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형사라도 총 겨누지 마라” 어머니 한마디가 바꾼 ‘수사반장’

유주현, 최민지 2026. 10. 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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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1940~2026


최불암은 평생 드라마·연극·영화를 오가며 연기자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중앙포토]
“아니, 어떻게 그렇게 내 흉내를 잘 내는 거요?” “아유, 회장님. 그저 열심히 하는 거죠. 뭐, 파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29일 세상을 떠난 배우 최불암의 대화 한 토막이다. 지난 8월 출간된 ‘전설의 왕PD’ 표재순 연출가의 자서전에 수록됐다. 드라마 ‘야망의 25시’ 등에서 정 회장 역을 맡았던 고인을 생전 정 회장이 무척 좋아해 청운동 자택으로 여러 번 초대했다고 한다. ‘전원일기’ 팀 전체가 초대된 적도 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전원일기’ 보는 재미로 삽니다.” 정 회장 뿐 아니다.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가 방영됐던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양촌리 김 회장’은 모든 시청자의 아버지였다.

‘한국인의 아버지’로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인은 아버지를 잘 모르고 자랐다. 인천에서 영화사(건설영화사)와 신문사(인천일보)를 운영했던 선친은 35세였던 1948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국민 아버지’를 키운 건 어머니였다. 고인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명동에서 운영하던 선술집 ‘은성’은 시인 김수영·변영로·천상병·박인환·전혜린 등 당대 최고 예인들의 아지트였다. 고인은 ‘은성’에서 예술에 대한 꿈을 키우고 명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어머니는 그의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사반장’ 첫 방송날 “아무리 가짜 형사지만 사람한테 은팔찌 채우고 총 겨누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그는 종방 때까지 한 번도 총이나 수갑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본 게 두 번 정도”라고 기억하는 그는 연기를 위해 아버지의 이데아를 만들어냈다. 실제 겪어본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형을 만들어냈고, 어쩌면 그래서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아버지가 됐는 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 많은 선배 이순재의 아버지 역(1978년 영화 ‘아리랑아’)을 한 적 있을 만큼 ‘국민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연극 덕도 있다. 20대 시절 무대에서 노역 전문 배우로 연기력을 쌓은 것. 서라벌예대 시절 연출을 전공하며 연기 전공생들이 꺼려하는 노인 역을 도맡다가 연기로 방향을 틀었고, 1967년 드라마 데뷔작 ‘수양대군’ 때부터 스물일곱 나이에 가짜 주름을 그리고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했다. 아버지 역할로 본격 데뷔한 건 1974년 방송된 MBC 일일드라마 ‘강남가족’이었다. 김수현 작·표재순 연출로 최불암과 김혜자가 부부로, 송재호·김영애·유인촌 등이 자녀로 나왔다.

동료 배우 김민자와 결혼식. [중앙포토]
‘수사반장’. [중앙포토]
‘제1공화국’. [중앙포토]
‘전원일기’. [중앙포토]

고인은 ‘한국인의 수사반장’이기도 했다. 1971년부터 실화에 기반해 제작됐던 ‘수사반장’이 1984년 종방되자 시청자들의 원성이 빗발쳤고 85년 방송을 재개, 89년까지 총 18년간 방송됐다. 표재순 연출가는 “범인을 잡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서민들의 정서를 어루만졌기에 누구나 공감하며 빠져들었다. 박 반장이 없었다면 드라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는 국민드라마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수사반장은 최불암이었고, 최불암은 수사반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대 그리고 나’. [중앙포토]
영화 ‘까불지마’. [중앙포토]
교양프로 ‘한국인의 밥상’. [중앙포토]
‘기분 좋은 날’. [중앙포토]

중복 기간이 있지만 18년간 방송된 ‘수사반장’과 22년간 방송된 ‘전원일기’를 더하면 고인은 도합 40년간 MBC 드라마 왕국을 이끌었고, 박 반장과 김 회장이라는 상반된 배역을 오가면서도 어색함이 없었다. 표 연출가는 이를 ‘생활연기’라 표현한다. 그냥 그 역할이 되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연기라는 것이다.

연기가 곧 생활이 되기도 했다. ‘전원일기’에서 구걸하던 ‘금동이’를 양자로 들인 후 1985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41년간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나눔을 실천했다. 30일 초록우산은 고인의 장례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딸 동비씨가 있다.

유주현·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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