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오징어게임' 예능, 황동혁 감독 예견이 맞았다

고은 2023. 11. 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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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고은 기자]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포스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지리널 새 예능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가 22일 공개된다. 앞서 2021년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0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아래 <더 챌린지>)는 미국 인기 게임 쇼 <더 트레이터스>(The Traitors)를 제작한 스튜디오 램버트 등이 제작했다.

<더 챌린지>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출연자 대부분이 미국 중심 영어권 국가 사람들로 구성됐다. 후줄근한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1번에서 456번까지 번호를 부여받은 참가자들의 얼굴이 낯설고 평범한 이유도 여기 있다.

드라마에 등장한 세트장, 게임을 본뜬다고 예고했던 만큼 리얼리티 예능이 어떤 차별적인 재미를 만들어 낼지 관심이 쏠렸다. 참가자 456명이 456만 달러(한화 약 60억 원)를 두고 벌어지는 생존 게임의 풍경을 들여다봤다.

드라마 세트장 및 연출 충실히 살리다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속 참가자들이 결승선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 넷플릭스
 
원작 드라마를 본 사람으로서 세트장이 주는 놀라움이 익숙하고, 게임 종류 및 진행 순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 서바이벌 예능처럼 일반인보다 연예인을 참가자로 등장시키는 게 이런 우려를 상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챌린지>는 원작을 조금 비트는 방식으로 '재미'를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관전 포인트는 중앙에 우뚝 선 캐릭터 영희와 첫 탈락자가 생긴 후 참가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확 오르는 순간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탈락 시 총에 맞아 죽었다면 <더 챌린지> 참가자들은 다행히 먹물에 맞아 쓰러진다.

공포를 유발하는 설정 없이 참가자들이 몰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줄어드는 시간을 바라보는 눈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결승선을 눈앞에 둔 참가자들이 사력을 다해 선 안으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재즈 < Fly Me To The Moon >이 잔잔하게 흐른다. 원작 드라마 서사와 연출을 충실하게 활용해 인물만 바뀐 스핀오프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었다. 

누가 456만 달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원작 드라마에는 대본을 따르는 '인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과연 <더 챌린지>는 어떤 방식으로 참가자의 캐릭터성을 만들까 궁금했다. 게임별로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다면 중간에 개인 인터뷰를 삽입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한다. '번호', '이름', '주거지', '직업' 등 기본 정보를 함께 띄워준다.

드라마 인물의 경우 공통 목표가 '돈'이었다면 <더 챌린지> 참가자들의 경우 참가 이유가 비교적 다양했다. 은퇴 이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거나 불안투성이인 자신의 한계를 깨는 것 등이 계기였다. 서비스직, 택배원, 간호사, 외과 의사 등 서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정해진 룰 안에서 어떻게 게임을 풀어나갈지 궁금해진다. 

서바이벌 예능에서 시청자가 기대하는 것은 간단하다. 판을 뒤집는 뛰어난 개인의 등장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협력해 만드는 언더독 드라마에 열광한다. 여기에 뒤통수 얼얼한 배신, 속고 속이는 거짓말과 말이 와전돼 벌어지는 감정싸움이 얹어지면 더 좋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 영화는 사람이 극한으로 몰리는 상황을 세팅해 놓고 인간의 악한 본성이 발아하는 것을 본능으로 제시한다. 타인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선'이라고 설정된 게임 속에서 그와 반대되는 '도덕성'을 발휘하는 인물들은 없는 걸까. 

<더 챌린지> 3라운드는 원작에 따르면 '줄다리기'다. 원작 게임을 염두한 참가자들은 3라운드를 진행하기 전, 5분 안에 8개 팀을 정하는 자리에서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이때 한 참가자가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남도 생각하라"며 현장을 가라앉힌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3라운드로 원작에 없던 게임인 '배틀쉽'이 진행되고 게임 시작 전 아수라장을 중재했던 참가자가 리더가 돼 팀을 이끈다. 연약하게만 보였던 선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오징어 게임> 창작자가 제작 못 한 이유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세트장을 돌아보는 <오징어 게임> 창작자 황동혁 감독
ⓒ 넷플릭스
 
<더 챌린지>는 원작의 세트장 및 소품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서바이벌 예능이다. 참가자들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생활관 속 켜켜이 쌓인 침대와 천장에 매달린 투명 돼지저금통을 보면 원작의 세트장에서 그대로 찍었다고 해도 믿길 정도다. 빨간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탈락자를 감시하는 통제실도 놀랍도록 정교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방할 수 있었을까? 

넷플릭스가 공개한 <더 챌린지> 비하인드 영상에 따르면, 제작진은 예능 세트장을 드라마 세트장과 똑같이 짓고 싶어 했다. 이에 원작 창작자인 황동혁 감독은 어떻게 지었는지, 설계도부터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조언을 해줬다. 왜 창작의 주체인 황동혁 감독이 <더 챌린지>의 자문단이 됐을까. 이유는 <오징어 게임>의 지식재산권이 넷플릭스에 귀속되어서다. 

지난 2022년 5월 20일자(한국 시간) 미국 외신 <데드라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황동혁 감독은 위와 같은 상황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인해 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더 큰 프로젝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다시 (시즌1)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지식재산권을 (넷플릭스와) 공유하도록 계약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쉬워 했다.

오징어게임이 K-콘텐츠 위상을 높였다고 온 국민이 들떠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원작 창작자는 지워진 채 미국 거대 자본이 투자된 <더 챌린지>가 눈앞에 와있다. 

물론 글로벌 OTT 플랫폼 덕분에 <오징어게임>도 진출이 어려웠던 국가와 방송국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에게 가닿을 수 있었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로 국내 드라마 제작이 대형화되고 퀄리티도 높아지는 결과 또한 가져왔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 미친 영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와 함께 IP(지식재산권)을 요구해 국내 콘텐츠 소유권을 대량 확보했고 그 결과 창작자는 저작권의 권리를 모두 빼앗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21일 오전 필자와의 통화에서 "불공정계약을 시정해서 일부라도 제작사가 함께 갖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에 드라마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조달받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식재산권을 몽땅 넘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개별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에 비해 힘이 없기 때문에 업계 전체와 정부가 연대해서 넷플릭스와 협상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 챌린지>가 재현한 웅장한 세트장에 놀라워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숨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지식재산권 독점 문제와 한국 콘텐츠 산업의 대응을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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