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시장 구조개혁 파장]② 보험 선지급 수수료와 무저해지상품

조회 2392025. 1. 3. 수정

낮은 계약유지율, 보험업 소비자 불신 근원

보험상품 개발 소비자 편익증대 최우선해야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목적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위험에 대비해 사전에 ‘보험료’를 부담하고 위험이 현실화되면 ‘보험금’을 보상받는다. 공동체가 직면한 불안정한 미래를 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참여해 공동으로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보험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평가하는 이유다.

그런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보험사고는 보험에 가입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확률로 나타나지 않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보험계약 이후 가입자 마음이 바뀌거나 처지가 달라져서 당초 계획한 계약만기까지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보험사 계약유지율은 1년 84.4%, 2년 65.4%, 5년 41.5%이다. 특히 생보는 1년 83.2%, 2년 60.7%, 5년 39.8%로 더 낮다. 보험가입자는 2년 이내에 10명중 4명이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고 포기하며 5년이 지나면 6명이 중도해지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상품가입을 잘못했거나 아니면 고객의 처지가 바뀌어 계약변경 필요성을 권고하는 ‘보장분석’ 결과에 따른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이 경우 해약은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좋은 상품이 출시된 것처럼 호도해 정상계약을 불법 승환계약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영업현장에서는 많다.

보험은 사고보장비용과 사업비용 때문에 중도해지하면 계약자가 돌려받는 돈이 납입한 원금을 밑돌고 무해지환급형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특히 선지급으로 지출된 신계약 판매수수료에는 미래에 발생할 ‘계약유지비’ 등이 포함돼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보장기능이 강한 상품일수록 돌려받는 금액은 더 적어진다. 보험상품은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보험료를 미리 납부한다. 중도에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으로 납부했던 ‘보험료’의 일부를 돌려받거나 아니면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받는 2가지의 지급구조를 가진다.

‘무저해지환급형상품’은 중도해지시에 돌려받는 ‘해지환급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금액만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대신 보험료를 일부 할인해주는 상품이다. 2024년 9월(누적) 기준으로 생보의 보장성상품 신규판매시장에서 95.7%는 설계사가 고객을 직접 대면해 계약을 체결한다. 이러한 생보 대면채널 신규실적의 67.4%는 중도해약할 때 돌려받는 돈이 거의 없는 무저해지환급형이다. 손보 역시 보장성상품 신규판매의 대면채널 비중은 91.7%이고 그 중 무저해지환급형이 94.3%에 달한다.

이처럼 ‘무해지환급형’이 요즘 보험판매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장기계약 유지가 어려운 보장성상품 해지가 증가하면 덩달아 고객불만이 폭증하고 보험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경험이 쌓여 나쁜 선입견이 각인되면 쉽게 바꾸기 어려워진다. 무해지상품에 가입해 3년을 성실히 납입하고 승환계약이 이루어지면 3600%, 5년 지나면 6000%를 손해봤다고 소비자는 인식한다.

2023년 무해지환급형상품의 수입보험료 대비 보험지급율은 생보 6.8%, 손보 14.1%로 매우 낮다. 표준형상품의 보험지급율이 생보 82%, 손보 61.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무해지환급형상품에 가입한 고객은 납입한 보험료를 사고보장 대가로 인식하기 보다는 보험사에 돈을 빼앗겼다는 식으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5년 이내 보험계약유지율이 41.5% 수준이므로 60% 가까운 사람은 보험에 가입해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비자 부담을 줄이고 보험사 신계약 증대를 위해 보험료 할인이 핵심인 무저해지상품을 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과 보험사 사업비 증가만 초래한 모양이 됐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고 보험가입을 권유한 설계사에 대한 원망도 커질 수밖에 없다.

보험에 대한 부정적 영업환경 확산은 장기적으로 설계사 소득 창출력과 자생능력을 떨어뜨린다. 무저해지환급형 상품을 공급하는 보험사는 판매중개인에게 높은 판매수수료를 지급해도 재무적으로 적당한 이익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GA와 설계사는 높은 선취판매수수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유혹으로 선지급수수료 관행은 상품을 제조해 공급하는 보험사와 판매하는 GA입장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지만 소비자편익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선지급수수료 관행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험사와 판매인들이 상품구조와 수수료운영방식을 바꾸는 일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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