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주는 이미 불바다”…전국 소나무 불치병, 북한산도 뚫렸다

천권필 2026. 10. 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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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원 산림기술사가 경주국립공원 남산에서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돼 벌목을 앞둔 소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다. 천권필 기자


" 경주는 이미 불바다에요. 불바다. "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정규원 산림기술사가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남산은 아직 단풍철이 시작도 안했는데도 정상부까지 빛바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소나무를 말라죽이는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염 속도가 늦춰져야 문화유적의 소나무라도 살릴 수가 있는데 태풍처럼 덮치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라며 “이대로가면 보전가치가 높은 경주 소나무가 멸종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재선충병이 영남 지역을 넘어 전국의 국립공원까지 집어삼켰다. 1㎜에 불과한 소나무재선충에 수백년 된 소나무까지 힘없이 말라죽고 있다.

13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전국 23개 국립공원 중 11개 국립공원에서 재선충병 감염 및 감염 의심 고사목이 발생했다.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충청권의 속리산·월악산은 물론 서울 북한산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퍼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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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경주…1㎜ 재선충에 400년 소나무 고사


이중 경주국립공원의 재선충병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올 상반기에만 재선충병 감염으로 1만5000그루 이상을 베어냈지만 확산세를 잡지 못했다.
경주국립공원 삼릉숲에 소나무재선충 감염에 의한 고사 현상이 의심되는 소나무가 서있다. 천권필 기자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 남산도 ‘소나무 팬데믹(대유행)’을 피해가지 못했다. 배병우 사진작가의 소나무 사진작품으로 유명한 삼릉숲에도 여기저기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재선충병 방제 전문가인 정 기술사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는 눈이 없어서 소나무가 죽어가는 냄새를 맡고 날아간다”며 “남산은 암반 지역이라 밀봉해서 훈증하기가 어렵다 보니 그물망 방제 과정에서 나오는 죽음의 냄새들이 남산으로 더 많은 솔수염하늘소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국립공원 중흥사 주지인 예진스님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한 소나무들을 가리키고 있다. 천권필 기자

남산 초입에 세워진 중흥사의 400년 된 소나무들 역시 고사된 채로 베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흥사 주지인 예진스님은 “소나무를 살려달라고 아우성도 치고 찾아가기도 했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다”며 “소나무를 보고 이 절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는데 어떻게 베어내야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불국사와 왕릉 등 주요 문화유적 주변의 소나무숲으로도 피해가 번지고 있다. 김유신장군묘를 둘러싼 소나무숲은 지난 8월만 해도 온통 푸르렀지만, 불과 두달 만에 산불이 휩쓸고 간 것처럼 붉게 타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경주국립공원 구역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8월 12일(위)과 지난 7일 김유신장군묘 주변 소나무숲을 비교해보니 두 달도 안 된 사이 재선충병에 걸려 숲이 붉게 물들었다. 경주시청·경주국립공원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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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방제 딜레마…수도권까지 북상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를 죽이는 과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림청]
재선충병은 ‘소나무 불치병’으로도 불린다. 한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다. 크기 약 1㎜의 재선충은 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을 통해 소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데, 수분·영양이 지나는 관을 막아 나무를 말라죽인다.

방역당국은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매개충의 활동 시기·범위가 넓어진 데다가 방제 수단의 한계가 겹치면서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정규 경주시 산림방재팀장은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재선충병이 계속 번지고 있다”며 “경주는 국립공원뿐 아니라 문화재보호구역도 많다 보니 방제하는 데 제약이 많아 확산세를 막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산림청이 꿀벌 피해 등 생태계 영향을 고려해 2023년부터 항공방제를 전면 중단하면서 확산 저지선이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남산에 소나무재선충병이 퍼지면서 소나무가 붉게 변했다. 연합뉴스

그사이 재선충병은 수도권 등 전국으로 퍼졌다. 2022년만 해도 재선충병 감염이 확인된 국립공원은 4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두 배인 8곳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리산과 북한산, 속리산 등 3곳이 더 뚫렸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재선충병 감염이 확인된 건 2008년 이후 18년 만이다.

수도권에서 유일한 국립공원인 북한산 역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충병에 걸린 고사목이 발견됐다. 올해 경기도 내 재선충 감염목이 12만 본으로 지난해보다 70% 가까이 급증하는 등 재선충병이 북상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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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 박멸 불가능…선택과 집중 필요”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영지 인근 숲. 지난해 감염된 소나무는 잎이 떨어져 잿빛이 됐으며, 올해 감염된 소나무는 솔잎이 붉게 변했다. 녹색은 활엽수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재선충병 확산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산림 생태계 지형 자체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불은 지나가면 끝이지만 재선충병은 소나무가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 번져가기 때문에 솔숲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며 “재선충병으로 국립공원내 숲이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차원의 모니터링이나 연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재선충병까지 맞물리면서 소나무 멸종이 가속화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오충현 동국대 융합환경과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산림의 20%를 차지하는 소나무림이 10% 수준까지 감소할 수 있다“며 “재선충을 박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기 때문에 소나무를 보전해야 할 지역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주=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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