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출생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백선희]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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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가 위기감을 갖고 적극 행정을 하는 것은 필요하나, 굳이 국민을 상대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여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과거 국가 주도로 산아 제한 인구정책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국가 주도로 출생아 '수' 증가를 정책 목표로 삼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역주행이다. 저출생 대응의 책임을 대통령(저출생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에서 부총리급 신설부서 장관으로 이전하는 것의 효과도 의문이다.
정부는 임기 내 출산율 반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나 인구부 신설 없이도 2025~2027년 사이에 출산율 반등이 예상된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 최저점은 2025~2026년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던 결혼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혼 후 출산까지 평균 17개월(2020) 소요된다고 하니 당분간 출생아 수가 증가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향후 출산율 반등만으로 이를 정부의 정책 성공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윤 정부가 제안하는 저출생 대응 정책이 과연 출산율 반등을 가져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 보자.
저출생 문제 본질 파악하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
불행히도 윤 정부가 인구수를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을 보면 저출생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출생 문제는 인구수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 1960~1980년대에는 국가 주도의 출산 억제 인구정책이, 정관 수술 유인 같은 일종의 국가 폭력이 있었음에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더 이상 국민의 성 재생산권(출산)을 강제할 수 없다.
현 정부의 신 인구정책 중에는 이민정책을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도입하겠다는 발상도 있다. 출산율이 높은 국가에서 이민자를 받으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는 것도 착각이지만, 외국인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것은 반인권적 태도이다.
여성의 출산 파업에는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사회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녹아 있으며, 또한 아동청소년들이 과도한 학습과 경쟁 체계, 기회 상실의 사회 속에서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도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즉, 인권의 문제이다.
저출산 문제를 국가 어젠다로 삼은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인 정책 대응을 시작하였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건 인간 기본권 문제"라고 말하며,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06~2010)'(이하 기본계획) 추진 결과 합계출산율은 1.09명(2005)에서 1.23명(2010년)으로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제4차 기본계획에서 노동권, 성 재생산권, 일-생활 균형권 등 인권적 측면에서 저출산 문제에 접근하였다. 현실을 보면, 청년 세대 중에는 여전히 결혼하고 싶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사회경제적 여건상 그럴 수 없는 청년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사회는 인권의 문제와 관련 있다. 그런데 윤 정부의 인구 증가 대책에는 이민정책은 있으나 불안전 노동과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청년 노동자들이 생애 이행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대책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 주역인 아동들의 행복권을 보장하는 내용들도 저출생 대책에서 거의 실종됐다.
▲ 신생아 보살피는 의료진들 추석 명절을 앞둔 9월 1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린 여성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생아들을 보살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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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개인 삶의 질 제고'라는 목표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평가 절하한다. '출산'을 산업 인력과 군 상비 병력 비상사태 해결책으로 강조한다. 저출생으로 인해 예측되는 사회문제에 백번 동의한다 하더라도, 윤 정부의 정책적 뼈대는 국가 유지라는 비전과 출산율 1.0 목표와 출산율 제고라는 수단만이 남는다. 출산율 제고 대신 억제라는 기조만 다를 뿐 1960~1980년대 우리나라 인구정책 뼈대와 동일하다. 즉, 인구정책으로의 회귀이며 신 인구정책이다.
이와 같이 국민을 출산자, 생산자, 병력으로 간주하는 신 인구정책에 청년세대들이 공감할 리 만무하며, 특히 인구 비상사태 선언은 여성 청년들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일 것이다. 여성들의 경력단절, 독박육아 문제, 성별 격차 등의 문제에는 소원하면서 합계출산율 1.0명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의 삶의 질을 국가 발전에 종속시키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도, 비록 두 용어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바로 여성을 수단화하지 않겠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정부 저출생 대응 과정에서 실종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국가 발전의 영역이 아닌 개인의 삶의 질과 선택의 영역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정부의 역할은 결혼과 출산이 고통이 아닌 보다 풍부한 삶의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환경을 조성하고,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이 가능하도록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제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기가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바로, 문 정부가 '삶의 질 제고'를 저출생 정책의 목표로 삼은 이유라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대체출산율인 2.1명의 1/3 수준인 0.7명에 가깝다. 우리는 이를 출생률이 매우 낮다는 양적 지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그만큼 떨어져 불행해졌다는 질적 지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저출생 사회에 대한 대응은 인구 규모에 초점을 둔 인구정책이 아닌 삶의 질에 초점을 둔 사회정책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 결혼-출산-육아정책 틀 넘어야 해법 있다
이에 따라 필자는 기존의 결혼-출산-육아정책의 틀을 넘어, 사회경제적 원인과 구조의 변화까지 아우를 총체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복지, 노동, 교육은 물로 기후와 디지털 이슈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거시적이며 포괄적이고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윤 정부가 제안한 3개의 범국가적 총력 대응(비상사태 선언, 정부 부처 신설, 지방교부세 교부기준 변경)이나 기존 정책을 확대한 정도의 3대 핵심분야(일-가정 양립, 국가책임 교육·돌봄 체계, 주거지원과 결혼·출산 장려)만으로는 추세 반전의 기회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근시안적이고 현상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의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성 불평등 ▲과도한 경쟁 사회 ▲심각한 사교육 의존 ▲긴 노동시간과 불평등한 노동시장 ▲기회와 소득 격차 ▲지역 불균형 외에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고려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미래 전략이 필요하다.
노 정부는 인구 문제를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사회정책으로 접근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문 정부는 제4차 기본계획을 통해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을, 개인을 노동력·생산력의 관점으로 본 국가 발전 전략에서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점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였다.
100년 전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하게 된 스웨덴은 우리와 같은 출산 장려, 다자녀 가정 지원 정책 등을 펼쳤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보다 근본적인 사회개혁, 즉, 분배정책과 사회정책의 개혁을 통해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성공적이었다.
스웨덴 학자 뮈르달은 그 길을 되돌아보니, 결국 복지국가의 길이었다고 평가했다. 저출산 추세의 반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인구정책 차원을 넘어선 포괄적이고 혁신적인 사회정책 즉, 인간다운 삶을 기본적 권리로 보장하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복지국가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백선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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