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집 떠나는 고딩에게 파이팅을 보냈다 [미국 고딩 엄마로 살아남기]

오영주 2026. 4. 1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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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딩 엄마로 살아남기]한국이든 미국이든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걷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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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주 기자]

한국에서는 이제 낯선 단어가 되어버린 방학, 봄방학. 봄방학은 겨울방학이 끝나갈 쯤 노래방 추가 시간처럼 아쉬움을 달래주듯 주어지던 짧은 보너스 같은 시간이었는데, 없어진다고 했을 땐 어색하더니 이제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다들 익숙해졌다(남이 있는 곳도 있지만). 언젠가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남게 되려나? 그런데 아직 미국에서 우리는 그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4월의 봄날. 아이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내고 봄방학을 맞았다. 주어지는 시간은 딱 일주일이기에 방학이라 부르기 거창하지만 성적이란 놈을 8개월째 하드캐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요,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존재랄까. 화장실을 목전에 두었을 때가 가장 참기 힘든 고비이듯이 6월 결승점이 저 멀리 보이는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번아웃이 오기 쉬운 때이다.

보통은 이 시점에 여행을 많이 간다. 차 타고 가까운 곳이든 비행기 타고 먼 곳이든 미리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해서 떠나는 집들이 많기에 한국이라면 여행 비수기에 해당하는 이때가 미국에서는 성수기에 해당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뭐라도 경험 시켜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작정 떠났고 아이들이 크고 나니 주변 친구들이 자랑하는 여행 계획에 주눅 들어 오길래 억지로 떠났더랬지. 그래서 봄 방학이 온다는 건 나에게 은근 스트레스였다. 돈도 돈이거니와 이젠 정말 갈 데도,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특히 남편은 회사에 매인 몸인지라 시간이 여유치 않기에 무턱대고 멀리 떠날 수도 없다.

'올해는 또 어째야 하나' 하는 생각을 지난해 12월부터 했던 나다. 그런데 웬일! 그 고민은 이메일 한 통에 말끔하게 끝이 났다. 바로, 아이가 지원했던 봄방학 인턴십에 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시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유리하다. 한국도 다양한 부분에서 점수를 채워야 하지만 사실 가장 핵심은 공부이지 않나. 한국이 여러 파트 중 학업 부분에서 '누가 더 높은 산에 올랐느냐' 를 평가한다면 미국은 학업 부분을 포함해 '누가 더 많은 산들을 경험 했느냐'로 평가한다.

그래서 미국 고딩들은 4년 동안 성적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이 산, 저 산 골고루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데 그중에 가장 어려운 산 하나가 바로 인턴십이다. 대부분의 클럽 활동이나 봉사 활동, 방과 후 활동들은 내가 욕심 내고 덤비면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

하지만 사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이뤄지는 인턴십은 기회가 많지도 않고 있다 해도 소수만 뽑기에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인턴십은 입시에서 가장 큰 포인트를 딸 수 있는 활동이다. 이를 위해, 알게 모르게 사돈의 팔촌 인맥까지 작용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미국 내에 학연, 지연 따위 없는 외노자 집안인지라 일단 정보가 턱 없이 부족하다. 기대해 볼 인맥 찬스도 없으니 당연히 맨 땅에 헤딩이다.

부모로서의 마음에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인맥을 가진 사람이 또 몇 이나 되겠나. 그러니 인맥 찬스라 부르는 거지. 아이는 이러한 현실에 잠시 실망감을 보였지만 이내 받아들이고 한동안 분노의 검색질을 시작했더랬다.

그래서 알아낸 공고 몇 군데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찾아냈다는 데에 의미를 둘 뿐 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 경쟁률이 워낙 세니까. 당연히 스펙을 보거나 유 경험자를 뽑지 않겠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커먼 의심을 거둬낼 이메일 한 통을 1월에 받은 거였다. 아이는 North Carolina 주지사 행정부에서 일하는 인턴십에 선발되었고 조금이지만 시급도 받게 된다 했다.
▲ 인턴십 합격 이메일 North Carolina 주지사 행정부로부터 인턴십 프로그램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 오영주
문제는 인턴십 장소가 집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옆 동네라 매일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는데 우리처럼 멀리서 오는 아이들을 위해 프로그램에는 등록되어 있는 호스트들이 있었다. 그중 한 집을 골라 그곳에서 숙식과 픽, 드랍을 제공 받으면서 인턴십 기간 동안 머무를 수 있게 했다. 이 합격 메일 한 통으로 우리는 기적을 맛본 듯 기뻤고 그 순간의 기억은 이후로도 기분이 처질 때마다 텐션을 올려주는 특효약 역할을 톡톡히 했더랬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인턴십이 시작되기 하루 전 날인 지난 일요일, 아이를 호스트 집에 데려다주었다. 식구들 없이 멀리 집 떠나 혼자 지내는 게 처음인 아이였기에 보내는 우리도, 떠나는 본인도 복잡 미묘한 상태였는데 차분히 맞아주는 호스트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같이 들어간 집에서 나 혼자 나오고 넷이 타고 간 차는 셋만 타고 돌아오는 길.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학원에 내려주고 돌아왔을 길이지 않았을까? 때 마침 불타 오르는 노을을 보고 있자니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이건 이별 영화가 아니기에 눈물은 넣어두고 어드벤처 영화답게 파이팅을 보냈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펼쳐진 노을. 모든 아이들의 열정이 이렇게 불타오르길.
ⓒ 오영주
같은 봄, 다른 풍경. 하지만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이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은 같은 길을 지나고 있는 셈이니까.

누군가는 문제집을 넘기고, 누군가는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모습이든 그 봄을 건너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괜히 더 대견해 보인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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