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된 스핑크스의 등장, 셔터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운민 기자]
▲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를 전시하는 국립문명박물관의 입구 |
ⓒ 운민 |
한참을 뚫어지게 밖을 쳐다보다가 서편 너머로 수없이 되뇌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매머드가 뛰놀았던 시기, 단군 보다 이전에 탄생한 피라미드가 원근법을 무시한 채 압도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가 흔히 피라미드(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됨)라 불리는 사각뿔 도형의 건축물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피라미드 하면 떠오르는 고유명사는 오직 이집트의 금자탑뿐이다.
공항에 내려 우버택시를 타기 위해 승차장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혼돈의 카오스가 시작된다. 각 차들의 번호판이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꼬부랑 아랍숫자로 새겨져 있어 구분이 힘들었고, 기사들은 필자를 잡아끌며 경쟁적으로 자신의 차를 태우려 했다. 고대 로마사람들도 이집트에서 바가지를 종종 겪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고초를 겪은 셈이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로 향한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나뉘는 두 도시는 고대 이집트인에게 삶과 죽음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건너 다니는 고속도로를 지나 푸른 나일강을 건너자마자 멀리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양옆에는 낙타와 말이 시간을 거스르며 티비에서만 봤던 거대한 정육면체의 석조물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 파노라마 포인트에서 바라본 대피라미드 지구의 전경 |
ⓒ 운민 |
우리가 보는 피라미드는 사막 한가운데 황량한 장소에 독야청청 우뚝 서 있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아랫마을은 kfc, 피자헛도 있는 제법 번화한 상점가다. 곳곳에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은 저마다 피라미드가 잘 보이는 뷰라 주장하며 더위와 호객행위에 지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피라미드지구로 들어가는 입구는 카이로회담으로 유명한 전통의 고급호텔, 메나하우스 쪽에서 들어가는 동문과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입장하는 남문으로 나뉜다. 물론 깔끔한 시설을 자랑하는 동문과 달리 남문은 물어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열악하다.
남문을 통과하자마자 세월에 코가 꺾여나간 스핑크스 뒤로 2번째로 위대한 카프레 피라미드가 아른거린다. 하지만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고 몰려든 낙타꾼들 때문에 한 발을 떼기가 어렵다.
피라미드에 갇혀 있던 정신이 현실로 돌아온 순간이다. 낙타꾼들은 저마다 저렴한 가격을 부르며 3기의 피라미드가 잘 바라 보이는 파노라마 포인트로 가자고 추근거린다. 필자가 가야 할 길은 오직 정면에 바라보이는 스핑크스, 고원 너머 피라미드뿐이다.
▲ 스핑크스와 카프레피라미드의 전경 |
ⓒ 운민 |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정면에 바라보이는 피라미드의 주인, 카프레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전역에서 스핑크스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지만, 규모로나 명성으로나 여기를 능가할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스핑크스를 친견하려면 카프레의 장제전이라 불리는 옛 신전터를 지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면에는 빛과 소리의 쇼를 위한 관객석이 설치되어 있어 일반 관람객의 출입을 엄금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2500년에 지어진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인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 기자고원 아래로 펼쳐지는 기자시내와 카이로 |
ⓒ 운민 |
마땅한 그늘도 없어 태양광선에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고원으로 올라갈수록 제법 선선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현재 피라미드 3기 중 내부로 입장이 가능한 것은 쿠푸와 멘카우레 뿐이다. 각각의 피라미드 내부입장을 위해 표를 따로 끊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 석양이 지는 피라미드 지구의 전경 |
ⓒ 운민 |
우리같이 걷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는 사막길을 헤치며 나아간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찻길이 정말 잘 닦여 있어 대절 차량을 이용해 포인트 따라 투어를 하는 방법도 있고 낙타나 말을 빌려 아라비아의 상인처럼 파노라마 포인트까지 가로지르는 관광객도 적잖이 있다.
모랫길이라 걷기는 힘들어도 성인 걸음이면 30분이면 충분히 파노라마 포인트로 도달할 수 있다. 요즘은 구글지도가 전 세계 어디로든 무사히 데려다 주니 길을 잃을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피라미드의 남쪽, 언덕을 오르자마자 모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하는데,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멘카우레 피라미드와 딸린 3기의 왕비피라미드를 비롯해, 카프레, 쿠푸가 모두 한 프레임에 담겨 나오는 최적의 장소다.
수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대한 건축물에 절로 경의가 표해지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강연, 프로젝트, 기고문의는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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