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시간씩…” ‘노벨상’ 한강의 인상적인 말·말·말
“상은 책을 쓴 다음의 아주 먼 결과이지 않나.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지금은)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뒤 스웨덴 공영 SVT방송과 인터뷰)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과거 발언이 연일 재조명되고 있다.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한국 문학계에 기록적인 성과를 남기고도 상에 연연하지 않거나, 오로지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작가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던 지난 10일 이후 8일째인 이날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한강의 발언들을 모아봤다.
한강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단행본 ‘채식주의자’(2007년)는 동명의 작품과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 육식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주인공 영혜가 폭력을 거부하고 극단적인 채식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폭력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국내 문학계의 큰 이슈였다. 영국의 맨부커재단이 1969년 제정한 맨부커상은 영연방 국가의 작가에게 주는 상인 맨부커 부문과 영연방 외의 작가와 번역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으로 나뉜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선정한 이유로 “한국의 오늘에 관한 소설이며 수치와 욕망,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위험한 시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한강은 상을 탄 뒤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한다”며 중의적인 소감을 남겼다. 또 “인간에 관해 질문하고자 했다”면서 “이 책을 10년 전에 썼는데 지금 이 상을 받게 된 게 조금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에 대해 다소 덤덤한 모습은 수상 직후 국내에서 진행된 언론 간담회에서도 나왔다. 그는 “상은 책을 쓴 다음 아주 먼 다음의 결과”라며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강은 맨부커상 수상 이후인 2016년 5월 KBS1 프로그램 ‘TV, 책을 보다’에서 방송인 김창완과 영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김창완이 채식주의자에서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한 장면을 읽으며 괴로워하자 “폭력적인 장면에 민감한 편이다.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를 보면 토하거나 며칠 아프기도 한다. 가장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게 폭력의 장면”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장면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람(주인공)이 왜 폭력을 견디기 어려운지는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말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썼다)”고 설명했다.
반면 요즘의 관심사로는 ‘밝은 것’을 꼽았다. 한강은 ‘요즘 최대 관심사는?’이라는 질문에 “아주 밝은 것. 밝고 눈부시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인간의 어떤 지점. 투명함”이라고 답했다. 이후 인간의 그런 투명함을 다룬 작품 ‘흰’(2018)이 세상에 나왔다. 흰 역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다.
한강은 다수의 수상 소감에서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걸어가 보고 싶다”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표현으로 해석된다.
2018년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천천히, 더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올해 삼성호암상을 수상했을 때도 “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 지 삼십 년이 된 해”라며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때로 신비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즐겨 쓰는 ‘걷는다’는 말은 비단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여러 인기작이 수록된 ‘디 에센셜 한강’(2023)에서 “매일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 문장들의 밀도로 다시 충전되려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 시간씩 한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라고 말한 바 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가 근황을 전했는데, 마을 잔치를 열겠다는 부친에게 “잔치를 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한강은 이후 지난 13일(현지시간) 스웨덴 공영 SVT방송과 인터뷰에서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며 신작에 대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강이 노벨상 수상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한강은 이날 미리 준비해 온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글 쓰는 것에 대한 감상 등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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