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K반도체 '마지막 기회'

박소연 2026. 6. 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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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투자 결실에 취한 한국
정치논리 노사갈등 고액 성과급
호황의 '열매' 투자의 '씨앗'으로

최근 만난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지금이 한국 산업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반도체 수출이 되살아나고 주가가 오르고 실적 발표마다 시장이 환호하는 지금 뜬금없이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논리는 간단하다. 한국은 이미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왔다. 저출생과 내수 침체 성장 동력 약화까지 겹친 상황에서 이런 호황이 다시 오기는 쉽지 않다. 잘 나갈 때 경쟁자들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격차를 벌려놓지 않으면 다음번엔 그럴 여력조차 없을 수 있다. 지금이 바로 호황의 과실을 미래 경쟁력으로 전환할 때라는 것이다.

경쟁의 지형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화웨이를 앞세워 반도체 첨단 공정에 도전하면서 국가 보조금으로 메모리 추격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부활을 국가 프로젝트로 선언하고 라피더스에 수조 엔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을 무기 삼아 자국 내 생산 기반을 빠르게 재건 중이다. 이들이 목적하는 것은 하나다. 한국이 지금 쥐고 있는 기술 격차와 시장 지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실적도 실은 수십 년간 이어온 누적 투자가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만나 열매를 맺은 것이다. 과거 D램에서 일본을 밀어내고 낸드플래시 시장을 장악한 것도 결국 결정적 순간에 집중한 투자의 결과였다. 그 교훈을 우리가 가장 잘 알면서도 가장 빨리 잊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열풍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 현장에서 수십 대의 크레인이 쉼 없이 가동되며 미래 메모리 생산기지의 윤곽을 빠르게 그려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를 비롯한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 현장으로, 용인 클러스터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는다. AI 반도체 수출 호조와 맞물린 투자 확대는 침체 국면을 벗어나려는 한국 경제의 회복 동력으로 기대를 모은다. 아시아경제는 창간 38주년을 맞아 글로벌 AI시대를 견인할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가 시작되는 공사현장 위로 밝아오는 아침을 사진에 담았다. 강진형 기자

정작 기회를 앞에 놓고 한국은 내부에서 소모 중이다. 노조는 성과급을 놓고 파업 카드까지 꺼냈다가 가까스로 합의했다. 정치권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으로 이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노동자 처우 개선과 지역 균형발전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경제 효율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는 지금 이 구도는 만년 적자이던 창신메모리(CXMT)가 이번 호황에 매출 700% 이상 급증했다는 사실과 겹쳐 보면 더욱 씁쓸하다.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다. 오늘의 투자 결정이 5년 뒤의 생산 능력을 결정한다. 호황기에 거둔 수익은 단기 배당에 그칠 게 아니라 차세대 공정과 첨단 패키징 기술에 집중 투입돼야 한다. 열매를 나누면서도 나무를 더 크게 키울 때다. 지금 이 호황이 다음 호황의 씨앗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투자와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착공이 계획대로 속도를 내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볼 때다. 정부의 보조금 규모와 지원 속도 역시 경쟁국 수준과 냉정하게 비교해봐야 한다. 성과에 취해, 혹은 정치적 눈치를 보느라 재투자에 소홀해진다면 그 공백은 중국이 조용히 채울 것이다. 전문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마지막 기회는 대개 마지막인 줄 모르고 지나친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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