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의 오늘을 만든 기억들
[김성호 기자]
수년 전 한 친구가 내게 한강의 소설을 건넸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를 좋아하는 영향으로 한강의 소설도 제법 읽어보았던 나지만, 대부분은 실망했던 터였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를 수도 있으리라고 그는 한강의 신작을 권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은 <흰>, 통상적인 소설과는 적잖이 다르다고 했다.
책장을 열자 글 반, 여백 반인 내지가 드러났다. 독자들이 빼곡한 활자를 읽기 버거워하는 탓일까. 이 책이 나올 적엔 그런 책들이 꽤나 유행을 타고 있었으므로, 나는 <흰>도 그렇고 그런 작품이 아니냐고 앞질러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쯤 살펴보았는데 과연 이 책은 표지에 적힌 '소설'이란 문구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설스럽지가 않았다. 아, 역시 한강답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번에도 그녀와의 조우가 어긋났다 여기고 물러섰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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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책 표지 |
| ⓒ 문학동네 |
며칠 전 우연히 찾은 도서관에서 전국 공립 도서관 대출 순위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출해 게시해놓은 걸 보았다. 과연 한강의 작품들이 순위 최상단에 올라 있었다. <소년이 온다>부터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까지가 그 아래 순위에 오른 책들을 큰 폭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근작이라 할 만한 <흰>은 그보다 한참 아래에 처져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은 궁금해 할 수도 있을 테다.
그건 이 작품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요즈음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낭패감을 느꼈단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또 그녀의 작품을 추천하며 '이건 그래도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따위의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 것도 한강이 가진 특징 때문이겠다.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노벨위원회는 그에 대하여 '시적 산문 poetic prose'이라 표현했는데, 풀어보자면 형태는 산문이되 다분히 시 같은 인상을 주는 문장이란 뜻이 되겠다. 말하자면 그녀의 소설 가운데 어느 것은 통상의 소설처럼 산문적 산문에 가깝고, 또 어느 것은 시적인 부분이 많아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단 이야기다.
<흰>은 그중에 어디에 속할까. 압도적으로 시적 형태가 절정에 있는 작품이라 해도 좋겠다. 1장 '나'부터 2장 '그녀'를 거쳐, 3장 '모든 흰'으로 이어지는 수십 편의 글은 각 몇 문단이 이어 붙은 짤막한 길이로 매조지된다. 요즈음 흔히 마주하는 인스타그램 피드 정도의 길이라 보면 이해가 편한데, 각 글 사이에 서사적 연결은 거의 없다 해도 좋다. 즉 독자가 흔히 기대하는 주인공이 사건을 겪고 그에 대응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흰>은 에세이집이라 해야 보다 적절할텐데, 그마저도 에세이나 수필의 형식을 제대로 띄고 있지 않아서 꼭 그러하다고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시라고 하자니 그 형식이며 추구하는 멋이 시와 같지 않으므로, 시라고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다시 읽어도 좀처럼 소설 같지는 않다. 이를 어쩔까.
서사 아닌 흰 것에 대한 온갖 단상
<흰>을 관통하는 건 서사가 아니다. 첫 머리 첫 문장에 이 책의 탄생비화가 그대로 적혀 있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는 작가 자신이 생각한 흰 것들을 무작정 써내려간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따위의 것들. 그리고 각 단어가 그대로 한 편의 글이 되게끔 그와 얽힌 경험이며 단상 따위를 지어 붙인 것이다. 모든 흰 것들이 작가에게 가까운 것부터 먼 것으로, 혹은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순서로, 아무튼 주욱 이어붙었다.
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 모음집, 그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차라리 작가 자신이라 해도 좋겠다. 한강이 희다고 여긴 것들, 그리고 그 이유가 실타래가 풀리듯 풀려나오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글쓴이가 어떤 인간인지를 읽어낸다. 그녀가 태어나기 몇 년 전 홀로 낳은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걸 보아야 했던 어머니가 있고, 훗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린 작가가 있다. 난지 두 시간 만에 갓난 아이의 숨이 끊어지고 제 품에서 식어가는 모습을 견뎌야 했던 여자의 이야기는 작가가 안고 있는 슬픔의 근원이 된 것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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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책을 건넨 친구가 적어둔 인상 깊은 구절. |
| ⓒ 김성호 |
한강의 언어로, 또 한강의 방식으로, 온갖 흰 것들을 에둘러 묘사하는 모양이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좀처럼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연 세상엔 글과 문학을 아낀단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이토록 다른 이가 있는 것이구나, 그와 같은 낯선 만남에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한다. 한편으로 소설이 사건과 사람,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어색함을 느끼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버거워하는 꼭 그 같은 이유로 다른 누구는 한강에게 열광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하얗게 웃을 밖에.
손바닥만 한 판형에 여백이 글자만큼이나 많은 책이다. 단 몇 시간이면 충분히 읽어 내릴 수 있는 글을 하나하나 깊이 곱씹으며 며칠에 걸쳐 읽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게 한강보다는 다른 이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을 준 이가 여백마다 빼곡하게 적어둔 메모, 그녀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문장들이 자주 호흡을 멈추도록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다시 찾아 읽으며 어째서 누구는 그에 울림을 얻고, 나는 그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책에 제가 얻은 인상을 적는 일은 다음 읽는 이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 아닌가 한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 책을 읽으며 먼저 읽은 이가 닿았던 생각과 얻은 울림을 돌아보는 것이 색다른 재미를 주지 않는가. 그로부터 아주 조금쯤은 감상이 나아진 대목도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때로 나도 인상 깊은 구절을 마주하면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보아야겠다고, 그렇게 한 책을 다른 누구에게 건네주어야겠다고, 그런 생각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여백이란 꼭 희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흰 것이 희지 않게 될 때 발하는 아름다움도 세상엔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고, 오로지 흰 것이 사라지는 일이 슬픔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적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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