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해제에 반도체업계 숨통 트였다…국산화 길목에 수급 안정성 확보
미중 패권싸움 중 日 협력…"국내투자 유치기회 긍정적"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수출 규제를 해제하면서 국산화 단계를 밟고 있는 우리 반도체업계도 숨통이 트였다. 아직 100% 완성되지 않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단계에 이번 한일 경제 협력이 수급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후 3년 반 동안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주요 품목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력을 강화하는데 힘썼지만 아직 100% 국산화까지는 갈길이 멀다. 이제 겨우 일본 의존도를 9.6~24.5%포인트 낮추는 수준의 성과를 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 자료를 보면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쓰는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의존도는 2019년 88.3%에서 작년 77.4%로 10.9%포인트 낮아졌다. 여전히 70%대다. 웨이퍼 식각과 불순물 제거 공정 등에 쓰는 불화수소 의존도는 같은 기간 32.2%에서 7.7%로 24.5%포인트 낮아졌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제작 등에 활용하는 불화 폴리이미드 의존도는 42.9%에서 33.3%로 9.6%포인트 하락했다.
반도체 핵심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낮아진 데에는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국산화 노력이 컸다. 일본산 수입대체에 가장 성공한 품목은 불화수소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 초기 불화수소를 대만에서 수입하다 지금은 상당수를 국내에서 생산한 소재를 쓰고 있다.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에서 고순도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의 수입금액은 830만달러, 수입중량은 3451t으로 수출 규제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대비 각각 87.6%, 91% 감소했다.
반도체 소재 국산화 노력은 국내 기업에 성장할 기회가 됐다. 삼성전자가 출자한 솔브레인은 2020년 초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해 초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양산에 성공했다. 덕분에 2020년 4701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1조원 전후로 치솟았다. SK스페셜티(구 SK머트리얼즈) 역시 2020년 중순 개발 난이도가 높은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올해 불화수소 국산화율 목표는 70%다. 불화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SKC가 자체 기술 및 생산 기반을 확보하며 일본산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특히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일본 스미토모화학과의 기술 격차를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산업계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가 소부장 국산화의 계기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아직 100%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한 만큼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수출 규제 이전까지 국산화율이 0%였지만 지난해 말 동진쎄미켐이 양산에 성공해 이제 막 국산화 가능성이 생긴 상태다. 지금까지는 벨기에 우회 수입 등 공급망을 넓히는 시도를 지속하며 일본 의존도를 낮춰왔다. 여전히 일본 수입 의존도가 70%대인만큼 규제가 풀리면 품목별 수입 개별 허가제가 포괄 허가제로 바뀌어 수급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그동안 3개 물질을 국내에서 완벽히 대체한 게 아니라 (일본 외 다른 국가에서) 우회 수입하거나 조달처를 바꾼 것"이라며 "100원에 가져올 것을 110원, 120원에 가져왔는데 이번에 (한일 관계가) 정상화하면 원래대로 100원에 수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미중 간 패권싸움에 중국 반도체 공장이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세계 최고 수준의 소부장 기술력을 갖춘 일본과의 협력이 든든할 수 있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은 "중국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한쪽이라도 리스크를 줄인 것이라 한국으로서는 (양국 협의가) 반가운 뉴스"라며 "여전히 일본 소·부·장 업체 기술력이 높고 협의 후 일본 기업 국내 투자를 이끌 기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는 점도 희소식이다. 양국 재계 단체(전경련-게이단렌)는 각각 10억원을 출연해 미래파트너십 기금을 만들면서 기술뿐 아니라 인재 교류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정인교 교수는 "글로벌 질서와 산업이 재편되는 시기에 동아시아 선진국인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수출 규제 해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산업 협력이 늘어나면 (추가) 혜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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