 불교사원인 쇼후쿠지는 외부로 들어오는 문물에 관대했던 나가사키의 정신을 말해주는 그 자체다.
이제 해가 점점 내려가고 석양이 물들 무렵 10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녔다고 하는 나가사키의 야경을 감상할 차례다. 이나사야마에 올라 항구를 바라보면 산과 바다, 도심의 불빛이 하모니를 만들어 낭만적인 밤을 연출한다.
저 바다 너머에는 한국인들을 강제 진용한 악명 높은 장소 군함도가 있고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터전을 닦았으며 근대사의 주역도 우리 입장에선 썩 내키진 않는다. 서양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진보적인 배경을 지닌 이 도시에서 과거에 대한 사죄가 가장 먼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강의, 기고는 ugzm@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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