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들이 자주 찾는 대전의 이곳
박배민 2024. 9. 30. 11:57
[2024 여름 문화유산 탐방기 ④] 80년의 역사, 대전 옛 충남도청 본관
옛 충남도청 본관은 새로운 탄생을 앞두고 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이 건물은 오는 2026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진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발견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문화유산 애호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감없이 전해드립니다. <기자말>
[박배민 기자]
▲ 1층 중앙 로비에서 바라 본 옛 충남도청의 현관 |
ⓒ 박배민 |
- ③편 '황색 벽돌에 새겨진 제국의 상징'에서 이어집니다.
§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대전근현대사전시관)
§ 분류 : 국가등록문화유산 (2002년 지정)
§ 주소 : 대전 중구 선화동 287-2
§ 탐방일 : 24. 6. 19.
옛 충남도청 본관은 새로운 탄생을 앞두고 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이 건물은 오는 2026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2032년, 이 건물이 지어진 지 100년이 되는 해가 다가온다. 한 세기 동안 대전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본 이곳은, 그 세월의 흔적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게 된다.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하기 전 옛 모습을 내 눈으로 하나하나 남겨둘 좋은 기회를 얻었다.
붉은 벽돌의 후면
▲ 구 충남도청 본관의 후면. 정면에 비해 투박하다. |
ⓒ 박배민 |
본관 정면에 이어 후면을 살펴보자. 정면의 황색 스크레치 벽돌이 화사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면, 후면의 붉은 벽돌이 주는 느낌은 투박하고 소박한 인상을 풍겼다. 구 충남도청사의 후면은 붉은색 벽돌로 가득 차 있었다. 마구리쌓기(벽돌의 짧은 면을 노출되게 쌓는 방식)로 벽돌을 쌓고 일정한 패턴으로 내어 쌓기해 음영이 드리웠다. 벽돌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음영 효과는 단순한 벽면을 한층 더 입체감 있게 보이도록 했다.
▲ 패턴에 따라 벽돌을 내어쌓기한 덕분에 입체감이 살아난다. |
ⓒ 박배민 |
남측 입구를 떠나 주차장 반대편에 있는 북측 입구로 들어간다. 북문에 들어서 우측 복도를 따라 걷는데, 홑창을 넘어온 빛이 나와 복도를 부드럽게 감싼다. 낡은 창문과 옛 방식의 손잡이, 고요가 내려앉은 복도, 유리창을 뚫고 실내를 비춘 햇살의 모습은 내가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처럼 1980년대로 시간 여행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 본관 북측 창문. 옛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햇살이 들이치고 있다. |
ⓒ 박배민 |
로비 - 정교함과 불쾌한 이질감의 공존
▲ 로비 쪽에서 북쪽 복도를 바라 본 모습 |
ⓒ 박배민 |
회의가 시작됐는지 어수선하던 1층은 이제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이 돌았다. 내 발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로비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그 복도가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구 충남도청 본관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사용되었었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서울의 봄>, <변호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라이프 온 마스>가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이 건물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주말 촬영을 앞두고 차량 출입이 통제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 남측 복도에 보는 1층 중앙 로비 |
ⓒ 박배민 |
중앙 로비의 벽면은 외관의 투박한 벽돌과는 대조적으로,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상단은 하얀 페인트로 마감되어 깨끗한 느낌을 주었고, 하단은 대리석이 덮여 있어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발아래에서는 신용카드만한 작은 네모난 타일들이 정갈하게 정렬되어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끌었다.
▲ 1층 로비 아치홀의 모서리를 보자마자 문어 빨판이 연상됐다. |
ⓒ 박배민 |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현관과 마주한 채 놓여 있었다. 아치형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모서리에는 문어의 빨판을 닮은 장식이 더해져 있었다. 그 장식들은 어딘가 이질적이었고, 끈적끈적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치며 은근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 1층과 2층을 잇는 중앙 로비 계단. |
ⓒ 박배민 |
계단 난간은 매끈한 돌로 벽을 세워 중후한 느낌을 자아냈다. 1층 난간 끝에는 작은 기둥을 세워 장식이 더해져 있었는데,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긴 계단 난간이 마치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돌을 조립하면 틈이나 홈이 보이기 마련인데, 이곳의 난간은 홈이 전혀 보이지 않고 몇 미터를 매끄럽게 이어져 있어 '정말 하나의 돌로 만든 건가'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 1-2층 계단의 난간이 아주 매끄럽다. |
ⓒ 박배민 |
2층 - 빛과 세월이 엮어낸 공간
▲ 벽 전체를 유리창을 내어 실내로 빛을 끌어 들였고, 개방감도 확보했다. |
ⓒ 박배민 |
2층에 오르자마자 두터워 보이는 나무문이 날 맞이 했다. 이 묵직한 나무문 안쪽은 옛 도지사실이라고 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전시 전세피해지원센터와 대전시장의 제2집무실이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온다. 1층이 충남도청 본관의 옛 모습을 되살려 전시와 함께 역사적인 감성을 강조했다면, 2층은 조금 더 실용적인 느낌이 강했다.
'근현대사 아카이브'에 따르면, 2018년 즈음에는 '도지사 집무실'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꾸며 놓았던 듯한데, 필자가 방문한 시점에는 도지사 집무실은 따로 보이지 않고, '대전시장 제2집무실'이라는 현판만 보였고, 문 또한 굳게 닫혀 있었다.
▲ 2018년 당시 충남도지사 집무실의 전시 모습 |
ⓒ 근현대사 아카이브 |
마침 회의가 끝났는지, 아까 보았던 두텁고 커다란 나무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공무원들이 쏟아져 나오며 복도가 순식간에 분주해졌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사람들을 피해 천천히 오른쪽 복도를 한 바퀴 돌고 오니, 대회의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반대쪽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도 열려 있었다. 테라스가 살짝 보이는 그곳을 가리키며 지나가는 관리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기 둘러봐도 될까요?"
관리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유, 그럼요. 언제든지 구경하세요."
▲ 2층 중앙에 위치한 옛 도지사실 내부 모습 |
ⓒ 박배민 |
현장에서는 관리자의 호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미사용 시간에는 원래 탐방객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던 것 같다. '높은 분들의 의자' 사이를 지나 테라스로 나서자, 건물 밖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옛 충남도청 청사 앞으로 대로가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서는 대전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빌딩 사이로는 솔랑산 자락이 차분하게 보였다. 지금은 구 도청사 앞으로 고층 빌딩이 도심을 메우고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도청사는 이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나름 고층 건물이었을 것이다.
▲ 2층 중앙 테라스에서 바라 본 대전 시내 |
ⓒ 박배민 |
3층 - 창문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중앙 로비의 계단은 2층까지만 이어져 있어, 3층으로 가려면 양옆의 작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 작은 계단은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웅장한 중앙 계단과는 달리, 좁고 소박한 느낌을 풍겼다. 본래 2층으로 설계된 건물이라, 1960년대 3층을 증축할 때는 중앙 계단처럼 큰 계단을 새로 만들기 어려웠던 듯하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이 계단은, 근대 건축의 기능적 흔적을 담고 있었다.
▲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 1-2층의 웅장한 계단에 비해 작고 별 다른 특징이 없다. |
ⓒ 박배민 |
3층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1, 2층에 비해 빛도 덜 들고 조용한 분위기다. 3층에 올라서면 현대적 리모델링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주로 여러 작가와 대전 웹툰 캠퍼스 같은 창작 관련 사업단이 입주해 있어 조용하고, 업무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예술 작가를 위해 마련된 작가실. |
ⓒ 박배민 |
굳이 3층까지 오를 이유가 있다면, 계단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유리창 때문일 것이다. 그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1, 2층 창문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수직성을 강조한 2, 3층 창문은 가로 비율이 두드러진 1, 2층 창문과 대조적이어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두침침한 실내와 밝은 햇살이 비치는 창가와 묘하게 어우러지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 2-3층 계단의 창을 바라 본 모습. 본관 뒤에 위치한 ‘대전창업허브’가 보인다. |
ⓒ 박배민 |
대전에 자리한 옛 충남도청 본관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다층적인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기 전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관청 건물의 그 생동감을 이야기를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채널(브런치 등)에도 실립니다.참고 문헌 박상원. (2014). 건축으로 역사를 만나다. 전기저널,, 80-83. 전선경. (2014). 근대역사문화환경의 보전 방안 : 대전 중앙로 일대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이상희. (2013). 대전 원도심 재생을 위한 도시역사성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목원대학교]. 임석재, 『개화기-일제강점기 서울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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