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범죄자 취급해 쫓아내는 동대문구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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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식사 전 모습 |
ⓒ 다일복지재단 |
밥퍼가 현 위치에서 운영을 이어오기까지는 서울시와 동대문구의 승인과 협조가 있었지만 밥퍼 철거를 결심한 동대문구는 서류상의 문제와 책임을 모두 밥퍼에 돌릴 요량인 것 같다.
이런 동대문구의 새로운 작심은 인근 초고층 주상복합단지 입주와 연결되어 있다. 청량리 재개발로 값비싼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무료급식소에 대한 민원이 늘어났다고 한다.
최근 거리 홈리스들을 만나면 청량리역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다. 지난해 12월 동대문구의회는 '건전한 음주문화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구청장이 금주 지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지난 7월 청량리역 광장과 인근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해당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 정성영 구의원은 9월 3일 열린 본회의에서 청량리역 광장 음주·흡연 금지에 대한 홍보를 당부하며 "구청은 동대문경찰서와 협의해 지속적으로 단속해 노숙인들이 음주·흡연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발언했다.
광장의 음주·흡연 단속 대상으로 특정된 것은 '노숙인'이다. 이 조례에 따라 음주나 흡연을 빌미로 행동을 통제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이것이 거리 홈리스 퇴거로 이어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동대문구는 2022년 말 노점 단속을 위한 '가로환경정비 특별사법경찰'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경동시장, 약령시장, 청량리 종합시장과 청과물시장 인근 노점상들이 과격한 단속을 받기 시작했다.
노점상단체 조사에 따르면 노점상인의 노점 운영 기간은 20년 이상인 경우가 62.7%에 달하고, 40년 이상 장사한 노년의 상인 역시 다수다. 이들의 역사는 이곳 전통시장의 역사와 같지만, 이 오랜 도시의 풍경도 불법이 되었다. '청량리 고밀도 복합개발'을 꿈꾸는 구청장 아래 벌어지는 빈민 퇴거의 현장이다.
▲ 6월 25일 동대문구청 앞에서 동대문 노점상인들이 동대문구의 노점단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빈곤사회연대 |
특사경제도의 근거법인 형사소송법(제245조의10 제1항)을 보더라도 특사경 선정 영역은 "삼림, 해사, 전매, 세무, 군수사기관"을 예시로 든다. 폐쇄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이는 범죄 발생을 전제로 하는데(3항), 노점상은 범죄가 아니라 도로교통법이나 행정대집행법에 따른 과태료 부과 처분 대상에 불과하다.
어차피 경찰의 권한이 아닌 노점상 단속에 특사경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제도의 도입 취지와 맞지 않을뿐더러 위법 소지도 있다.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인에게 특사경제도는 더 일상적인 굴욕감과 강화된 폭력을 의미한다. 동대문구는 구청 공무원 7명을 특사경으로 지명하고 노점상을 단속하는 업무를 이행하도록 팀을 꾸렸다. 원래는 도로 정비를 담당했는데 이제는 특사경이라는 새로운 완장이 생긴 셈이다.
이들이 매일 노점상을 찾아와 사진을 찍어대거나 철거를 종용·협박하는데 이전과는 강도가 달라졌다. 단속하던 공무원들이 경찰복을 입고와 구청으로 조사받으러 오라고 으름을 놓고 가는 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숨 쉴 틈 없이 과태료가 날아오는 일도 노점상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동시장에서 40년 넘게 채소를 팔았던 한 노점상은 지난 8월 강제 철거를 당했다. 한밤중에 지인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에는 수십 명의 철거 용역이 있었다. 이들은 과거 구청과 협의를 해서 세웠던 천막조차 전기톱으로 잘라버렸다.
▲ 노점을 시작한 주된 이유 '노점단속 특별사법경찰제도의 문제점 및 노점상 증언대회' 자료집(2024.9.3.) (단위 : 명, %) |
ⓒ 김동식 |
즉, 노점은 일반 노동시장이 밀어낸 이들의 일자리라는 점에서, 생계를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형법보다는 관리와 협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특사경제도를 노점단속에 도입하는 무리한 형법적 조치가 노점상인들에게 심각한 폭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 지난 5월 2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쫓아내는 사람은 누구인가? 퇴거 행위의 주체가 과거에는 공공기관인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엔 민간에 의한 경우가 늘고 있다. 누구로부터 쫓겨났냐는 질문에 2011년에는 경찰, 혹은 철도경찰로부터 쫓겨났다는 응답이 54.6%, 민간 경비원은 27.2%였으나, 2024년에는 경찰과 철도경찰은 7.4%인 반면 민간 경비원의 비중이 77.8%로 높아졌다.
홈리스행동은 이러한 변화가 점증해 온 지하보도 사유화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공공공간이었던 지하보도가 상업화되거나, 소유는 공공이 하더라도 민간기업의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경비원과 홈리스의 충돌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2011년 유엔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위원회'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빈곤의 형벌화 조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형벌화 조치'란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통제하며 빈민의 자율성을 해치는 정책과 법·규제를 의미한다.
보고서는 각국에서 일어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를 ▲ 빈민이 공적 공간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제한하는 법과 규제, 관행 ▲ 공적 공간의 고급화와 민영화와 관련된 도시 계획 규제와 조치 ▲ 빈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협하는 구금과 투옥을 과도하고 자의적으로 이용하는 것 ▲ 공적서비스와 사회복지 급부에 접근하는 자격 조건을 강화해 빈민의 자율성, 프라이버시 및 가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 등으로 분석했다.
주목할 것은 이 중 세 가지 유형에 걸쳐 '공간'을 중요하게 인식한다는 점이다. 공적 공간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것, 도시의 고급화로 빈민들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것, 과도한 투옥으로 빈민을 더 많이 구금하고 생활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조치가 빈곤을 형벌화한다.
도시가 고급스럽게 변화할 때마다 빈민의 자리가 도처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 더 이상 문제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급격한 도시 발달을 겪으며 얼기설기 지어진 판잣집을 모조리 철거하고 도시를 세웠듯, 20년 된 아파트든 3년 된 빌라든 모두 없애고 새로운 신축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이 익숙한 도시 문법 속에서 산 이들에게 '개발'은 언제나 누군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일상이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서 일각에서는 도시의 안전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자라나고 있다. 지난해 여러 건의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치안 활동 강화를 표명했다. 그 이후 거리 홈리스와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한 불심검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실상 홈리스는 강력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쪽이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역 여성 홈리스 살인사건이나 6월의 남대문 앞 홈리스 살인사건, 명의도용과 요양병원 유인 입원, 강제노역, 그리고 보도조차 되지 않은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목록은 무척 길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 활동을 명분으로 한 불심검문 강화나 광장 음주 금지는 형식적으로는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빈곤으로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공적인 공간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벽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행위 자체를 범죄시할 때 가난한 이들은 끊임없이 예비 범죄자로 지목당하거나 빈곤으로 인해 프로파일링 될 위기에 처한다. 빈곤과 불평등의 골은 그렇게 악순환을 그리며 깊어진다.
▲ 7월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홈리스행동 회원들이 서울스퀘어의 홈리스 강제퇴거 중단을 요청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빈곤사회연대 |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마주치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서로 다른 타인이 같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때 사회를 유지하는 힘, 연대가 자란다.
'밥퍼'는 거리 홈리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홀로 사는 노인,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빈곤층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오랜 시간 해왔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일관된 의견이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밥퍼 철거의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도시락 배달은 이들이 맺어온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 빈곤층과 노인에게는 고립되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청량리역 광장 역시 그렇다. 이곳을 오랫동안 오가며 시장 안 일용직 일자리를 떠돌거나, 무료 급식소, 저렴한 잠자리 혹은 무료 진료소를 의지하며 살아왔던 이들에게 여기를 떠나라는 단호한 명령은 겨우 발 디딘 좁은 자리마저 앗아가는 일이다.
동대문 노점상들은 이제 노인이 된 단골들이 '만 원 한 장 들고 나와도 하루 종일 신나는 곳', '아무 때나 찾아와도 또래와 친구가 있는 곳', '오랫동안 오간 우리 동네'로 시장을 인식한다는 것을 안다. 노점상을 철거하고 '청량리 고밀도 복합개발'에 따라 큰 빌딩 안으로 시장이 들어갈 때, 처음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노점상이지만 결국엔 시장 이용자 모두가 일상을 빼앗긴다.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 김윤영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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