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총 쏜거 맞아요.." 너무 사랑하는 남친 대신 살인미수죄 뒤집어 쓰고 은퇴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닮은꼴, 빛났던 배우 방성자

대한민국 여교사 출신 1호 여배우.

교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과 166cm의 큰 키, 서구적인 이목구비로 1960년대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지방 촬영차 내려온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1960년 영화 '애수에 젖은 토요일'로 데뷔한 뒤, 약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인형 같은 외모와 166cm의 큰 키로 주목받았다.

한때 “제2의 김지미”로 불리며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길'(1962)로 인기를 얻었지만, 김지미, 엄앵란, 이후 트로이카로 떠오른 윤정희·문희·남정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조연에 머물렀다.

시대를 앞선 스타일의 외모가 당시 관객들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1972년 1월 14일, 총성으로 뒤바뀐 인생

당시 방성자의 집에 침입 해 총격을 당한 도둑 출처:our history

모든 것이 변한 건 1972년 1월. 서울 마포구 방성자의 집에서 총성이 울렸다.

침입한 도둑이 총에 맞고 쓰러졌고, 방성자는 경찰에 자수했다.

당시 방성자는 자신이 영화 촬영 중 사용했던 권총을 보관하고 있었고, 침입한 도둑에게 공포심에 총을 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하나둘 드러났다.

당시 방성자는 일정한 수입도 없이 고급 차량을 타고, 고가의 패물과 옷을 구매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단골 미용실과 병원 관계자들은 종종 젊은 군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결국 경찰은 방성자가 공군 상병 함기준과 동거 중이었으며, 총을 쏜 당사자도 방성자가 아닌 그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다 안고 간다"

함기준은 대기업 D산업 창업주의 아들로, 미국 유학 중 결혼해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귀국 후 병역 의무를 이행하던 그는, 방성자와의 만남을 계기로 가족과 떨어져 방성자의 집에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문제의 총기는 예비역 장교였던 형이 대가성으로 받은 것을 함 씨가 몰래 방성자의 집에 숨겨둔 것이었다.

도둑이 들었을 당시, 함기준은 주저 없이 총을 쐈고 방성자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았다.

경찰의 재연 요구에 총기 사용법조차 제대로 모른 채 당황한 방성자의 모습은 곧 모든 것을 들키는 계기가 됐다.

기자회견 당시, 방성자는 침대에 누운 채 이불을 덮고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분을 위해서였다. 나를 모두 바쳐 그분을 사랑했다. 이 사건을 아름답게 받아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주치의는 방성자가 폐결핵을 앓고 있으며 심한 신경쇠약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방성자는 범인 도피와 총포화약류 단속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함기준은 1심에서 집행유예, 항소 끝에 벌금 5만 원으로 감형됐다.

함 씨의 가족은 군 고위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당번병 보직을 얻는 등 특혜를 받았던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뇌물 액수는 '작은 집 한 채 값'이었다.

사랑을 믿었던 대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랑을 지키려 했던 방성자는, 결국 버림받는다.

함기준은 집행유예 선고 후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방성자는 더 이상 스크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후 부산의 다방과 요정에서 마담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병든 몸을 끌고 수녀원이나 무료 요양소를 전전했고, 1979년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40세.

1972년, 그 밤의 총성은 도둑이 아니라 방성자에게 발사된 한 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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