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배터리·공조… AI 데이터센터, 제조업 신시장을 열다

박상은 2026. 10.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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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면서 반도체를 넘어 전력·배터리·공조 등 국내 제조업 전반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선박용 엔진으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고 전기차용 배터리로 전력을 저장하며, 에어컨 공조 기술로 AI 서버의 열을 식히는 식이다.

이에 국내 제조기업들도 주력 사업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는 대규모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에ㅁ너지저장장치(BESS)부터 정전 등에 대응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배터리백업장치(BBU)까지 다양한 배터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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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전력 필요한 데이터센터
선박용 엔진·가스터빈 공급 주목
배터리·전력기기도 돌파구 찾아
냉난방 공조 기술 서버 냉각 한몫
타영역 제조 기술 AI 생태계 집결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면서 반도체를 넘어 전력·배터리·공조 등 국내 제조업 전반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선박용 엔진으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고 전기차용 배터리로 전력을 저장하며, 에어컨 공조 기술로 AI 서버의 열을 식히는 식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축적한 제조 기술이 AI 데이터센터라는 거대한 시장으로 집결하는 양상이다.

AI가 키운 발전시장

5일 업계에 따르면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투자는 올해 들어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 세계 데이터센터 기반 설비(DCPI) 시장은 120억 달러(약 16조2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8% 성장했다. 관련 시장은 5개 분기 연속으로 20%가 넘는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규모로 가동하는 만큼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막대한 전력을 확보해야 하고 고도화된 냉각설비도 필요하다. 이에 국내 제조기업들도 주력 사업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발전설비다. 전력망 확충이 데이터센터의 건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는 필요한 전력을 현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온사이트 발전’이 대안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선박용으로 쓰이던 엔진도 데이터센터의 전력원으로 새로운 활용 영역이 생겼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업체 코반에너지와 1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용 발전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선박 추진·발전용으로 공급해온 자체 브랜드 ‘힘센엔진’을 데이터센터의 전력 생산을 위한 발전설비로 공급하는 내용이다. 계약 금액은 9560억원으로 HD현대중공업의 반전용 엔진공급 계약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 제조기업들이 선박·발전·배터리 등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앞세워 AI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데이터센터 발전 설비로 공급되는 HD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 HD현대중공업 제공

두산그룹도 발전 기술을 AI 데이터센터에 접목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3월 미국 데이터센터용 380메가와트(㎿)급 가스터빈 7기를 수주했다. 지난해 계약한 5기를 더하면 미국에서 확보한 물량만 12기다. 두산퓨얼셀도 지난달 ㈜두산의 미국 자회사 하이엑시엄과 총 8236억원 규모의 연료전지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AI 데이터센터 전력시장에 진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380㎿급 가스터빈.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배터리·전력기기도 특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성장이 주춤했던 배터리업계도 AI 데이터센터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는 대규모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에ㅁ너지저장장치(BESS)부터 정전 등에 대응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배터리백업장치(BBU)까지 다양한 배터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AI 서버의 전력 사용량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배터리의 역할도 비상전원을 넘어 전력 부하를 조절하는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엔비디아 ‘DSX 레디’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공급 자격을 획득한 LG에너지솔루션의 ‘JF2 AC Link’ 제품. 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국내 배터리업체 중 유일하게 엔비디아 ‘DSX 레디(AI 팩토리·데이터센터 인프라 파트너 프로그램)’에 BESS 기업으로 선정됐다. 자회사 버테크를 통해 BESS 설계·운영·유지보수도 제공한다. 삼성SDI는 지난달 ‘데이터센터 월드 아시아 2026’에서 UPS·BBU·일체형 ESS와 차세대 원통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SK온도 미국 네오볼타파워와 9GWh 규모의 LFP 배터리 셀 공급계약을 맺으며 북미 ESS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는 대규모 전력을 끌어와 서버에서 사용할 수 있게 전압을 바꾸고 안정적으로 나눠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역할은 변압기·배전반 등 전력기기가 담당한다.

북미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에 AI 붐이 더해지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계는 장기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상황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7월 글로벌 빅테크와 최대 1조원대 규모의 데이터센터용 전력기기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시장 대응 차원에서 미국 앨라배마 변압기 공장도 증설하고 있다. 미국 멤피스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 중인 효성중공업도 지난달 미국 빅테크 2곳에서 AI 데이터센터용 초고압변압기를 수주했다.

LS일렉트릭은 지난 8월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고압 배전시스템 계약 규모를 기존 1064억원에서 2309억원으로 확대했다. 지난달에는 KT클라우드와 AI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공급과 모듈형 데이터센터 공동 연구·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뜨거워진 냉각시장

게티이미지뱅크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했다면 다음 과제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관리하는 일이다. LG전자는 냉난방공조(HVAC) 기술을 서버 냉각까지 확장하며 지난해 데이터센터향 칠러 수주 실적을 전년 대비 3배 수준으로 늘렸다. LG전자는 서버 칩부터 대형 냉각설비까지 아우르는 ‘칩 투 칠러’ 통합 솔루션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미국 버지니아 칠러 공장 신설과 국내 생산라인 확대에 1500억원 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약 2조4000억원에 글로벌 HVAC 업체 플랙트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광주사업장에 약 2400억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용 냉각설비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부동산·시장분석업체 JLL은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이 지난해 103GW에서 2030년 200GW로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6개 관계사가 지난달 29일 미국 AI 인프라 기업 ‘헬릭스’에 총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도 AI 데이터센터가 전력·냉각·금융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로 자리 잡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부품 공급자를 넘어 AI 생태계 구축에 직접 참여하는 주체로 위상을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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