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다운된 뒤 극적인 KO승 거뒀다…홍수환, 이 말에 정신 번쩍

정영재 2024. 9. 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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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특사 된 챔피언 홍수환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앞뜰에서 홍수환 선생이 펀치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 복싱 노하우를 전해주는 게 사명이라고 했다. 최기웅 기자
벌써 50년이 지났다. 1974년 7월 3일, 육군 일병 홍수환은 남아공 더반에서 아널드 테일러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경기 직후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라는 모자의 통화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3년 뒤 홍수환은 신설된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을 놓고 파나마로 건너가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맞붙었다. 열한 번을 모두 KO로 이긴 ‘지옥에서 온 악마’ 카라스키야의 강펀치에 2회 네 번이나 다운됐지만 3회 역전 KO승을 거둔다. 한국 체육사에 길이 남을 ‘4전5기 신화’였다. 은퇴 후 그는 2012년부터 10년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을 맡아 쇠락한 한국 프로복싱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홍 전 회장은 지난 7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나마에 다녀왔다.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파나마 복싱의 전설인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 길베르토 멘도사 WBA 회장 등과 만나 양국 스포츠·문화 교류 방안도 논의했다. 특히 한·중·일 3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파나마 메트로(지하철) 건설 수주를 위해 ‘복싱 인맥’을 동원해 측면 지원을 했다.

칠십 중반에도 왕성한 체력, 탁월한 기억력, 유려한 말솜씨를 유지하고 있는 홍 전 회장을 만났다. 그는 “못 싸워서 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안 싸워서 지는 건 비겁한 거다. 인생에서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면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파나마 전설’ 두란, 카라스키야 등과 교류

세계챔피언이 된 홍수환이 1974년 7월 18일 모친 황농선 여사와 함께 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Q : 대통령 특사로 파나마 다녀오셨네요.
A : “내가 세계챔피언 출신이지만, 권투 선수가 대통령 특사로 간다는 건 놀랍고 고마운 경험이었죠. 열성 복싱 팬인 물리노 대통령이 로베르토 두란과 워낙 가까운 사이거든. 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카라스키야도 영향력이 막강하고. 내 복싱 인맥을 통해 나라의 글로벌 비즈니스에 미력이나마 도울 수 있으니 고맙죠. 올해 안에 다시 파나마로 갈 계획이 있어요.”

Q : 두란 자택에도 초대 받으셨죠.
A : “주로 복싱 얘기를 나눴죠. 그 양반도 카라스키야 경기를 현장에서 봤대요. 자기들은 내가 네 번 다운되는 것 보고 끝났다고 생각해서 먼저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경기장이 조용해지더라는 겁니다. 내가 3회 50초 만에 끝냈거든. 워낙 쇼킹해서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고 해요.”

Q : 카라스키야가 그렇게 예뻤다면서요.
A : “경기 전 눈싸움을 하는데 나를 끝까지 째려보지는 않더라고. 나는 딱 봤는데 피부가 이 커피 색깔인데 그렇게 예쁘게 생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겁이 나는 거야. 얼마나 안 맞았으면 얼굴이 그렇게 깔끔하겠어요. 날 두 번 이긴 사모라도 얼마나 잘생겼는데.”

Q : 당시 주심과도 인연이 있었다면서요.
A : “경기 직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영어로 몇 마디 했더니 날 좋게 본 모양입니다. 그게 운명이죠.(주심은 홍수환이 다운됐을 때 카운트를 천천히 셌다.) 한 회 세 번 다운되면 자동 KO패 하는 룰을 바꿔서 무제한 다운제로 간 것도 운명이고. 하나님이 겸손한 사람한테 복을 준 거지, 내가 실력으로 이겼다고 생각 안 해요. 3회전 시작 직전에 암모니아를 훅 들이마셨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거든. 다 이겼다고 방심하고 나오는 카라스키야한테 제대로 한 방 먹였죠.”

Q :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도 있지요.
A : “1974년 남아공에서 챔피언 따고 개선한 뒤 7월 18일 청와대 초청을 받았어요. 박 대통령이 ‘홍 일병, 체육관 하셔야지요’ 하니까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홍 일병이 있는 충무로 수도경비사 밑에 한국체육관이 있습니다. 시설이 낡고 재정난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는 겁니다. 박통이 ‘그거 조치해 줘’ 하셨는데 한 달도 안 돼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잖아요. 정신이 없는 통에 흐지부지 된 거죠. 한국체육관이 홍수환이 거 될 뻔했는데. 하하.”

Q : 일본 선수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면서요.
A : “그랬죠. KO 시킬 수 있었는데 계속 세워 놓고 두들겨 팼다는 얘기는 좀 와전된 거고. 일본 선수와 13번 싸워 12번 이겼어요. 1970년 규슈에 가서 석연찮게 판정패 한 하라다는 2년 뒤 서울에 불러서 깨끗하게 설욕하고 병원 보냈잖아요. 할아버지가 일제 때 일본 순사한테 맞아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일본 선수한테는 절대 안 진다고 맹세했거든.”
‘1회전만 더’ 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홍수환이 두 번 만나 모두 KO로 진 상대가 멕시코의 ‘KO 머신’ 알폰소 사모라(38전 33승 32KO 5패)다. 1975년 3월 LA에서 열린 WBA 밴텀급 2차 방어전. 경기 몇 시간 전에 꿀을 두 숟갈 먹었는데 명현(瞑眩) 현상이 나타났다. “그게 확 달아오르는데 어질어질하고 술 취한 것 같은데 차라리 술이 낫지.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홍수환은 4회 KO패로 허무하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카라스키야를 KO 시키는 홍수환. [중앙포토]

76년 10월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열린 리턴 매치. 심판이 명승부를 망쳤다. 9회 홍수환이 사모라를 코너에 몰아넣고 강타를 퍼붓는데 심판이 끼어들어 둘을 확 갈라놓는다. 그리고 12회, 이번에는 사모라가 홍수환을 코너에 몰고 연타를 날리자 심판은 사모라의 TKO승을 선언해 버린다. 당시 중계 영상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못 찾았다고 홍 전 회장은 말했다. TBC(동양방송)에서 중계했는데,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내 경기 영상은 없어도 되지만 김기수 선배가 니노 벤베누티 이기고 첫 세계 챔프 된 경기 풀 영상도 없어요. 그만큼 우리나라의 기록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거죠”라고 그는 탄식했다.

홍 전 회장은 “당시 심판 장난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겼을 수 있죠. 그렇다면 카라스키야 경기는 없는 거고. 난 사모라한테 두 번 졌지만 대신 두 체급 챔프가 됐고, 4전5기 신화를 창조했잖아요. 운명인지 하나님의 섭리인지, 어쨌든 그 앞에서 인간은 늘 겸손하고 준비하는 것밖에 없어요.”

Q : 선생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작업은?
A : “지금 진행 중인데 시나리오는 아직 안 나왔어요.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였던 이주노가 음악을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로키’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로드워크 할 때 ‘바바 밤~ 바바 밤~’ 나오는 그 음악이 영화의 백미잖아요. 로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 뛰는 게 인상적이지만 나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난 군대 있을 때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정상까지 1978계단을 한 번에 뛰어 올라갔잖아요. 70년대 사회상을 보여주고 남진·이수미 노래도 나오고, 그러다가 홍수환 인생이 저랬구나, 보고 나서 느끼는 영화가 나오길 바라요.”

Q : “진정한 복서는 비참하게 쓰러지는 사람,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영혼이다”고 하셨는데요.
A : “남들 비참하게 만들어 놓고 챔피언 됐잖아. 그래 놓고 나는 편하게 은퇴한다? 그건 사나이 답지 않죠. 복서도 지는 걸 무서워하면 안 돼요. 내 마지막 국제경기에서 리카르도 카르도나한테 피를 흘리며 깨지는 사진이 SNS에 돌아다니는데 그게 제일 멋진 겁니다. 모든 건 기한이 있는 거니까 과정을 중요하게 살아야지. 맨 끝날 보면 저분이 어떻게 살았나 알 수 있거든요. 난 유튜브를 통해 노하우를 후배들한테 전수해 주는 게 남은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다시 4전5기로 되돌아갔다. 네 번째 다운 당했을 때 링사이드에 있던 큰형이 타월을 던지려다 잠깐 망설이는 새 공이 울렸다. TBC 생중계를 보시던 어머니는 “그 아새끼 와 자꾸 일어나니. 그냥 쓰러져 있으면 안 맞을 텐데” 하셨단다. 2회 끝나고 세컨드 조수현 선생이 말했다. “수환아, 1회전만 더 하고 그만 하자. 어차피 판정으로 가봐야 우린 진다. 딱 1회전만 더 뛰자.” 그건 진심으로 제자를 걱정한 사랑이라고 홍수환은 느꼈다. ‘그래 죽더라도 가슴으로 총 맞자. 등 뒤로 맞지 말자’는 각오로 다시 경기에 임한 게 기적을 낳았다.

홍수환 선생이 말했다. “뛰다 보면 숨이 곧 넘어갈 것 같이 힘든 때가 있어요. 그 고비를 넘기면 어느새 다시 호흡이 편안해지는데, 영어로 이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한다지요. 내가 그 1회전을 더 뛰지 않고 포기했다면 4전5기는 없었죠. 한국 복싱도, 대한민국 국민도 ‘1회전만 더’ 정신으로 고비를 넘기고 세컨드 윈드를 맞았으면 좋겠어요.”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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