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원작엔 없던 '오빠'…영어 자막에 들어간 이유

정혜승 기자 2026. 10. 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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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정혜승기자] “‘상우야’라고 해서 신기했어요. 저는 남편을 늘 오빠라고 부르거든요.”

지난 9월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영어 자막 일부분이다. 극 중 ‘미옥’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은 조여정 분의 ‘예지’가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이같이 말한다. 그러나 한국어 원작에서 미옥은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 처음 봤어요”라고 말한다. 대사에 ‘오빠’는 없다.

<가능한 사랑>의 영어 자막 작업에 참여한 번역가 달시 파켓은 “한국어 대사 한 줄을 영어로 옮기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밝혔다.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낯설다는 내용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글로벌 시청자들이 한국 문화를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켓은 “한국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반드시 공손한 표현을 써야 한다는 식의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파켓은 고민 끝에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낯설다'는 내용의 대사를 영어 자막에서는 '저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번역했다. 또 미옥이 남편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오빠(oppa)'를 그대로 음차해 넣었다. 파켓은 "이렇게 하면 '오빠'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어의 특징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15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넷플릭스는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K-콘텐츠 도약의 주역인 더빙과 자막 생태계를 조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넷플릭스의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현지화) 부문 주요 담당자들이 자리했다.

존 드미타 넷플릭스 UCAN(미국·캐나다) 글로벌 영어 콘텐츠 프로덕션 시니어 매니저도 '오빠'를 화두로 던졌다. “'오빠'에 1대 1로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없다”며 "자막이냐 더빙이냐에 따라 정말 창의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빠는 가족, 연인, 나이 많은 남성 친구까지 가리키는 말이라 영어 한 단어로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드미타 매니저는 더빙에서는 '오빠'를 적극 살린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과정 자체가 이야기를 본질적으로 한국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준다"며 "목표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지 않고 원작의 배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어느 지점부터 과하게 느껴질지도 늘 고민한다"며 균형의 어려움을 덧붙였다.

한국 콘텐츠를 대하는 해외 시청자의 태도도 달라졌다. 산더르 반 데르 풀 넷플릭스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디렉터는 "예전에는 팬들이 직접 자막까지 만들어 찾아보던 콘텐츠였다"며 "지금은 자막이든 더빙이든 집, 학교, 직장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는 콘텐츠가 됐다"고 전했다. 유럽 주요 시장에서는 한국 콘텐츠 시청 시간의 80~90%가 더빙으로 소비된다고도 했다.

제니 로스 넷플릭스 UCAN 디렉터는 "소수 팬이 찾아보던 한국 콘텐츠가 이제 하나의 문화적 시대정신이 됐다"고 말했다. 이민자 가족이나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던 한국 드라마가 이제는 친구끼리 '오늘 뭐 볼까'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선택지가 됐다는 것이다.

로스 디렉터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예로 들며 "공개 뒤 91일 동안 시청 수가 3억2510만회를 넘어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작이 됐다"고 소개했다. 주제가 '골든'이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 8주 넘게 1위를 지킨 점도 짚었다.

이들은 시청 방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배우의 연기를 원어로 듣기 위해 자막을 고르는 시청자도, 다른 일을 하며 줄거리를 따라가려 더빙을 택하는 시청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산더르 디렉터는 "결국 최종 판단은 시청자가 내린다"고 말했다.

한국 포맷의 '역수출'도 두드러진다. 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는 예능 '피지컬: 100'을 사례로 들었다. 이 포맷은 멕시코판과 이탈리아판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멕시코판은 공개 첫 주 250만 시청 수로 비영어 부문 글로벌 톱10 4위, 이탈리아판은 27개국 톱10에 올랐다. 캐서린 디렉터는 "이런 확장의 배경에는 각국 시청자가 자기 언어로 작품을 즐기게 하는 로컬라이제이션이 있다"고 말했다.

규모도 방대하다. 피지컬: 100은 한국 원작 16개, 이탈리아판 13개, 멕시코판 10개 언어로 더빙됐고 자막은 전체를 통틀어 최대 32개 언어로 제공됐다. 넷플릭스는 현재 36개 언어 더빙과 33개 언어 자막을 제작할 역량을 갖추고 전 세계 122개 파트너와 협업한다. 더빙 한 편에는 번역·연기·녹음·믹싱·품질검수 등 50~60명이 투입된다.

캐서린 디렉터는 "더빙은 부수적인 작업이 아니라 사실상 '제2의 제작'"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의 80%가 한국 콘텐츠를 본 경험이 있으며, '오징어 게임' 시즌3는 37개 언어 자막과 24개 언어 더빙으로 한국 작품 중 최대 규모의 로컬라이제이션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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