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서 붐? 큰 서점 가지"…'한강 신드롬'서 소외된 헌책방거리

이서희 2024. 10. 1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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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열풍? 우린 잘 모르겠는데, 다들 큰 서점에 가겠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앞에서 낡은 서적 가지를 정리하던 상인은 '한강 특수'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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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청계천 헌책방 거리
곳곳 문 닫아, 남은 곳은 20여곳
기업형 중고서점·온라인 서점 영향

"독서 열풍? 우린 잘 모르겠는데, 다들 큰 서점에 가겠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앞에서 낡은 서적 가지를 정리하던 상인은 '한강 특수'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높게 쌓인 책들을 끈으로 고정하며 "우리 같은 오래된 책방에 누가 오겠나. 가끔 한강 책을 찾는 문의가 들어와도 재고가 없어 팔지 못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앞에 책들이 쌓여있다. [사진=이서희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 작가의 서적만 10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전국 서점가에 활기가 돌고 있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온 '독서 열풍'에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헌책방 거리에는 딴 나라 이야기다.

이날 찾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엔 쓸쓸한 공기가 맴돌았다. 청계천 전태일 다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250m가량 이어진 책방 거리엔 '○○서림', '□□서적' 등의 간판이 줄지어 있었지만 이미 영업을 중단한 듯 불이 꺼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듬성듬성 문을 연 가게 앞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낡은 서적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지만, 책을 구매하러 들어가는 이들은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33년간 책방을 운영하는 현모씨는 "한 작가가 노벨상 받고 나서 이틀 정도 한강 책을 찾는 문의가 많이 왔었다"며 "지금은 다시 예전이랑 똑같다. 가끔 한강 책을 찾으러 와도 다른 책은 구경하지 않고 나가버리기 때문에 독서 열풍 같은 분위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앞에 책들이 쌓여있다. [사진=이서희 기자]

인근에서 책방을 운영 중인 또 다른 상인은 "노벨상 발표 다음 날, 우리 가게에 있던 재고는 다 팔렸다. 이후부턴 문의가 오는 손님들도 재고가 없어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며 "큰 중고서점은 한강 책을 정가보다 2~3배 비싼 가격에 매입하고 그마저도 다 팔린다는데, 요즘 이렇게 오래된 헌책방에 책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겠나"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한때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국내 대표 헌책방 거리가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동네 책방이 주도하던 국내 도서 시장을 온·오프라인 대형서점과 기업형 중고서점 등이 이끌기 시작하면서다. 서울시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에 따르면 한때 120개 넘게 운영되던 청계천 헌책방은 현재 20여개로 줄었다. 반면 알라딘, YES24, 개똥이네 등 기업형 중고서점의 매장 수는 올해 기준 100여곳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독서인구가 줄어든 상황에서 일부 '독서 마니아층'이 찾던 영세 헌책방 경쟁력이 약화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도 헌책방은 독서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들이 보물찾기하듯 하나씩 오래된 문헌이나 고전을 찾아가는 재미로 방문했다"며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책을 찾아다니는 인구 자체가 감소한 데다 굳이 골목 헌책방을 가지 않더라도 재고가 많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형 중고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기에 경쟁력이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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