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 총리" 말까지 돈다…이시바 당선에 일본 정치 요동
일본 정치권에 일대 파란이 예고되고 있다. 만년 ‘당내 야당’으로 불리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사실상 차기 총리인 신임 여당 총재에 27일 당선되면서다.
이제 관심은 이시바 당선인이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쏠린다. 일본은 총리에게 중의원을 해산할 권한이 있고, 총리가 조기 총선으로 국정 운영의 전기를 마련하곤 한다.
이시바 당선인은 27일 총재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해산에 대해 “야당과 논전을 주고받은 뒤, 가능한 한 빨리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총재 선출의 '컨벤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 늦어도 연내에는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말을 넘겨 내년 1월 정기국회까지 머뭇거리면, 정치자금 문제로 자민당이 공격받다가 참의원 선거를 맞이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시바 당선인의 당내 기반이 약한 만큼 곧바로 조기 해산을 통한 총선 체제로 돌입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울러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도 일본의 정치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연말이나 내년 초에 중의원 해산 카드를 던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록 당내 입지가 약하지만 이시바에게도 총선 승리에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한 주요 파벌들의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정치자금 문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퇴진할 정도로 국민적 불신을 사고 있는 이슈다. 이시바는 그간 ‘반(反) 아베’와 ‘무파벌’을 상징해온 만큼 다음 총선에서 ‘당의 얼굴’로 나설 경우 승산이 있다는 풀이다.
제1야당 대표, 노다 전 총리 변수도
야당발 변수도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새 대표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지난 23일 선출됐기 때문이다. 9선의 베테랑인 노다 대표는 총리를 지내며 경제와 외교안보 등 국가 정책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다는 입헌민주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이다. 일본 정계에선 “노다의 외교안보에 대한 생각은 자민당과 같다”는 견해가 지배적일 정도다. 실제로 그는 2021년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강한 태도로 임하겠다’고 답했다.
노다 전 총리가 입헌민주당의 전략이었던 공산당과의 선거 공조에 부정적인 것도 자민당으로선 부담이다. 지금껏 입헌민주당을 기피하던 중도층으로부터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의 당선이 자민당에 유리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노다와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고, 사고방식도 비슷해 차별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시바도 이를 경계하고 있다. 정책통으로 유명한 이시바는 “(노다는) 변론의 달인이다. 결코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매우 강력한 상대가 될 것”(지난 23일 기자회견)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쪽은 중후한 안정감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가 단순한 이미지만으로 대치하면 힘들다”며 논쟁을 통한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기시다 정권 노력 계승하겠다”
이시바는 정책적으로 기시다 정권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한 질문에 “취임 후 3년 안에 디플레이션을 완전히 탈피하겠다”며 “기시다 정권의 노력을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20년대 안에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1500엔(약 1만3800원)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올해 10월부터 적용되는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1054엔(약 9689원)이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뜻하는 ‘지방창생(地方創生)’을 통해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극 집중을 시정하는 것도 시급한 해결 과제로 제시했다. 각종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상도 그의 공약이다. 빈발하는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2026년에 ‘방재청’을 출범시키고, 향후 ‘방재성’으로 격상시킨다는 계획도 내놨다.
‘핵공유’와 ‘아시아판 나토’ 불지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에서 방위청 장관(현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는 안보 정책에선 강성파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이른바 ‘핵공유’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난 17일 토론회에서 ‘핵공유’를 거론하면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의) ‘비핵 3원칙’에 저촉되는 게 아니다”며 불을 지폈다.
그는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도 주장했다. 점차 고조되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체제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참여국가를 열거하진 않았지만 미·일을 주축으로 한국·호주·뉴질랜드 등을 포함한 체제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박창건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핵공유는 현실적으로 미국이 해주기 어려운 요구인 만큼 국내 정치 차원에서 보수층의 결집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현실화는 어렵다”며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는 현재의 느슨한 연대를 견고한 연대로 바꾸고 제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현실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내 안정화 후 중의원 해산 시기 조율”
문제는 이시바 정권의 안정성이다. “주요 파벌이 해체된 상황에서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당내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시바 당선인은 당내 세력들을 규합할 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먼저 당내 안정화를 꾀한 다음 미국 대선 이후 흐름을 보면서 중의원 해산 시기 등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번 총재선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기시다 총리가 ‘킹메이커’를 놓고 다툰 상황에서 이시바의 당선이 당내 세력간 주도권 변화를 이끌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이시바를 지지한 것으로 보이는 스가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향후 구성될 내각 구성을 보면 더욱 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진·이승호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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