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이 노동문제에 시니컬? '가능한 사랑'이 불러낸 질문

이선필 2026. 10. 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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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능한 사랑> 개봉 전 이창동 감독이 밝힌 줄거리는 간결했다. 지난 8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감독이 소개한 내용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이들을 촬영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남편의 이야기"였다.

그는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룬 이창동은 봉준호나 박찬욱이 최근 작업에서 보여준 불평등과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태도보다는 진지하지만, 여전히 시니컬하다는 점에서 한계적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육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노동이 사라진다는 말은 노동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되지만, 노동이 점점 안 보이는 곳으로 숨는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고, 영화는 그 존재를 목소리로 화면으로 계속 드러내 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마땅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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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동 및 영화계에서 나온 다양한 해석... 고용노동부 장관 "감사", 최승호 PD "편하지 않았다"

[이선필 기자]

▲  제83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가능한 사랑> 주역들.
ⓒ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 개봉 전 이창동 감독이 밝힌 줄거리는 간결했다. 지난 8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감독이 소개한 내용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이들을 촬영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남편의 이야기"였다. 또한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하면서 "우린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사랑이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에는 그 배경을 한층 분명히 했다. 이 감독은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동과 사람을 향한 궁극적 질문을 담았음을 말한 것이다.

지난 9월 23일 개봉 후 영화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다. 해고 노동자들의 시간을 다시 불러냈다는 반가움이 있는가 하면, 극중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촬영 대상에게 다가가는 방식에는 비판이 제기됐다. 노동자의 고통을 화면에 담는 일이 무엇을 남기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서로 다른 질문을 끌어내고 있다.

대기업 대량 해고 사태를 조준하다
▲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 넷플릭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쌍용 자동차가 나온다.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이 가족을 태우는 차가 쌍용 코란도C로 설정된 것. 파업 직전까지 실제로 이 차는 노동자들에겐 희망의 차였다. 신차만 나오면 회사의 누적 적자가 해결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이창동 감독은 오랫동안 이 사건을 취재해 왔다. 2009년 5월 22일, 평택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벌인 노동자들의 파업은 77일간 이어졌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해고 노동자와 가족의 삶에는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았다.

호석은 그 아픔을 아내 미옥(전도연)과 열한 살 아들 철이 앞에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감정을 눌러두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구해준 후배가 뒤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던 일, 사측의 분리 전략 속에 동료들과 멀어진 기억이 그에게 남아 있다. 영화가 호석의 집단 상담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8월 21일 방영된 < KBS 스폐셜 >은 실제 쌍용차 노동자들의 집단 심리 상담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상담을 이끈 정혜신 박사의 작업은 이 장면을 현실의 시간과 연결할 단서가 된다. 경찰 파업 진압 때 입은 부상으로 근육 마비를 겪고 있는 최성국씨, 남편의 해고로 유산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 아내들, 수감 생활 중인 노조 지부장 한상균씨가 모친과 만나는 과정 등이다.

공지영 작가의 르포 <의자놀이>에도 노동자들이 파업 이후 겪은 고통과 정 박사의 상담이 담겼다. 해당 도서의 내용 일부는 <가능한 사랑> 속 대사로 나오기도 한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지난 25일 SNS에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지금도 정리해고 철회 싸움을 하고 있는 세종호텔지부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졌다"고 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또한 지난 22일 SNS에 "백기완 선생님은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라 하셨다"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80년 광주를 얘기했다면 <가능한 사랑>은 2009년 평택을 떠올리게 한다. 감사드린다"고 표현했다.

상반된 영화인들의 시선
▲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 넷플릭스
<가능한 사랑>을 본 영화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플랫폼C의 홍명교 활동가는 27일 SNS에 "영화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은 예지"라면서 "미국 유학으로 영화를 배우고 왔다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기본 태도가 결여되어 있고, '노동'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서 노동 문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극중 예지의 시혜적 시선과 태도가 문제라는 게 홍 활동가의 요지였다.

홍 활동가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다큐멘터리 작업자는 카메라를 들기 전부터 촬영 대상과 긴 시간 관계를 맺고, 그 뒤에도 녹화 버튼을 누르기를 주저한다"고 썼다. 그는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룬 이창동은 봉준호나 박찬욱이 최근 작업에서 보여준 불평등과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태도보다는 진지하지만, 여전히 시니컬하다는 점에서 한계적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30일 현재 홍 작가의 글은 약 200여 회 공유되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평론가 조재휘씨 역시 영화를 두고 "소재와 주제에 걸맞은 시선의 밀도와 윤리적 접근법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비해 <자백>(2016), <공범자들>(2017) 등의 다큐를 연출한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는 MBC 해고자였던 당시 이창동 감독의 제안으로 <버닝>에 출연한 사연을 전하며 "영화를 보며 편하지 않았다"는 소회를 전했다.

최 피디는 "감독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의 별장에서 설경구는 (해고자로서) 오래 응축해온 분노를 터뜨린다. 그 순간을 예지는 찍고 있었다"며 "저 역시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늘 찍어두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2012), <3일의 휴가>(2023) 등 상업영화를 연출한 육상효 감독은 "모든 분노와 슬픔을 충분히 담은 호석은 그러나 어떠한 인위적인 분노나 슬픔 없이 영화에 담긴 극사실주의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다"며 "<박하사탕>으로부터 시간이 지나 배우와 감독은 변했는데, 그건 <박하사탕>의 강렬한 감정들이 세심한 정동으로 미분되는 과정이었고, 영화는 영화보다 더 현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고 평했다.

이어 육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노동이 사라진다는 말은 노동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되지만, 노동이 점점 안 보이는 곳으로 숨는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고, 영화는 그 존재를 목소리로 화면으로 계속 드러내 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마땅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대화를 많이 이끌어내는 좋은 영화"
▲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 (주)NEW
한편 <가능한 사랑> 엔딩 크레디트를 확인해보면 다큐멘터리 관련 자문으로 허철녕 감독 등이 올라 있다. 모두 독립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영화인들이다. 극중 예지의 캐릭터가 이창동 감독 상상으로만 나온 산물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극영화 <그들이 죽었다>와 다큐 <시민 노무현> 등을 연출해온 한국독립영화협회 백재호 이사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와 설정이 모두 이창동 감독의 가치관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극중 상우가 아내가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에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쉽게 말해 돈 없이 만드는 것'이라 답하는 것도 이창동 감독의 다큐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 아닌 캐릭터 설정 때문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전했다.

이어 백 이사장은 "돈 없이 만드는 게 독립영화가 아니라 돈이 없어도 끝내 만들어 내는 게 독립영화의 정신이라 생각한다"며 "이처럼 다양한 대화를 많이 이끌어내는 걸 보면 <가능한 사랑>이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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