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반이민 정책 선두에 선 유럽… 관용은 더이상 없다
세계 곳곳에서 이민자와 난민 유입에 대한 자국민의 반발이 들끓고 있다.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극우 정당이 부상하자 이에 놀란 각국 정부는 앞다퉈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 정책을 강화하는 중이다.
특히 인권 보호와 관용의 상징이던 유럽이 이제는 반이민 정책의 선두에 서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독일에서 나타났다. 독일은 수년간 유럽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나라였지만 최근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의 흉기테러 등 난민 범죄가 잇따르자 반이민 여론이 급격히 커졌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부터 인접 9개국 국경을 통제하며 입국 검문을 강화했다. 또 탈레반이 장악한 고국 상황을 감안해 내쫓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범죄자들을 3년 만에 추방했고, 케냐와 불법 이민자 송환에 협조한다는 내용의 이민 협약을 체결했다. 오는 15일부터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도 불법 이민자 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다.
유럽연합망명청(EUA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망명 신청 51만3000건 중 24%가 독일로 향했다. 독일 외국인등록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독일에 거주하는 난민은 지난해 말보다 6만명 증가한 348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중 3분의 1인 118만명이 우크라이나 난민이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국경 통제는 불법 이민을 막고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와 같은 심각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유럽 최대 난민 수용국이던 독일이 국경을 걸어 잠그는 상황이니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의 미셸 바르니에 신임 총리는 최근 의회에서 “유럽연합(EU)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독일이 최근에 시행한 것처럼”이라며 국경 통제를 시사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도 불법 이주민 추방 제도 정비와 구금 기간 연장을 통해 이민 문제에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노 르타이오 신임 내무장관도 “국민은 거리와 국경에서 더 많은 질서를 원한다”며 “불법 체류자를 엄격히 단속하고 가능한 한 많이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가 이민 문제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난민 구금을 최대 18개월까지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알바니아에 이민자 수용 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해상에서 구조한 불법 이민자를 알바니아의 이민자 센터로 보내 망명 신청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머물게 한 뒤 망명이 거부된 사람은 출신국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와 알바니아가 협정을 체결한 뒤 이민자 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목숨을 건 항해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해도 곧바로 알바니아로 이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며 전 정부 시절 르완다로 이민자를 이송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영국은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모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하면서 이 모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웨덴은 자발적으로 귀국하는 난민에게 최대 3만 유로(4430만원)를 지급하기로 했고, 벨기에는 난민 혜택을 축소했다. 네덜란드는 ‘국가적 난민 위기 사태’를 선언하며 “네덜란드를 망명 신청자들에게 최대한 덜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벨라루스 국경에 5.5m 높이의 철제 장벽을 설치했다. 이 같은 변화가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나다와 호주도 마찬가지다. ‘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렸던 캐나다는 내년 유학생 비자 발급 건수를 10% 줄이고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마크 밀러 캐나다 이민장관은 “(이민자가) 캐나다에 오는 건 (캐나다가 제공하는) 특혜이지 (이민자가 가진) 권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호주 역시 내년 유학생 수를 27만명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는 유학생 수는 역대 최대인 70만명이다.
강력한 이민 정책의 배경에는 경제 불황과 치안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스웨덴 유럽정책연구소의 베른트 파루셀 선임연구원은 “경제성장 둔화와 만성적인 주택 부족, 치안 불안 등이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이민자 배척이 노동력 부족과 경제 둔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이민자 유입으로 유로존 노동력이 증가해 EU의 잠재 생산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얀 반더 비크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망명 신청자들은 다른 이민자들에 비해 교육 수준과 숙련도가 낮다”며 “네덜란드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1999년 이후 들어온 난민 신청자의 3분의 2가량이 실업 상태로 수당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2026년부터 새 이민·난민 협정을 시행해 이민의 문턱을 더 높일 예정이다. 이 협정은 심사 절차 단축, 구금 허용, 신속한 추방, 생체정보 등록, 회원국 간 난민 강제 분담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와 폴란드 등 몇몇 국가는 여전히 난민 강제 분담에 반대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EU에 ‘이행 거부권’을 제출하겠다고 밝혀 시행 초기 혼란이 예상된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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