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의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만 원을 건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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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기자]
우리 가족은 자잘하게 아플 때면 주로 집 근처 가정의학과로 간다. 피부과, 이비인후과, 내과처럼 증상에 따라 골라 갈 병원이 많지만,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한 의사 선생님과 몇 년간 쌓아온 '라포'(rapport, 신뢰와 친밀감이 있는 관계) 덕분이다.
2021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는 아데노이드 비대증(목젖 양쪽 편도나 코 뒤쪽의 아데노이드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질환으로 어린이에게 흔히 나타난다)으로 병원을 자주 찾았다.
아이가 그때 갓 개원한 병원의 첫 꼬마 환자였던 덕분인지 의사 선생님의 기억에 유독 오래 남은 모양이다. 목이 아파 자주 힘들어하던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언젠가 조심스럽게 수술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런 경우엔 조금 더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보호자인 내게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함께 들은 아이가 겁먹은 표정을 짓자, 선생님은 금세 손사래를 치셨다.
"아니야,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고… OO이가 좀 더 크면 말이야. 그냥 혹시 몰라서 이야기한 거야."
아이 마음이 다칠까 봐 조심스러워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번은 코로나 때 체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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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마음이 다칠까 봐 조심스러워하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자료사진) |
| ⓒ marceloleal80 on Unsplash |
"아이스크림 조금만 사 먹어."
간식을 줄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었지만, 그 안에는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생님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한동안 찾을 일이 없다가, 며칠 전 감기로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 키도 훌쩍 자랐다. 선생님은 약 처방을 하시다 아이를 바라보며 물으셨다.
"약은… 물약으로 줄까? 알약 먹을 수 있니?"
이미 지난 진료 때도 알약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다시 한 번 알약도 괜찮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당부하셨다.
"알약 먹을 때는 물 많이 마시면서 먹어야 해."
오랜 시간 한 아이를 지켜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다정하고 섬세한 말투였다.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
의사 선생님 말고도, 아이 곁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어른들이 있다. 바로 우리 아파트 청소를 담당하고 계신 미화노동자 여사님이다.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까지, 변함없이 종종 마주치는 분이다.
아이가 1학년일 때, 갑자기 비가 내린 날이었다. 우산을 챙겨주러 학교 앞으로 갔지만, 하굣길이 나와 엇갈렸는지 한참이 지나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마침 그날은 등하교 알림 앱도 장애가 있어 울리지 않았고, 그 탓에 더 마음이 애가 탔다. 연락도 닿지 않고, 불안한 마음에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 그때, 마주친 여사님이 내게 건넨 한마디.
"아드님, 조금 전에 집에 가고 있던데요."
그 말에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아무 말 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아이를 눈여겨봐주고 계셨다는 사실에 따뜻함이 밀려왔다.
여사님은 늘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고, 아이도 어느새 그 인사에 응답하듯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또 한 번 기억나는 건, 아파트 안에서 택배차가 빠르게 후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 근처에 내 아이가 있었는데, 이를 본 경비 아저씨가 당황한 나보다 먼저, 더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그렇게 후진하면 어떡해요! 여긴 애들이 다니는 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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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안, 택배차의 빠른 이동을 보고 화내던 경비노동자가 있었다(자료사진). |
| ⓒ dariendesigns on Unsplash |
병원에서, 등하굣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아파트 한편에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의 하루를 말없이 살펴봐 준 어른들이 있었다.
직업상의 만남이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들이다. 그런 어른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게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지켜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세상엔 때때로 아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어른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그런 따뜻한 어른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이 세상에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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