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무한 미로 공간이 주는 공포… 영화 ‘백룸’
높은 몰입감… 21세 파슨스 연출

1990년 미국 실리콘밸리 외곽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은 어느 날 매장 지하에서 놀라운 일을 겪는다. 한쪽 벽면을 통과해 그 너머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그곳엔 노란 벽면과 격자무늬 천장, 형광등이 끝없이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공간이 있었다.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 클락은 위태롭게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클락의 심리치료사 메리 클라인(레나테 레인스베)은 뜻 모를 말을 남기고 사라진 클락을 찾으러 나선다. 그렇게 들어선 ‘백룸’에서 메리는 자신의 과거 상처와 마주하며 출구를 찾아 헤맨다.
27일 개봉한 영화 ‘백룸’(사진)에 등장하는 무한 미로 공간은 인간 내면의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물건들이 벽과 바닥에 박혀 있는 등 기괴하게 뒤틀린 초현실적 구조는 의식의 붕괴로도 읽힌다.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가 높은 몰입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불안과 공포는 강렬한 음향이 더해지며 극대화된다.
미국의 유명 장르영화 제작사 A24와 계약을 맺은 21세 신예 케인 파슨스의 연출 데뷔작이다. ‘쏘우’ ‘컨저링’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만든 공포물의 대가 제임스 완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백룸’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지식재산권(IP)이 메이저 스튜디오의 극장 콘텐츠로 진화한 첫 사례다. 불운한 인간들이 외부 세계 요소로 뒤섞인 끝없는 공간과 마주하는 ‘백룸’의 세계관은 2019년 미국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노란 벽지 두른 빈방을 찍은 이 사진에 여러 스토리가 덧붙으며 도시 괴담으로 확장됐고, 여기서 영감을 받은 파슨스 감독이 2022년 유튜브 단편 영화(페이크 다큐멘터리) ‘백룸’과 이를 토대로 한 웹시리즈를 선보여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파슨스 감독은 “사람이 사회에서 고립되면 주변과 단절되고 음모론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그런 삶을 매일,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면 얼마나 공포스럽겠느냐”며 “‘백룸’은 우리가 빠져들고 있는 획일화된 산업 사회에 대한 피로감이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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