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받은 간식 하나, 10년 뒤 그 사람을 다시 찾았다

강정숙 2026. 10. 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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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 시간은 하루 걷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너무 변한 정동진이었다.

그날도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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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여성의 도보 여행기 ⑤] 변해버린 정동진, 배고파 생라면 구걸하던 동해안 도보 여행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정숙 기자]

2016년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길과 국토종주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가운데를 가로질렀으니, 이제는 우리나라 지도 걷기를 시작했다. 우선 지도의 등 부분인 동해안부터 걸었다.

처음부터 동해안을 한 번에 걸은 것은 아니었다. 경북 포항에서 출발해 울진·삼척·동해·묵호·옥계·정동진·경포·주문진·양양·속초를 지나 거진까지 갔다. 거진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이미 걸었던 길이라 생략했다.

거진까지 걸은 뒤에는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포항에서 출발해 호미곶을 지나 울산, 기장을 거쳐 부산 해운대까지 걸었다. 이렇게 동해안길을 이어 걸은 거리는 대략 500km였다. 해파랑길이 생기기 전부터 나는 7번 국도길을 따라 걸었다.

"젊은 부부에게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포항에서는 터미널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세 번 묵었다. 나름대로 숙소를 찾는 방법은 리뷰가 많은 곳을 고르는 것이다.

찾아 들어간 곳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내 차림이 달라 보였는지 남자분이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의 엄마와 내가 비슷한 나이라고 했다. 자신의 엄마는 무릎 때문에 거실에서만 지내는데, 도보 여행을 다니는 내가 멋있다고 했다. 멋있다는 말을 들으니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박비를 깎아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아내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하루 숙박비를 1만 원 깎아줬다. 나는 어딜 가든 숙박비를 깎아줄 수 있느냐고 먼저 물어본다. 5천 원을 깎아준 곳도 여러 곳이었다. 5000원이면 한 끼 식사값이 되니 나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남자 사장은 자신의 엄마와 같은 나이인 내가 홀로 이른 시간에 걸으러 나가는 것이 염려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조심해서 잘 다니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걷는 나를 염려해준 숙소는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그곳이 기억에 남아 있나 보다.

바닷가 마을은 아침이 일찍 시작되었다. 춥다고 웅크리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분들을 보니 허리가 저절로 꼿꼿이 세워졌다.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뜨는 해를 보며 조용한 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그 시간에는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은 하루 걷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부터 걷지 않으면 하루 종일 발걸음이 무겁고 힘이 없었다.

울진을 지날 때 바닷가 집에서 잠자는 것이 낭만 있을 듯싶어 일부러 바닷가 민박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낭만과 현실은 너무 멀었다. 밤새 들리는 파도 소리는 잠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바다를 보는 것은 무섭기만 했다.

정동진은 여러 번 갔던 곳이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해가 바뀔 때면 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밤새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내리면 바로 모래사장이었다. 새해 뜨는 것을 촬영하려는 사진사들과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모래사장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래사장에 서로 기대고 앉아 해 뜨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연인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언제나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 번도 해 뜨는 것을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서 파는 뜨끈한 음식을 먹으며 추웠던 몸을 녹이고, 기다려주고 있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무박 2일의 여행이었다.

그런데 너무 변한 정동진이었다. 그냥 예전의 순박한 아가씨 같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청년이 준 간식, 10년 뒤 이어진 인연
▲  주문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간식을 건네는 젊은 호스트.
ⓒ AI 생성 이미지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주문진을 걸을 때였다. 나는 숙소를 정할 때 숙박비를 1순위로 생각한다. 그날도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 작은 집 하나를 얻어 한 칸은 여성 게스트가, 한 칸은 남성 게스트가, 남은 한 칸은 남자 호스트가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게스트가 잘 수 있는 최대 인원이 8명인 아주 작은 규모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착해 보이는 남자 호스트가 반겨줬다. 하룻밤을 자고 떠나려던 이른 아침, 식탁 위에 봉지 하나와 메모가 놓여 있었다. 걷다가 먹으라며 싸놓은 간식이었다. 마음이 너무 예쁜 호스트였다. 모래사장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한 생각이 '다시 오리라'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휴가 때 나는 그곳을 다시 찾아 꽤 긴 날을 지냈다. 꼭 친정집에 온 듯 편안한 곳이었다. 호스트와 게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또 그가 해주는 밥을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이분은 게스트하우스를 하기보다는 책방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보기도 했다.

10년쯤 지나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그때의 게스트하우스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DM을 보냈다. '그때 그분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혹시 나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억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책을 냈을 때였다. 반가운 마음에 몇 권의 책을 보내드렸다. 그분은 내 생각처럼 강릉역 앞 독립서점의 책방지기가 되어 있었다. 그가 나와의 인연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준 글 덕분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일을 통해 사람과의 만남이 귀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낭만과 현실 사이, 그래도 나는 걷는다

속초를 지나면서 북적이던 풍경은 점차 사라졌고, 거진이 가까워질수록 거칠던 모래는 고운 모래로 변했다. 아야진 해수욕장을 지나고부터는 분가루처럼 고운 모래밭이었다. 차를 타고 오가는 길이 힘들었는데도 나는 매주 빠지지 않고 그 먼 길을 갔다. 힘든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았나 보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과 어우러진 하늘은 예쁘고 집도 예뻤지만, 내 배는 고프기만 했다. 너무 배가 고파 생라면이라도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하셨다. 다니다 보면 먹을 것을 구걸해야 할 때도 있다. 먹을 것을 얻으면 덜 부끄러운데 거절당하면 참 부끄럽다. 그렇지만 구걸하는 것은 내 사정이고, 거절하는 것은 그분 마음이다.

어느 날은 너무 배가 고파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우고 먹을 것을 얻고자 했던 때도 있었다. 한 여성분이었는데, 자신이 먹던 과자가 전부라고 하며 그것을 주셨다. 받아서 먹었다. 쓰러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가끔은 뻔뻔해지는 것도 괜찮다. 살다 보면 더한 일도 있다.

거진까지 간 후 다시 포항으로 와서 부산 방향으로 걸었다. 호미곶을 지나 울산을 지나는데 대부분 공장이었다. 어딜 가나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다녔다.

도착한 해운대 앞바다는 높은 건물들로 실패한 그림 같았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고 동해안길 걷기는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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