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디파 우승’ 백구영의 24년 장기 마라톤... “저무는 해인 줄 알았는데, 아직 달릴 수 있네요” [IS인터뷰]

“‘스디파’ 우승은 저에게 개근상 같아요. 24년간 춤만 춰 온 보람이 있네요. 백구영, 아직 저무는 해 아닙니다!”
댄서에서 안무가로, 그리고 퍼포먼스 디렉터로. 백구영이 약 24년간 ‘춤’ 외길을 걸으며 얻은 수식어들이다. 그는 최근 종영한 Mnet ‘스트릿 월드 파이터 : 디렉터스 워’(이하 ‘스디파’)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글로벌 댄스 디렉터들이 계급장을 떼고 퍼포먼스로 맞붙은 경연에서 거머쥔 우승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백구영은 우승 당시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며 눈물을 쏟았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백구영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안무가 겸 퍼포먼스 디렉터로 이름을 알렸다. 동방신기 ‘미로틱’, 엑소 ‘으르렁’·‘중독’·‘러브샷’, 태민 ‘괴도’, 카이 ‘음’ 등 제목만 들어도 시그니처 동작이 떠오르는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그러나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특히 최근 2~3년 동안은 자신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저무는 해’라 표현했던 백구영은 “밑에서 어린 친구들이 막 치고 올라오는데 솔직히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한때 업계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아 콧대가 높아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과거 자신이 바라봤던 선배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백구영이 춤을 놓지 않은 비결은 단순했다. 바로 ‘꾸준함’이다. 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가 남긴 명언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를 떠올렸다. 하기 싫은 날에도, 기분이 좋은 날에도 연습실을 찾았던 자신의 삶과 꼭 닮은 말이었다.

그가 우승 트로피를 ‘개근상’이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구영은 “다른 참가자가 우승했다면 감히 꺼내지 못했을 표현”이라며 겸손을 보였다. 화려한 재능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 포기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세월에 대한 선물이라는 의미다.
사실 백구영에게 ‘스디파’는 4년 전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펼칠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스트릿 맨 파이터’에 원밀리언 리더로 출전했지만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후 다른 참가자의 결승 무대를 객석에서 지켜보며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번 경연에서는 오롯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평소 K팝 안무를 제작할 때는 아티스트의 콘셉트와 팬들의 기대를 고려해야 하지만, ‘스디파’에서는 자신의 취향과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후배들에게 배운 것도 많았다. 백구영은 “크리에이터들은 후배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술보다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오랜 경력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가능성이 눈에 들어왔다는 설명이다.

백구영은 ‘스디파’ 파이널 무대의 주제로 ‘마라톤’을 택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야말로 20여 년간 이어온 안무가 인생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 초반 달리는 동작을 정교한 아이솔레이션으로 표현하며 레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저항을 뚫고 나아가는 쐐기형 대형으로 홀로 버텨온 시간의 무게를 드러냈다. 댄서들이 서로를 둘러싸고 일으켜 세우는 원형 구도에서는 ‘외로운 레이스 끝에 맞이한 연대’라는 메시지가 완성됐다.
“제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이었어요. 무대를 본 관객들이 단순히 ‘와, 멋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깊이 공감해 주길 바랐죠.”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한 백구영을 기다린 것은 가족들의 눈물이었다. 아내는 방송이 끝난 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고, 현장에 오지 못한 부모님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작 백구영 자신도 우승 트로피를 집에 가져온 뒤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마라톤이 끝났다고 해서 그의 레이스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다음 과제는 ‘2026 MAMA AWARDS(마마 어워즈)’ 오프닝 무대다. ‘스디파’ 우승자에게 주어진 특전이자, 다시 한번 자신의 저력을 글로벌 K팝 팬들에게 보여줄 기회다.
백구영은 “원래 기획 단계에서 가장 고민이 많다. 아직 뚜렷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큰일 났다”며 웃었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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