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터뷰] "K리그에 늦게 온 이유, 날 보고 꿈을 키우는 자이니치 어린이들이 있기에" 안양의 북한 대표 리영직
[풋볼리스트=안양] 김정용 기자= 한국에 처음 온 건 북한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였고, 그의 사명감은 일본에 있다. 지금은 FC안양의 서포터들을 위해 뛴다. 자이니치(在日) 리영직의 축구 인생이다.
지난 9월 FC안양 홈구장에서 리영직을 만났다. 리영직은 K리그2 34라운드 현재 1위에 올라 있는 안양의 주전 미드필더다. 33세 나이에 K리그로 처음 진출해 25경기 2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그의 삶은 자이니치라는 정체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자이니치는 식민지 시절부터 일본에 살고 있는 한반도 출신 재외동포들로, 해방 직후 일본으로부터 주어진 국적 '조선적'을 유지해 온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그동안 정대세, 안병준 등 많은 자이니치가 북한 대표팀에 합류하는 동시에 K리그에서 활약했다. 리영직은 그 중에서도 오사카에서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오사카 조선학교를 졸업한, 가장 자이니치의 정체성이 강한 선수였다. 그와 나눈 대화를 간추려 전한다.
▲ 오사카의 리영직, 도쿄의 안병준
- 리영직이 누군지 먼저 소개해 보겠습니다. 오사카에서 태어나서 조선학교를 다녔죠. 거기 축구부가 축구를 잘 하나요?
- 제 세대까지는 일본 전국대회에 나갔고. 그때가 좋은 세대였습니다. 학생 수가 많았고. 지금은 학생 수가 줄었어요.
- 당시 또래들은 지금도 축구선수로 활동 중인가요?
안병준. 그는 도쿄, 저는 오사카 조선학교를 다녔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어요. 조선학교끼리 전국대회가 있고 그 안에서 눈에 띄는 선수였기 때문에요. 안병준은 일본 클럽에 가서 축구를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고등학교 때는 선발 게임도 같이 했고요. 사이가 좋았어요. 제일 잘 하는 건 병준이였습니다. 저는 그 다음 정도.
- 축구선수는 언제부터 생각하셨어요?
대학교 4학년 때부터였습니다.
-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잘 했는데도 선수는 생각이 없으셨어요?
그때까지는 부모님이 축구를 하라고 했고 저는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시킨 거니까 즐겁게 할 수 없었고요. 왜 시키셨는지는 몰라요. 하라고 하니까 했어요. 너무 무섭고 엄해서 못 물어봤어요. 대학교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축구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일단 갔습니다.
- 지금은 공을 뿌리기도 하고 거친 반칙도 불사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인데요. 어렸을 때는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어렸을 때는 우리 축구부에 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포지션을 해야 했어요. 사람이 없는 자리에 가는 선수였죠. 한 포지션이 아니라 많은 걸 경험한 것이 지금은 도움이 되죠. J리그에서 센터백도 하고 포워드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팀에서 오퍼도 받았고 프로 생활도 했으니까.
- 일본에서 1부부터 3부까지 여러 팀을 경험했어요. 그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입니까?
역시 도쿄베르디(2018~2019). 스페인 감독님(미겔 앙헬 로티나) 아래서 뛰었는데 스페인의 FA컵에서 우승해본 분(에스파뇰과 2005-2006 코파델레이 우승)이거든요. 그때가지 갖고 있던 생각이 180도 달라졌어요. 진짜 재밌었고 자신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았죠. 제 나이도 몸이 가장 잘 움직이는 20대 후반이었고요.
▲ 북한 대표 리영직
-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하던 와중 북한 대표가 됐습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발탁돼 한국과 결승전에서 맞붙기도 했죠. 자이니치 선수에게 북한축구협회는 어떻게 연락을 해 오나요?
당시 제가 1부(도쿠시마보르티스)에 있었는데 경기를 못 뛰고 있었어요. 조선 국가대표 감독님이 합숙 훈련에서 한 번 보자고 했습니다. 아시안게임 한 달 전부터 합숙을 했는데 도쿠시마에서는 어차피 못 뛰는 어린 선수였으니까 좋은 경험을 하고 오라고 보내준 덕분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는 이용재의 슛을 손으로 쳐내면서 퇴장을 각오한 플레이까지 했는데 그 공을 임창우가 밀어 넣으면서 어드밴티지로 한국이 결승골을 넣었죠. 그렇게 인연이 된 이용재도 일본에서 재회했고, 그 외에도 오재석과 김진수 등 한국 선수들과 동료로 뛰었습니다. 한국 선수가 오면 일본어 통역을 도와주며 친해지나요?
재석 형이 특히 그렇고 진수도 그렇고, 일본말을 잘했어요. 너무 잘해서 평소에 이야기하면 일본말로 이야기할 정도로. 통역이라기보다 일단 제가 한국 사람 있으면 인사 하러 가거든요. 프로 되고 나서 늘 하고 있었던 행동이니까요. 일단 인사하면 그때부터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죠.
- 한국인을 만났으면 인사를 하는 게 우리 예의니까요?
그렇죠.
- 북한은 한동안 국제 경기를 꺼렸어요. 그러면서 리영직 선수의 A매치 경력도 오래 끊겼는데, 올해 초 일본 보도에 따르면 대표팀 복귀 요청이 있었습니다.
대표팀 감독님이 영직이가 좀 힘이 돼주라고, 어린 선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컨디션이 진짜 안 좋았어요. 팀도 결정되지 않았고, K리그 팀과 계약 직전에 잘 안 되는 일이 일어나던 때예요. 훈련을 잘 못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컨디션이 부족하고 그렇다면 어린 선수들 경험 중요하니까 나는 안 간다고 했죠.
- 북한 경기는 보세요? 이번에 되게 어려운 경기(카타르전 2-2) 비기고 그랬잖아요.
어린 선수들이라 좋을 때는 좋은데, 나쁠 때는 수정을 못해서 그냥 가버리는 버릇이 있어요. 제가 대표팀에 있었을 때 막내들이 여전히 뛰고 있는데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경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 아깝게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는 선수들은 많은데.
- 그럼 앞으로 월드컵 예선에서는 리영직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니, 그것은 어려운 상황이죠. 제가 한국을 떠나려면 비자 신청하는 문제도 있고 그렇게 하면 한 달 전인가 빠져버리니까 솔직히 안양에 많은 피해를 줘버리거든요.
- 아, 얼핏 들었습니다만 이번에 '출산휴가'로 일본 다녀오실 때도 그렇고 입출국 때는 절차를 미리 밟아놓으셔야 된다고요?
미리 신청을 했어요. 어쨌든 최소 한주는 빠져버리니까. 출산에 대해서는 감독님에게 진짜 감사해야 할 것인데. 이런 일이 있어도 일본에 나를 보내줬던 것이니까 그것은 감독님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 늦게 온 이유, 자이니치의 책임감
- 일본 팀에서 한국 선수들과 인연을 맺었을 때 '너는 K리그 가면 더 인정받을 스타일이니 빨리 가라' 이렇게 말해준 선수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가 그랬던 거예요?
용재도 그렇고 일본에서 같이 뛰고 있었던 선수들 모두 말해주는 것이 키가 크고 수비형 미드필더이면서 수비와 패스도 해주는 선수가 있으면 한국에서는 귀중한 존재니까 솔직히 이곳보다 평가는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줬어요.
- 실제로 현재까지 K리그2 1위 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계시니까 맞는 말이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솔직히 안양이 너무 좋은 팀이니까 그래요. 올해 경기력 보면 선수들이 진짜 잘하니까요. 이적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 사실 막상 한국에 왔는데 안양은 좀 일본 팀처럼 하잖아요. 유병훈 감독은 J리그의 요코하마마리노스, 비셀고베 등을 참고한다고 말한 바 있거든요.
감독님도 말하셨다시피 일본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미팅에서 영상을 볼 때도 일본 팀이 많이 나오고요. 충분히 적응할 수 있었죠. 일본에서 하고 있던 것을 여기서도 하라는 말만 해주니까 저도 축구적으로 적응하기 쉬웠어요.
- K리그에서 리영직 선수 영입설이 난 구단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요. 자이니치 선배들이 K리그에서 잘 해줬기 때문에 사실 '리'라는 성의 선수가 J리그에서 잘 하면 K리그 팀들이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자이니치 선수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 선수로 분류된다)
인천 아시안게임 끝나고도 관심을 받았고요. 2018년도, 그 다음 해도, 쭉 이야기는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어린 자이니치 학생들에게 J리그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좀 있었어요. 이제 정대세 안영학도 은퇴했고 병준이도 먼저 한국에 가버렸기 때문에 제가 자이니치 안에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표팀에서 쭉 뛰고 있기도 했고요. K리그의 관심을 받아서 좋은 조건으로 많이 이야기는 오갔는데 책임감이 있어서 못 갔어요.
- 축구를 하는 조선적 어린이들을 위해서였던 건가요? J리그 선수로서 성공한 조선적 사례가 나 한 명은 있어야 그 친구들이 목표를 가질 수 있다.
제가 어렸을 때는 J리그에 자이니치 선수가 10명 이상 있었는데 이제 작년 재작년은 한두 명밖에 없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역시 내가 남아야 한다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협회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역시 리영직 선수가 목표다'라는 말을 듣게 되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J리그를 떠나기 어려웠죠.
▲ 그럼에도 안양에 온 이유, '은퇴 아니면 안양'
- 결과적으로는 올해 K리그로 왔습니다. 한때는 K리그1 팀 이적설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K리그2에서도 시민구단 안양으로 오시게 됐어요. 어떻게 안양을 선택하게 된 거예요?
많은 카드가 있진 않았어요. 한 팀씩 이야기하다가 결국 사인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죠. 안양도 솔직히 12월 말에 먼저 이야기하다가 그때 수비쪽 선수 한 명이 나간다는 전제로 진행됐다고 들었는데 한 번 무산되면서 제 영입도 엎어졌죠. 그 이후 다른 팀도 조건까지 다 듣고 감독님과도 미팅해서 이제 가나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계약이 무산되곤 했어요. 이미 알려진 전남 같은 경우에는 계약 직전이라는 말을 듣고 테스트 받으러 갔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안 됐죠. 그런 일이 계속됐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 뒤 은퇴하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 그러면 한국에 안 오면 은퇴였어요?
은퇴였어요. 모든 팀 입단이 무산되면 여름까지 새 팀을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에이전트가 '영직아, 안양에서 다시 이야기가 온다'고 했어요. 그때 제 마음은 안양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고 잘못되면 은퇴한다는 생각이었죠.
▲ 일본축구와 안양의 가교, 리영직
- 지금 안양에서 야치다(안양의 일본인 MF)의 통역을 굉장히 열심히 해주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야치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통역이라든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스트레스 없이 축구를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야치다에게 신경을 많이 쓰죠. 해외에서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저보다 나이가 10개(10살) 넘게 밑이라서. 그 친구를 이해하기 좀 어려운 것도 있는데 잘 신경써주려고 합니다.
- 야치다 선수가 많이 고마워합니까? 표현을 하나요?
표현은 솔직히 직접 받고 있는 것도 없어요. 야치다는 표현을 하는데 제가 모를 가능성도 있죠. 우리하고 세대가 다르니까. 고맙게 생각하라고 말은 못하니까. 일본에서도 최근에 역시 어린 선수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좀 세대가 달라지고 있거든요.
- 한국에서 요즘 MZ 세대라고….
네네. 일본도 그런 세대가 있어요. 지금 야치다가 그런 세대니까. 그리고 지금 야치다 나이가 제가 프로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데 선배하고 이야기할 때 태도가 다르죠. 우리는 역시 1년차, 2년차 때 형하고 이야기했을 때 너무 무서워했는데 지금 어린 선수는 편하게 이야기해요. 그건 좋은 점인데 조금 달라진 것도 있기 때문에.
- 편하게 해주는 건 좋다. 하지만 고맙다는 표현을 안 한다는 거군요. 명절 선물 안 옵니까?
없어요. 야치다가 편하게 주고 해주면 나는 그갓으로 좋습니다.
- 야치다 선수가 볼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신 얘기하겠습니다. 2세 탄생했으니까 2세 탄생 선물을 보내세요. 아기 선물이 감사를 표하기 딱 좋은 핑계입니다.
▲ 이런 서포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을 위해 승격한다
- 우여곡절 끝에 온 K리그에서 직접 뛰어보시니깐 어때요?
솔직히 일본에서 K리그는 기술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예상보다 기술적이었어요. 한국 선수들이 대체로 일본 선수보다 힘이 세니까 그걸로 축구한다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데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팀도 있었어요.
- 안양 팬들과 호흡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안양에는 많은 매력이 있어요. 도시도 좋고 시장님(최대호) 구단주를 비롯해 팬들도 어디 가서 지지 않죠. 원정을 가도 우리 서포터 소리가 크니까 홈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 경기 지면 '정신 차려라' 이런 소리 가 많이 듣는데 아니야 여기 경기장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요. 져도 응원가를 불러주고 다시 잘하자고 해주니까 이 팬들을 위하여 진짜 120%로 경기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해주는 서포터들은 진짜 너무 없기 때문에 너무 귀중하게 생각해요.
- 안양 서포터들은 열정적인 걸로 유명하죠. 영화(다큐멘터리 '수카바티 안양') 혹시 보셨어요?
봤어요. 선수들 다 봤어요. 이 팀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이런 말은 에게 너무 무겁게 생각됐어요. 저도 작년에 팀이 없어서 결국 어쨌든 은퇴하자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팀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그러니까 안양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매일 그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하고요.
- 안양에서의 목표는 당연히 습격이 되는 건가요?
무조건 다이렉트 승격이 지금 목표고. 그리고 이 축구의 수준을 더욱 높이고 싶다는 목표가 개인적으로 좀 있어요. K리그에서 생각하는 점은 자기 팀만의 컬러를 가진 팀이 너무 없어요. 광주FC는 패스와 재미있는 공격이라는 컬러가 있죠. 그런데 다른 팀들은 1부도 2부도 서로 닮은 팀들이 많아요. 그러나 안양은 최근 평가를 들어보면 조직적이다, 감독님이 추구하는 일본에 가까운 축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완벽히 그 이미지를 붙이고 싶어요.
- 주제 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리영직 선수가 살아온 길과 이 안양이라는 팀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일본축구를 많이 참고하는 팀, 일본에 살아왔지만 재일동포인 리영직. 운명적인 만남 같기도 하네요.
생각해 보면 역시 운명을 느끼는 장면도 많이 있어요. 이렇게 모든 타이밍이 맞은 적은 제 인생에서 없었어요. 안양하고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느끼기도 합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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