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의 10배까지 치솟은 암표…BBC가 폭로한 프리미어리그 불법 티켓 실태

한준 기자 2025. 9. 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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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불법 티켓 판매 실태를 보도한 영국 BBC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영국 공영방송 BBC가 프리미어리그 티켓 암시장의 실태를 고발했다. BBC 스포츠는 직접 암시장 사이트를 통해 티켓을 구입·입장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이고 구조화된 암표 거래가 리그 전반에 퍼져 있음을 확인했다.


BBC는 지난 주말 프리미어리그 4경기(맨체스터 더비·아스널·에버턴·웨스트햄)를 대상으로 불법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맨체스터 더비는 몇 주 전 이미 매진된 경기였지만, 경기 며칠 전에도 맨시티 응원석 티켓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아스널과 웨스트햄, 에버턴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공식 판매가의 2배에서 4배에 달했고, 심지어 아스널 다이아몬드 클럽이나 맨시티 터널 클럽 같은 최고급 좌석까지도 불법 거래 대상이었다. 예컨대 어떤 일본인 가족은 원가 87파운드(약 15만 원)짜리 티켓을 2,200파운드(약 383만 원)에 구입한 사례도 있었다.


BBC 기자들이 구매한 티켓은 실제 경기 입장이 가능했지만, 일부 팬들은 돈을 지불하고도 입장조차 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일부 티켓은 경기 당일 아침에야 디지털로 전송되었고, 심지어 좌석 정보가 경기 직전까지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불법 티켓 판매 실태를 보도한 영국 BBC

해외 기반 회사들, 법망 피해 거래


영국 내에서 축구 티켓 재판매는 불법이다. 각 구단이 운영하는 공식 교환 플랫폼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문제의 업체들은 스페인, 두바이, 독일, 에스토니아 등 해외에 등록되어 있어 영국 법망을 피하고 있었다.


BBC는 '라이브 풋볼 티켓', '시츠넷(Seatsnet)', '풋볼 티켓 넷' 등과 접촉했는데, 모두 영국 전화번호를 통해 티켓을 전달했다. 독일에 등록된 '티콤보(Ticombo)'는 스위스의 작은 산악 마을 엥겔베르크(인구 4,000명)에 여러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티콤보 측은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재판매 플랫폼"이라며 불법성을 부인했고, "티켓 재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규제는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주최 측 독점만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BBC에 "좋은 경험을 했다면 트러스트파일럿에 긍정적 후기를 남겨달라"는 요청까지 보냈다.


암시장, '엔데믹 수준'…팬들의 불만 폭발


BBC가 추적한 4개 사이트에는 수만 장의 티켓이 올라와 있었다. 아스널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만 해도 1만8천 장 이상이 판매 중인 것으로 표시됐는데, 이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수용 인원의 3분의 1에 달한다.


티켓 보안 전문가 레그 워커는 "실제로는 10~25%만 존재하는 '가짜 등록'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 40년간 티켓 업계에서 일하며 일본인 가족 사례처럼 피해를 수없이 봤다"며 "가격은 55파운드(약 9만6천 원)에서 최고 1만4,962파운드(약 2,606만 원)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영국 축구 서포터 협회(FSA) 역시 "팬들이 제보해온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며 "이제는 축구 전반에 퍼진 엔데믹 현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톰 그레이트렉스 FSA 의장은 "오랜 팬들이 정가에 표를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원정팬과 홈팬의 구역이 섞일 경우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단·정부의 대책 요구


프리미어리그는 50개가 넘는 불법 판매 사이트를 '비인가 목록'에 올려놨지만, 실질적인 규제는 각 구단 책임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아스널은 "불법 수단으로 티켓을 얻으려 한 계정 7만4천 개를 이미 차단했다"고 밝혔고, 에버턴은 "머지사이드 경찰과 공조해 온라인과 현장에서 암표상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BBC 조사 결과는 단순한 단속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 거점 업체들이 법적 사각지대를 활용해 대규모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정부와 리그 차원의 적극적 입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영국 B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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