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퇴근 불가’지만…일단 낳아달라는 정부 [1+1=0.6명④]
유민지 2024. 9. 23. 06:07
국민 절반 “저출산 대책 효과적이지 않아...지원 불충분”
낳는 것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 성장도 정부 고민 필요
근로시간 단축 등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설치해야
“정부 믿고 한 명 더 낳았다간 큰일 날 뻔했어요. 일도 육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걸요.”
정부가 저출생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출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낳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대응 정책은 쏟아내면서 정작 시행은 하세월이다.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향한다. 야심차게 내놓은 저출생 대책도 아이 낳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 현재 시행 중인 저출생 정책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반 이상(53.7%)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보통이다’는 28.1%, ‘그렇다’는 18.2%에 불과했다.
또 ‘출산 전후로 충분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질문에 기혼 응답자(1130명) 절반 가까이(45.6%)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18.6%, ‘보통’이라는 응답은 35.8%다. 정부가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들은 출산 가능성이 높은 ‘아이를 가진 가정’과 ‘임신과 출산 적령기’인 이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저출생 대책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24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신모(33)씨는 둘째가 너무 갖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고 한다. 신씨는 “일 때문에 첫째와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데, 둘째를 가지는 건 첫째에게도 아이를 봐주는 부모님께도 못할 짓”라며 “정부 믿고 한 명 더 낳았다간 일도 육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둘째 계획을 접은 김모(40)씨도 “저출생으로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낳는 데에만 신경 쓰지 말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잘 성장하게 할지 정부가 고민해 줬으면 한다”며 “예전보다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지원이 늘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충분한 지원이라는 건 상대적인 기준이지만 확실한 건 모든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가정 양육 지원을 위해 정부의 공공 돌봄 지원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으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출생률 반전에는 돌봄서비스 확대 외에도 구조적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권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초등돌봄, 무상보육, 육아휴직 등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부모가 일상에서 아이를 돌볼 ‘가족 시간’은 그대로다”라며 “아이는 하루 보고 내일 안 보고가 아니라 매일 봐야 하는 존재다. 저출생 반등을 원한다면, 근로 시간을 줄여 일상 내 규칙적인 가족 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부가 지난 6월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을 발표하며 아빠 출산휴가 기간 2배 확대, 부부 육아휴직 연장 등을 내놨지만 시행은 아직이다. 저출생 대책을 뒷받침할 ‘육아지원 3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 ‘육아지원 3법’은 현재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저출생 극복에 정치권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해당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여야 간 정치 대립에도 저출생 문제 해결 관련 이견이 없었으나, 다른 현안들에 묻혀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비슷한 상황이다. 인구부는 윤석열 정부의 인구정책 야심작으로, 각 부처의 인구정책 기능을 이관 받아 관련 예산의 배분과 조정을 하게 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인구 위기는 초당적 사안인 만큼 야당도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인구 문제 주무 부처인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공약을 냈으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다만 여야 모두 인구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진전된 논의는 없는 상태다.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부처에 대한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높다. 쿠키뉴스 설문조사에서는 ‘인구부 신설이 저출생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응답자 41.8%가 ‘그렇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낳는 것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 성장도 정부 고민 필요
근로시간 단축 등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설치해야
합계출산율 0.6명대를 목전에 뒀다. 장기간 이어진 초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국가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저출생 해법을 찾는데 온 사회가 골몰하고 있지만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저출생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편집자주- |
“정부 믿고 한 명 더 낳았다간 큰일 날 뻔했어요. 일도 육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걸요.”
정부가 저출생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출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낳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대응 정책은 쏟아내면서 정작 시행은 하세월이다.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향한다. 야심차게 내놓은 저출생 대책도 아이 낳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 현재 시행 중인 저출생 정책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반 이상(53.7%)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보통이다’는 28.1%, ‘그렇다’는 18.2%에 불과했다.
또 ‘출산 전후로 충분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질문에 기혼 응답자(1130명) 절반 가까이(45.6%)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18.6%, ‘보통’이라는 응답은 35.8%다. 정부가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들은 출산 가능성이 높은 ‘아이를 가진 가정’과 ‘임신과 출산 적령기’인 이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저출생 대책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24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신모(33)씨는 둘째가 너무 갖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고 한다. 신씨는 “일 때문에 첫째와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데, 둘째를 가지는 건 첫째에게도 아이를 봐주는 부모님께도 못할 짓”라며 “정부 믿고 한 명 더 낳았다간 일도 육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둘째 계획을 접은 김모(40)씨도 “저출생으로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낳는 데에만 신경 쓰지 말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잘 성장하게 할지 정부가 고민해 줬으면 한다”며 “예전보다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지원이 늘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충분한 지원이라는 건 상대적인 기준이지만 확실한 건 모든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가정 양육 지원을 위해 정부의 공공 돌봄 지원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으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출생률 반전에는 돌봄서비스 확대 외에도 구조적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권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초등돌봄, 무상보육, 육아휴직 등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부모가 일상에서 아이를 돌볼 ‘가족 시간’은 그대로다”라며 “아이는 하루 보고 내일 안 보고가 아니라 매일 봐야 하는 존재다. 저출생 반등을 원한다면, 근로 시간을 줄여 일상 내 규칙적인 가족 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부가 지난 6월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을 발표하며 아빠 출산휴가 기간 2배 확대, 부부 육아휴직 연장 등을 내놨지만 시행은 아직이다. 저출생 대책을 뒷받침할 ‘육아지원 3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 ‘육아지원 3법’은 현재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저출생 극복에 정치권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해당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여야 간 정치 대립에도 저출생 문제 해결 관련 이견이 없었으나, 다른 현안들에 묻혀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비슷한 상황이다. 인구부는 윤석열 정부의 인구정책 야심작으로, 각 부처의 인구정책 기능을 이관 받아 관련 예산의 배분과 조정을 하게 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인구 위기는 초당적 사안인 만큼 야당도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인구 문제 주무 부처인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공약을 냈으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다만 여야 모두 인구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진전된 논의는 없는 상태다.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부처에 대한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높다. 쿠키뉴스 설문조사에서는 ‘인구부 신설이 저출생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응답자 41.8%가 ‘그렇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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