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길' 걷다 떠난 정태인의 삶과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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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부터 2년 전인 2022년 10월 21일, 진보정당의 책사이자 재야경제학자였던 정태인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늘 진보와 정의를 향한 투쟁으로 가득했고, 그의 마지막 길은 그를 따르던 동지들과 제자들의 깊은 애도 속에 이루어졌다.
정태인 박사의 스승이었던 박현채 선생처럼, 정태인 박사 또한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 이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목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진보정당 내에서 진보 경제 이론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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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 기자]
▲ 2013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는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
ⓒ 유성호 |
정태인 박사의 스승이었던 박현채 선생처럼, 정태인 박사 또한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 이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목도하며 눈을 감았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태인 박사는 여느 86세대처럼 독재정권에 맞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운동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돌을 던졌고, 경제학자로서 좌파 경제 이론에 몰두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며 많은 운동권 인사들이 전향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부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들이 맞섰던 권위주의적 세력과 연합하기에 이르렀다.
정태인은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박현채 선생의 가르침을 따랐고, 박현채가 세상을 떠난 1995년 이후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든 쉽게 전향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경제학자의 길을 걸었다.
한미 FTA와의 싸움, 그리고 진보 경제학자로서의 고군분투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정태인은 후배의 요청으로 당시 경제 전문가가 부족했던 노무현 후보의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노무현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그는 정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정우 정책실장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우경화를 막는 방어막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결말은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 정부 내 진보적 목소리는 크게 약화되었다.
청와대를 떠난 후에도 정태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미 FTA 체결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섰다. 그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한미 FTA 저지 본부장을 맡으며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정태인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 통합진보당 내분 속에서도 당권파와 신당권파 모두를 비판하며 입당했고, 정의당에서 진보 경제정책 수호자로 활동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진보정당 내에서 진보 경제 이론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여였다.
혁명과 현실주의, 그리고 청년들에게 남긴 유산
정태인은 언제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현실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항상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 속에서 점점 더 많은 동료들이 오른쪽으로 이동할 때, 그는 가장 왼쪽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비록 그는 말년까지도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청년들에게는 "그들의 혁명을 온몸으로, 또 진심으로 지지한다"(경향신문)고 독려하며 미안함과 희망을 동시에 전했다. 그는 끝까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태인은 대한민국 진보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구축한 독자적 경제 이론인 '세 박자 경제론' 제안자였다. 또한, 그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였고, 주류에 맞서는 정치경제학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스승 박현채의 수제자였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고,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라는 정태인의 가르침은 진보적 대안 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핵심 메시지였다.
정태인 박사가 남긴 유산은 단순한 학문적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적 지침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그가 꿈꾸었던 대안 경제학을 구축하고, 한국 사회에 진정한 진보적 대안을 실현하는 것은 이제 남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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