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입고 하루 자고 가세요" 매장 앞 줄세운 이케아 전략 [비크닉]
■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사랑을 막 시작한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 장소로 선택한 매장이 있어요. 바로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의 공간이죠. 침대에 누워보기도 하고, 주방 코너 싱크대에서 요리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요.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끝없이 이어진 주거 전시장은 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터’였죠.
1943년 설립된 이케아는 일찌감치 ‘놀이터로서의 매장’을 제안해왔어요. 도심 외곽에 대형 매장을 지어놓고, 가구 쇼룸과 레스토랑, 휴식 공간 등을 함께 구성했죠. 마치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떠나 오랫동안 머무는 매장. 요즘은 흔해진 ‘몰링(malling·쇼핑과 여가활동을 함께 하는 것)’의 시초가 아닐까요.
오늘 비크닉은 이케아의 탁월한 매장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한 요즘, 거대한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을 지닌 브랜드가 어떻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지를요. 아울러 일상의 쇼핑은 온라인에서 하더라도, 비일상적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하고 싶어 하는 요즘 트렌드까지 짚어볼게요.
하루 1500명, 파자마 입고 몰려간 곳
지난달 31일 찾은 이케아 동부산점. 매장이 문을 여는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매장 입구에 하나둘 손님들이 모여들어요. 그런데 여느 날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모인 이들 모두가 파자마 차림이었다는 점. 주말 아침, 파자마를 입고 브런치라도 먹으러 나타난 걸까요. 맞아요. 이케아는 지난 8월 3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약 3주간 매주 토요일마다 파자마를 착용하고 이케아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오늘도, 잘 자요’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이케아 파자마 파티는 별도 예약 없이 파자마만 입고 오면 즐길 수 있는 이벤트였어요. 광명점·고양점·기흥점·동부산점에서 진행됐죠. 매장당 100~150명에게만 조식 쿠폰이 제공됐지만, 잠옷을 입고 매장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였을까요. 이날 하루에만 전국 매장에서 약 1500명이 잠옷을 입고 이케아를 찾았다고 해요. 이들은 잠옷 차림으로 가족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매장에 방문해 조식을 먹고, 이케아가 새로 마련한 수면 룸 셋(room set)을 둘러보고, 수면 워크숍에도 참여하는 등 매장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죠.
이케아의 고향, 스웨덴 엘름훌트에서는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어요. 지난달 28일 무려 2051명의 이케아 직원들이 엘름훌트의 이케아 뮤지엄 앞마당에 모였어요. 이케아가 ‘오늘도, 잘 자요’을 올해의 슬로건으로 정하면서 이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한 거죠. 한 공간에 잠옷을 입고 모은 규모로는 가장 커서 이날 이벤트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르기도 했어요.
이케아가 ‘오늘도, 잘 자요’ 외치는 이유
이케아는 매년 전 세계 사람들의 집에서의 생활을 연구해 발표하는 ‘이케아 라이프 앳 홈 보고서’를 발표해요. 전 세계 38개국 18세 이상의 일반인 3만7428명의 설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고서인데요. 동시대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매년 작성한다고 해요. 지난 2023년 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수면’을 집에서의 웰빙을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꼽았어요.
이케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수면제 시장 규모는 112조원에 달한다고 해요. 그에 반해 수면에 직결되는 매트리스 시장 규모는 70조원에 그치고요. 앞으로 수면 시장에서 침대와 매트리스 같은 수면 환경에 대한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한국인으로 국한해서 보면, 한국 사람들의 절반 이상(53%)이 집에서 하는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휴식’을 꼽았어요. 또 재미있는 것은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수면 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는 점이에요. 30%의 한국인 응답자가 숙면의 핵심 요소로 ‘홀로 자는 것’을 꼽았는데요, 이는 전 세계 1위에 해당하는 수치였어요.
이 보고서 결과에 맞춰 이케아는 매장의 새로운 수면 룸 셋을 공개했어요. 한국 매장에서는 한국인 응답자의 결과에 따라 침대를 각각 따로 두는 부부 침실이 연출됐고요. 이 밖에 질 좋은 수면을 위해 이케아가 제안하는 여섯 가지 수면 요소인 안락함·소리·조명·온도·실내공기·정리정돈도 공간에 반영됐죠.
이케아 매장에서 밤새는 상상
이케아는 집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아요. 다 보려면 최소한 몇 시간이 걸릴 만큼 방대한 물건으로 채워진 거대한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어떤 볼거리를 연출할 것인지를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죠. 벌써 10년째 보고서를 만들고, 그에 따른 인사이트에 맞춰 매장의 모습을 바꾸고 변화를 주는 이유에요. 지난해에는 ‘수납의 가능성, 이케아로’이라는 슬로건에 맞춰 다양한 수납 솔루션을 소개한 바 있어요.
무엇보다 이케아의 매장은 그 자체로 주거와 공간 트렌드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방을 새롭게 꾸미고 싶을 때, 이사를 앞두고 있을 때 이케아 매장을 떠올리는 이유고요. 어떤 특정한 제품을 원해서라기보다,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생활에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게 해요. 이런 구경하는 재미는 멀리 운전을 해서라도 기꺼이 가보게끔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요.
또한 이케아는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해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어요. 이번 파자마 파티 외에도 오는 10월 매장에서 밤을 새울 수 있는 ‘달밤 파티’를 진행한다고 해요. 응모를 통해 당첨된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로 저녁 6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 30분까지 매장 내 침실 쇼룸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이케아의 각종 수면 솔루션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죠. 불 꺼진 이케아 매장에서의 하룻밤이라는 파격적 상상을 현실로 만든 셈이죠.
고객은 돈보다 시간이 많다
약 10년간 이케아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던 안데르스 달비그(Anders Dahlvig) 전 회장이 남긴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우리는 이케아를 소풍의 목적지로 만들고 싶다”라고도 얘기했죠.
이케아는 요즘 소매(리테일) 공간이 추구해야 할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해요. 오늘 주문하면 내일 집 앞으로 물건이 배송되는 온라인 쇼핑몰의 공세 속에서 오프라인 리테일 채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기를 보여주는 거죠. 이제 물건으로 차별화하는 건 어려워요. 오프라인 가구 공룡으로 불렸던 이케아마저도 온라인 몰을 운영하며, 집 앞으로 찾아가는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까요. 물건이 아니라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지를 구상해야 하죠.
온라인 쇼핑으로 극한의 효율을 달성한 소비자들은 남는 시간 동안 뭔가 ‘할 것’을 찾고 있어요. 사실 오프라인 리테일 최후의 경쟁자는 놀이동산일지도 모릅니다. 이케아가 ‘스웨덴식 디즈니랜드’로 불리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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