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탁지일·지원·지웅 (16) 무인가 신학교 비판… 이단 폭로 책 출간 후 갖은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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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목회자·교파 분열의 온상 무인가 신학교.' 1981년 5월 28일자 경향신문 대담 기사 제목이다. 감리교신학대학장과 문교부(현 교육부) 대학교육국장,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참여한 대담 기사 첫머리엔 "선교 100주년을 맞는 한국 개신교가 안고 있는 맹점 중 하나는 무인가 신학교"란 지적이 나온다.
책은 신학교 이단 교재로 쓰였으며 중국어와 인도네시아어로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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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위해선 신학교 바로 서야”
이단 전모 공개한 책 국내외 반향
이단 집단, 책 폐기 고소·협박
‘사과문 파동’으로 경제적 시련도

‘저질 목회자·교파 분열의 온상 무인가 신학교.’ 1981년 5월 28일자 경향신문 대담 기사 제목이다. 감리교신학대학장과 문교부(현 교육부) 대학교육국장,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참여한 대담 기사 첫머리엔 “선교 100주년을 맞는 한국 개신교가 안고 있는 맹점 중 하나는 무인가 신학교”란 지적이 나온다.
아버지 탁명환도 무인가 신학교 현장을 찾아 월간 현대종교에 이들의 기만 수법을 전한 바 있다. 주요 교단 신학대 이름을 도용하면서 “12만원만 내면 4년제 신학대 졸업장에 목사 안수까지 해준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었다. 현대종교와 주간경향, 두 매체의 합동취재팀은 총회신학대학이란 가짜 간판을 내건 서울 강남의 한 무인가 신학교를 찾아 12만원을 내고 졸업증명서를 받는 과정을 취재했다. 아버지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란 명칭을 가진 신학교가 수십 개에 달한다. 어느 게 진짜이고 어느 게 가짜인지 전문가인 나조차 알 수 없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라며 “한국교회가 바로 서려면 신학교육기관부터 바로 돼야 한다”고 적었다.
아버지는 틈틈히 작성한 이단 집단 관련 집필을 모아 86년 ‘기독교 이단 연구’란 책도 펴냈다. 이단의 정의, 이단에 대한 역사적 조명, 사도 시대의 이단들 및 니케아 공의회 이후 이단과 정통 기독교의 기준으로 한 이단 판별법 등이 실렸다. 한국교회 이단 집단의 분파와 동향도 수록됐다. 책은 신학교 이단 교재로 쓰였으며 중국어와 인도네시아어로 번역 출판됐다.
책 출간으로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회고록 ‘저 들녘에 이름 없는 들풀처럼’에서 ‘통일교의 실상과 그 허상’을 파헤쳤다. 당시 “신문에 사과문을 쓰라”고 주장하는 괴한의 침입을 받았다. 책 내용에 대한 명예훼손 건으로 경찰서에 강제 연행도 당했다. 그 사건이 불기소 처리가 되자 매우 허탈해하셨다. 민사재판으로 집이 가압류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서 집마저 강제 경매를 당하고 말았지만 어느 하나 위로해주는 이가 없다”며 “심지어 나를 통일교 편으로 매도하니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그러던 중 72년 중앙정보부(중정)에서 고문했던 이가 아버지를 찾아와 책 배포를 멈추라며 위협했다. ‘남산’의 두려움을 경험했던 아버지는 이때 “어떻게든 살아남아 시대의 증언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셨다. 이때 중재에 나선 측근이 인쇄비 보전 명목으로 300만원을 받자는 제안을 아버지께 전달했는데 이 일이 훗날 문제가 됐다. 이단 단체에 금전을 받은 걸로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측근이 횡령한 비용을 인쇄소에 대신 갚아야 했다.
통일교 관련 두 번째 책을 펴냈을 땐 ‘배포된 책자를 문제 삼아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교도소로 간 뒤 남겨질 가족 걱정에 이들 집단 관계자가 내민 사과문 일부를 수정해 건넨 아버지는 밤새도록 통곡하셨다. 아버지 명의의 사과문은 78년 여러 일간지에 보도됐다. 이때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한 건 교계의 매서운 질타였다. 결국 책 수천 권을 폐기한 아버지는 인쇄비와 종이값을 갚느라 수년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이 당시를 “생애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시련을 겪었다”며 “교만했던 내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돌이키라고 기회를 주셨다”고 회고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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