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추천된 당사자들의 자진 사퇴 결단이 솔로몬 해법”[장세정의 세상을 묻다]
박일환 전 대법관의 대통령·대법원장 갈등 조언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박일환(75) 법무법인 바른 고문 변호사의 서울 테헤란로 사무실을 찾아간 이유는 삼권분립의 핵심 축인 사법부 독립과 신뢰 회복의 길을 묻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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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관 26인제, 판결 혼란 우려
대통령·대법원장 갈등, 헌정 마비
논란 와중에 대법관 된다해도
재판 공정성 신뢰 받기 어려워
"자격 없다"는데 자리연연하나
자진 사퇴가 법원·국가 위한 길
」

Q : -민주당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사법 3법'을 강행 처리하고 검찰청 폐지에 이어 형사소송법을 전면 개정했다. 대법관 출신인데 어떻게 보시나.
A : "이번 법안은 토론이나 반대 의견 수렴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해 통과됐다. 시행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과 문제점이 드러나면 신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법왜곡죄는 판사·검사뿐 아니라 사법경찰까지 대상이라 현장에서 고소·고발이 남발돼 정상적인 절차 진행이 방해받는다고 한다. 재판소원 도입으로 헌법재판소 본연의 업무인 위헌법률심사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사건 당사자들은 남소하지 말고, 법원도 재판소원이 필요 없도록 재판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법원 행정, 고등법원 단위로 분산 필요
Q : -앞으로 대법관이 26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A : "미국의 'One-bench 시스템'처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유기적인 토론을 하려면 대법관 9명이 가장 이상적이다. 2028년부터 매년 4명씩 증원돼 대법관 26명 체제(현재 14명)가 되면 개별 사건에 대한 권리 구제의 길이 조금 넓어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26명 체제의 대법원에 부(部)가 너무 많아지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사건들이 분산돼 법령 해석의 통일성이 약화돼 서로 모순되는 판결이 나올 우려가 커진다. 이로 인해 대법원 판결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판례 정립이 어려워져 하급심과 국민께 오히려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항소심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해 정치권과 사법부에 파장을 일으켰다.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1/joongang/20261021001543469zqkz.jpg)
Q : -범여권 일각에서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가칭) 신설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A : "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더라도 국회 예산 확보, 법원 신·증축, 인사 등 고유의 행정 기능은 누군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니 기능을 없앨 수는 없다. 과거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도입했던 일선 판사들의 법원장 추천제는 현실과 맞지 않거나 인기투표, 특정 보직 출신의 독식 등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중단됐다."
Q : -그렇다면 사법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A : "판사와 사건이 몇 배로 많아진 지금은 중앙집권적 구조를 벗어나 고등법원 단위로 행정 수요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 법관 선발과 직원 배치 등을 대법원이 모두 책임지는 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문이다. 대법원장이 전국 모든 법원에 대해 행정상 책임을 부담하는 제도는 이제 개혁하면 좋겠다."
추상적 권한 해석 놓고 순환 논쟁
Q : -지난 3월 노태악 대법관 후임 제청 때부터 청와대와 대법원이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대법관 공석 상태가 방치되고 있다.
A : "헌법 규정을 보면 추상적으로 각 권한을 나눠주고 있다. 그런데 각자 문언 해석을 고집해 자기 권한을 행사하면 헌정 질서가 마비된다. 과거에는 막후 소통으로 매끄럽게 조율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제청권(대법원장), 동의권(국회), 임명권(대통령)을 놓고 순환 논쟁하는 현재 상황이 답답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과 4부 요인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과 이 대통령은 대법관 제청을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1/joongang/20261021001543689rukk.jpg)
Q : -솔로몬의 판결 같은 지혜로운 해법이 있다면.
A : "후보가 될 수 있는 모든 법관은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기만 하고, 대법관에 추천된 법관들도 가만히 있다. 국민은 사건 처리가 늦은 상태에서 내 사건을 법원이 제대로 심리하는지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대법원장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일반 법관과 대법관 후보에 오른 법관 모두 이번 사태에 책임감을 갖고 상황 해소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가능할까.
A : "솔로몬의 해법을 보면 두 어머니가 싸우는데 진짜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목숨을 위해 포기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대법관 후보자들이 스스로 사퇴하는 용단을 내리는 방법이 있다. 제청권자든 임명권자든 어느 한쪽이 '자격이 없다'고 문제삼는데도 자리에 연연해 대법관이 된다면 후배 법관들이 존경하고 따르겠나. 향후 선거법이나 정치적 사건을 판결할 경우 국민이 그 대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믿겠나. 과거 우수한 선배 법관들도 대법관 문턱을 못 넘어 아쉬움이 컸겠지만, 대승적으로 승복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지금 후보자들은 속상해도 사법부와 국가를 위해 스스로 물러나면 오히려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재임 중에 전자소송제도 도입, 고법판사제도 신설, 법조일원화를 추진한 주역이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 15회로 판사의 길에 들어선 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법관, 이명박 정부 시절 법원행정처장까지 사법부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지만, 첫 만남에서 소탈한 풍모가 느껴졌다. 구독자 13만 명을 돌파한 대법관 출신 1호 유튜버로 '차산(此山)선생 법률상식'을 운영하고 있다. EBS 방송 강연 프로그램(클래스 e)에 출연해 생활 밀착형 법률 상식을 판례 중심으로 대중에게 쉽게 설명한 내용을 묶어 『슬기로운 법률 상식』을 출간한 이력도 눈에 띈다.

구독자 13만 '대법관 출신 1호 유튜버'
Q : -대법관 출신 1호 유튜버로 활동 중이신데.
A : "1978년에 임용된 이후 34년간 판사 생활을 했고, 201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에 금융 전문가인 딸의 권유로 2018년 처음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 지금까지 동영상 200여개를 올렸고 누적 구독자가 13만명을 넘었다. 구독자의 호응을 얻어 실버버튼까지 받았다. 책도 1만 부를 넘었고 전자책으로도 냈다."
Q : -법원행정처장 재임 시절 몇 가지 의미 있는 개혁을 추진했는데.
A : "전자소송 도입은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변호사들이 굳이 법원 근처에 상주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서 재판 편의성에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등법원판사' 제도는 순환 근무로 인해 주로 40~50대 판사의 지방 전근 고충을 줄이고 재판에만 전념하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상고법원 도입 논란 등과 맞물려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그친 점이 아쉽다. 법조일원화를 역점적으로 추진했으나 우수 인재 충원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Q : -우수한 법관을 확보해 양질의 재판을 받게 하려면.
A : "옛날과 달리 요즘은 법조 일원화에 따라 변호사로 일하다 판사로 가면 가족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손실도 크고, 판사는 아무래도 사회적 시선을 더 의식해야 하니 생활이 불편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법관 정원을 늘려 업무 부담을 줄이고, 자녀 양육 시기에는 전보 발령을 자제하는 등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처우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재판정 모습. 12.3 비상계엄 재판이 중계되면서 법원과 판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공동취재단]](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1/joongang/20261021001546149bead.jpg)
좋은 법관 양성해야 좋은 재판 가능
Q : -국민 60% 이상이 "사법부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로 사법부와 법원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는데.
A : "법원에 대한 불신의 책임은 일차로 법관에게 있다고 본다. 6개월을 끈 사건인데도 사건 내용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상태로 법정에 들어오는 판사도 있다. 업무 과다인지, 능력 부족인지, 정성 부족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비상계엄 이후 재판 과정이 방송으로 중계되면서 법원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재판장의 태도도 중립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일부 판사는 법정에서 엄정함만 내세우고 재판 받는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 불신을 자초한다. 판사의 소신이나 소수설을 법정에서 당사자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일반 민사·형사 사건도 심리 지연과 소극적인 재판 진행 등으로 신뢰가 떨어진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Q : -인공지능(AI) 시대에 법원 제도와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A : "좋은 재판을 위해서는 좋은 법관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젊은 법조인이 법관을 선호하지 않는 현상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 현행 헌법에 판사의 임기는 10년(대법관은 6년)이다. 사실상 10년 임기제인데, 지금까지는 재판의 독립을 내세워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정년을 보장해준다는 것이 법원의 주장이었다. 과연 그 주장이 맞을까. 10년 일하면 차라리 떠나고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이 법원의 인적 순환을 위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평생 직업 법관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10년 임기제 법관처럼 일정 기간 치열하게 봉직하고 명예롭게 출구를 찾는 문화가 정착되면 인적 순환과 인력 충원에 유리할 수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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