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평안이 가득 이것이 하나님 나라 진짜 부자로 사는 길”

박효진 2026. 5.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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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어려운 이웃 돌보는 ‘구둣방 산타’ 김병록·권점득 부부
김병록(오른쪽) 집사와 권점득 권사가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구둣방에서 수선 중인 가방과 구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가죽과 접착제 냄새가 뒤섞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16㎡(약 5평) 남짓한 구둣방. 빛바랜 작업대 위에는 세월을 견뎌온 구두들이 저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김병록(67) 권점득(65) 집사 부부는 20년째 닳은 밑창을 갈고 망치질을 하며 쉴 새 없이 낡고 해진 신발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부부의 삶도 구둣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닮아 있었다. 장애아를 키우며 고단한 살림을 이어가면서도 7억원에 달하는 땅을 팔아 코로나19로 무너진 자영업자를 도왔고, 상으로 받은 1억원마저 노숙인을 위해 내놓으면서 세상에 흘려보냈다. 최근 구둣방에서 만난 김 집사 부부는 여느 때처럼 묵묵히 구두를 고치고 있었다.

거리의 소년, 복음을 접하다

김 집사의 구두닦이 인생은 열두 살 가장 외롭고 추웠던 거리에서 시작됐다. 그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계부의 폭력을 피해 열 살에 가출했다”며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로 연명하며 길 위에서 잠을 청하던 버려진 삶이었다”고 털어놨다.

청년 시절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거칠게 살았다. 분노가 일상이었던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맞서던 야생 같은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그를 교회로 이끈 사람은 누님이라 부르던 업소 사장이었다. 늘 예배를 권유하던 사장을 피해 다니던 그에게 운명 같은 사건이 찾아왔다.

김 집사는 “어느 날 손님과 큰 싸움이 벌어져 가게가 엉망이 됐는데 사장님은 화를 내는 대신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고 기억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울어준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병원비와 합의금까지 대신 내준 사장이 성경책 한 권을 건네며 “교회에 나가라”고 권유했을 때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그는 “나 같은 꼴통이 교회에 간다고 비웃을까 봐 성경을 신문지에 싸서 들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에 그간 억눌렸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죽음 문턱서 덤으로 받은 인생

하나님을 알아갈 무렵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교회 집사이던 의사 권유로 받은 검사에서 폐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다. 김 집사는 “유흥업소 지하에서의 생활로 쌓인 먼지와 담배 연기에 찌든 흔적이 몸에 남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의 문턱, 오갈 곳조차 없던 그는 기도원에 머물며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평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눈물로 서원했다.

“그때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인데 하나님이 기적처럼 살려주셨지요. 지금도 폐 기능은 정상의 20~30%에 불과하지만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건강도 미래도 불투명했던 시절 아내는 “직업에 귀천이 없고 나 또한 부족한 사람”이라며 그의 곁을 지켰다.

결혼 후에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식당 운영, 택시 운전 등 여러 일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구두 수선 도구를 손에 쥐고 다시 생계를 이어갔다. 부부는 1남 2녀를 낳았다. 그중 막내아들은 다운증후군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부부에게 그 아들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김 집사는 “장애가 있는 아들 덕분에 노숙인과 쪽방촌 이웃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고 헌신할 수 있게 됐다”며 “아들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는 선물을 매일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구두 수선공, 거리의 산타 되다

서울역 앞 광장 지하도와 서울역서부 텐트촌에서 노숙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 가족 제공

김 집사는 요즘 본업보다 나눔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구둣방 인근에서는 헌 구두를 고쳐 나누는 ‘무료 구두 나눔방’을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이면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서울역 텐트촌을 찾아 노숙인들에게 빵을 나누며 기도하고 수요일에는 서울 종로구 쪽방촌의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목요일에는 중구 남대문시장 등에서 길거리 이발 봉사를 한다.
김 집사가 서울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길거리 이발 봉사를 하는 장면. 가족 제공


그가 산타 모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집사는 “선물을 주고 행복을 전하며 늘 기다려지는 존재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력이 나빠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노숙인들이 멀리서도 빨간 모자를 보고 자신을 금방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배려도 담겨 있다. 남편이 산타가 돼 쪽방촌을 누비는 동안 구둣방을 지키는 아내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권 권사는 “나누는 삶을 통해 남편이 행복해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더 닮아가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라고 웃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저금을 해둘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 다른 길을 택했다. 2020년 평생 모아온 경기도 파주의 땅 3만3000㎡(약 1만평)을 조건 없이 내놓았다. 7억원에 이르는 그 땅은 코로나19로 신음하던 파주 시민들을 위한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쓰였다. 김 집사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웃을 보며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며 “자녀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며 아이들에게도 재정보다 값진 봉사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2024년 제2회 HD현대아너상 최우수상(개인 부문)과 1%나눔상에 각각 선정돼 총상금 1억원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 상금 역시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이를 밑거름 삼아 경기도 고양에 ‘산타빵은행’을 설립했다. 김 집사는 “노숙인들을 만나고 쪽방촌을 다니다 보니 밥해 먹기 힘든 분들에겐 쌀보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타빵은행, 기적이 시작되는 곳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경기도 고양의 산타빵은행 사무실의 불빛이 환하게 켜진다. 김 집사 부부와 부부가 출석하는 예수인교회(민찬기 목사) 성도, 자원봉사자 등 20여명이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전할 빵과 음료를 포장하기 위해 모인다.

김 집사가 직접 빵을 사기도 하고 기업들이 후원하기도 한다. 수선방 앞 ‘행운의 항아리’에 모인 이웃의 동전까지 더해져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김병록 권점득(앞줄) 부부와 아들 다니엘(앞줄 가운데)씨, 산타빵은행 봉사자들이 지난 18일 경기도 고양의 산타빵은행 앞에서 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족 제공


지난 18일 산타빵은행 앞에서는 오전 10시부터 150여명의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이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날은 빵 나눔에 앞서 4월 생일자를 위한 케이크 전달식도 열렸다. 생일을 맞은 한 어르신은 “쓸쓸했던 생일에 이런 선물을 받을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웃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인근 미용실 사장은 “산타빵은행 봉사자들의 헌신을 지켜보다 우리도 힘을 보태고 싶다”며 미용 쿠폰을 전달하고 재능 기부를 약속했다. 김 집사와의 인연으로 나눔에 동참한 쪽방촌 주민 임한태(54)씨도 이날 현장에 함께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그는 매달 받는 수급비의 절반을 이곳에 기부하며 매주 새벽길을 달려온다. 임씨는 “수급자도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부모 없는 내게 독거노인을 섬기는 일은 가장 큰 보람이자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이라고 전했다.

김 집사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낮은 곳을 찾아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영원한 산타’로 남기를 소망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는 말씀처럼 주님께 거저 받은 사랑을 막힘없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제 주머니가 비워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눌수록 제 영혼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안으로 가득 찹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나라의 진짜 부자로 사는 길 아닐까요.”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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