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국정 꼬임과 분열의 근원, 공소취소… 조작 밝히되 판단은 법원에 맡겨야” [인터뷰 전문]

이경원 2026. 9. 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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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은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만들어낸 진영논리가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를 허물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가 분열할 때 정치 지도자의 통합 노력은 부족했고, 오히려 진영 결집에만 몰두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런데, 날더러 MB정부 때 법제처장, 경실련 사무총장, 헌법재판소 연구관, 이재명 대통령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국민통합위원장을 지냈다며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내가 그 무렵 변호사로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가서 자료를 구하러 왔다고 하니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한국 헌재가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을 할 때에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고 하니 연구관이 악수를 청하고 재판관에게 소개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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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은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만들어낸 진영논리가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를 허물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가 분열할 때 정치 지도자의 통합 노력은 부족했고, 오히려 진영 결집에만 몰두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전 위원장은 특히 부동산 정책을 예로 들며 “실용주의 정책을 펴던 정부가 도로 편가르기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두 분은 같은 경주 이씨이고 파도 같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하지만 그가 건의한 대로의 통합 행보는 없었고 국정 지지도는 임기 초보다 낮아졌다. 이 전 위원장은 대통령 지지율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 전 위원장은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이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 인사들을 찾아가 손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울’의 책으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계속했던 그는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고, 예민한 현안에 대해서도 ‘예 아니오’를 분명히 했다. 이 전 위원장은 “E. H. 카가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사람은 항상 아웃사이더로서 주류에 반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고 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권이나 법조를 논하기보다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다음은 인터뷰 문답 전문(全文)이다. 이 전 위원장은 “이렇게 길게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이 29일 서초구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모든 것을 자신 있게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활짝 웃는 사진을 써 달라”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국민통합위원장에서 물러난 지 어느새 3주가 됐다. 공직에 다시 나아간 것도 물러난 것도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국민통합위원장은 13~14년 만에 맡은 공직이었다. 이후 만 1년을 공직에 있다가 9월 3일에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9월 9일 이임식을 가진 뒤 떠났다. 나는 “대통령과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물러나겠다”고 했고, 대통령도 같은 뜻이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께서 위로랄까 격려랄까, 위로 성격의 덕담을 보내주신다. 사무실로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고, 휴대전화로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시는 분들도 있다.
  보통 생각하기에는 ‘그런 사람들은 중도나 보수 지지층일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보수 진영보다도 ‘뉴 이재명’이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많다. 문자 메시지나 편지 같은 것에 자신들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선거에서 항상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고 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하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뭔가 대통령이 내가 지적했던 방향대로 가지 못했다는 방증 같아서 더욱 안타까웠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근래에 더욱 떨어지기 시작했다. 30%대가 된 지지율은 (이전처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조금 한가로운가. 근황이 궁금했다.
  얼마 전 매천 황현 선생이 자결했던 현장인 전남 구례 매천사를 다녀왔다. 매천 선생은 내가 흠모하는 우국지사이고, 백의정승이라 할 수 있는 선비였다. 나는 매천 선생의 행적을 잘 알 뿐 아니라 매천야록도 다 읽어 보았지만 뭔가 허전한 것 같아서, 선생의 영정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내려간 것이었다.
  매천 선생은 태어난 곳은 전남 광양이지만 구례에서 활동했다. 매천야록 등을 저술하다가 1910년 8월 29일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 선생은 자결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꼭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라가 선비를 키운 지 500년이 지났는데, 나라가 망한 날 나라를 위해서 한 사람도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이렇게 형제와 자녀들에게 유서를 쓴다. 그 유서를 보면 지금도 숙연하다.
  그리고 ‘절명시’를 쓴다. 나는 그것을 항상 새기고 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되뇐다. 4수 중 제3수인데,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역사를 회고하니, 이런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 하기 참으로 어렵구나” 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참으로 항상 와닿는다.
  때는 해맑은 가을이었고, 선생의 꾸짖음이 머리에 들리는 것 같아서 숙연해졌었다. 나는 선생의 정신과 남기신 그 시 구절은 어떤 형식으로든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본다.

-매천 이야기를 꺼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국민의 사표(師表)가 되는 거인이랄까 영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인 천하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소인배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음모, 식언, 궤변, 억지가 기승을 부리고 판을 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원심분리 작용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이 계속 흩어지고 있다. 이것을 잡아줄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 정치 지도자, 그리고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이미 중심을 잃었다는 생각 때문에 매천 선생 영정 앞에서도, 또 돌아오면서도 여러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표가 될 만한 어른이 안 계신다. 과거에는 그래도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 등으로 각박할 때에 중심을 잡아주는 분들이 있었다. 함석헌 선생,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그리고 강원용 목사 등. 이런 분들은 종교 지도자였지만 그를 떠나 깊은 울림을 줬다. 국민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참스승이 안 계시고, 식자 노릇, 선비 노릇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추석 이틀 전 서울에 돌아왔다.
  매천사에는 이제 사람도 안 오고 풀도 돋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천의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알았으면 좋겠다. 매천의 곧은, 일관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직언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매천 선생은 재야에 있으면서도,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기록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기록을 남기고 직언함으로써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게 완비된 상황을 살면서도 권력을 향해서 직언하는, 사회 거대 세력을 향해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 참된 지식인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직언’을 중시하는 듯하다.
  권력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민심도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지금 대통령과 대통령의 주변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진영을 결집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민심이 진정으로 신뢰를 보낼 때에만 가능하다. 정치 지도자, 최고 통치자에게 그게(지지율이) 떨어지면 만사가,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올 초 국민통합위원회가 ‘5대 사회갈등 주요 이슈 및 데이터 분석연구’로 밝힌 것처럼, 이 사회는 현재 정서적 양극화가 극심하다. 우리 공동체가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있다. 우리 사회의 확증편향을 부추기고 진영논리로 가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나는 이것을 나름대로 ‘3대 한국병’으로 진단하고 있다.
  첫째는 ‘내로남불’ 현상이다. 정치와 사회 현상을 보는 이중잣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 ‘내로남불’은 해외 언론도 그대로 언급할 만큼 우리 사회가 특히 심하다.
  두 번째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는 ‘편가르기’ 현상이다.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마저 정치성향이 다르고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아니면 말고’식 폭로다. 가짜뉴스, 일단 터뜨리고 본다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횡행한다. 이것이 앞의 두 가지 현상과 겹쳐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오류를 부추기고 확증편향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 확증편향의 ‘끝판왕’으로 진영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3대 한국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어디서 시작된 병인가.
  진앙은 정치다. 정치가 만들어낸 진영논리가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를 허물고 있다. 정치권은 그것을 이용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나는 일관되게 “분열과 갈등의 진원지는 국회, 정치, 정치 지도자”라고 주장해 왔다.
  국민통합위원회가 분과 위원회도 만들었지만, 5대 사회 갈등으로 정치(이념) 갈등, 지역 갈등, 계층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의 네 개의 갈등은 모두 정치 갈등에서 파생되는 것, 종속변수라고 본다. 물론 지역, 계층, 세대, 젠더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진원지를 찾아보면 정치이고, 정치가 부추긴 갈등들이다.
  이것을 해소하고 나름대로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주체는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다.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통합 능력이다. 패자도 동화시키는 포용력,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링컨도 노예해방 선언 자체가 아니라 미 연방을 분열의 위기에서 구한 통합의 리더십을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금 이게 안 되고 있다. 관용과 진실, 자제에 입각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는 헌법이다. 그런데, 안 되고 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전혀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초보다 크게 하락한 모습이다. 이는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인가. 분열과 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인가.
  60%였던 지지율이 지방선거 이후 불과 두어달 만에 30%대가 됐다(잠시 침묵). 5월 21일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장들의 업무보고 간담회가 있었는데, 내가 직접 얘기했다. “대통령께서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차례 공언하셨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것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 모습을, 진심으로 국민에게 보여주십시오. 적기입니다. 제가 그 ‘바람잡이’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와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과 정권의 시각 사이에 현격한 괴리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는 민주당의 압승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다. “지금은 태평성대 같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합니다. 태평성대가 아니라는 것을….” 청와대는 회의를 비공개했지만, 촬영 영상은 있을 것이다. 내가 ‘바람잡이’ 역할을 하겠다고도 말했었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도 앞에서 듣고 있었다. 

-이후의 반응이나 경과는 어떠했나.
  선거에서 (민주당이) 수적으로는 이기고, 그때까지도 내가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것이 없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그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이 앞장서서 당무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MBC 100분 토론은 김민석 대표의 당대표 당선 다음 날(8월 18일)이었다. 열흘쯤 전에 이미 출연이 예정돼 있었다. 거기에 가서 내가 대통령은 탈당하라고, 한 정당 울타리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이 모두의 대통령이 될 적기라고 이야기했다.
  김민석 대표는 “헌법에 대한 무지”라고 했고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내게 “자다가 봉창 때린다”고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 헌법상 대통령은 당적을 가져야 하는 게 없다(당적 보유나 탈당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그 발언이, 대통령과 헤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일부러, 생방송이기 때문에 나가서 그 이야기를 한 것이다. 청와대에는,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강조하고픈 게 있으면 내가 해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홍익표 수석도 “원로로서 좋은 말씀 해주십시오”라고 해서, 가서 이야기한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무런 노력이 없지 않았나. 민주당의 지지율은 김민석 대표가 되고 나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당 지지도가 하락하면 대통령이 탈당을 당할 것이다. 내가 2년쯤 뒤에 내 말을 평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2년도 안 갈 수 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해서, 그 하나의 방안으로 탈당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못 받아들이고 그런 식으로 한다면 더 이상은 모르겠다.
  지금 강훈식 비서실장이 물러났지만, 제대로 멀리 보는 사람이 있는가 싶다. 대통령이야 물에 빠지든 공천이나 받고 한자리 받으려는 사람으로 꽉 차 있다. 정말 던지고 뭘 할 사람? 한둘? 거의 없다고 본다.

-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인가. 통합에 실패하고 있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부동산 정책의 실패, 주식 정책의 대혼돈, 농지 전수조사 등 여러 가지가 언급된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이 실용주의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보였었다. 그런데 이게 보니까 결국 실용주의 정책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일관성이 사라지고, 이것을 국민들이 느끼기 시작해서, 지지를 거두기 시작한다.
  대통령을 원래부터 지지했던 층이 이탈하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취임 후부터 대통령의 참신한 이미지를 믿던 ‘뉴 이재명’이 와해됐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제 유시민 작가 등이 ‘코어 지지층’이 붕괴했다고 주장한 것도 있는데, 나는 (여권) 내부에서 싸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게 보내준 친여성향 원로들의 염려를 나중에 몇 개 공개할 것이다.
  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국민의 구체적인 삶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실용주의적인 것이 돼야 한다. 거창한 이념 차원이 아니다. 초기에는 실용주의적 정책이 경제와 외교 정책에서 나타나 국민도 성원을 보냈는데, 이제는 고통을 안겨주는 정책이 되고 있다. 헌법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원리를 대통령부터, 여당이, 무시하기 시작했다. 도로 옛날의 편가르기 식으로 간 것이다. 

-현 정부가 헌법의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편가르기 식으로 흘렀다면, 그처럼 판단한 구체적 장면이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나 기업이 평생을 통해 이룩한 성과는, 그 과정에 불법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다. 그것은 헌법 제119조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다. 그런데 잘 나가는 사람이나 중산층을 깎아내려서 거기에 끼지 못한 다수 국민의 배아픔을 해소하겠다는 식의 ‘경제의 정치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부동산 정책이다. 열심히 ‘영끌’이라도 해서 사겠다는, ‘나도 중산층이 되고, 서울에 집 한 채 갖겠다’는 사람들의 꿈을 꺾은 것이다. 인간의 맹점 중 하나가 평등의식인데, 이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면 견디지 못한다. 노무현, 문재인정부 등 과거 진보 좌파 정권이 시도하다가 다 결국엔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거기에 맛을 붙인 것이다.
  정부의 분배 정책이랄까 사회정책, 복지정책의 기본은, 큰 나무는 놔두고 작은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향 조정식이다. 그런데 큰 나무를 쳐서 작은 나무의 키에 맞추면 그것은 하향 개입식이다. 이건 안 되는 것이다. 가진 사람을 끌어내려서, 다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켜서, 국민들 사이의 자기도 모르는 질투감을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 의식수준이, 이제는 그런 게 안 통한다.
  “정부가 부자의 희생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왔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한 말이다. 정부는 부자의 희생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부자들의 세금을 많이 걷고 했는데, 결국 가난한 이는 더욱 가난해진다. 이번 부동산 정책으로, 한 채 갖고 열심히 살다 보니 집값이 오른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집을 마련하려던 사람들, 전세 사는 서민들, 사회적 약자만 더욱 고생하게 된 것이다. 어떤 여론조사를 보니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는 응답이 65%에 달하더라.
  대통령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지난 1월 엑스(X)에 썼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잘못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려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이야기다. 정부와 시장은 대립 개념이 아니건만, 지난 진보정권들을 따라 자꾸 이분화하려 한다.
  대통령은 두 달 전쯤 “부동산 불로소득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주범”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주식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의 소득은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말인가. 똑같은 것인데 부동산은 그나마 덩치가 크지만, 주식은 관여된 국민이 더 많은데…. 우리 국민 절반이 주식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시장경제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용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꾸 퍼주려고 하고, 나눠주려고 하고, 공짜로 도움을 받는 사람은 평생 공짜를 바라고 타락한다고 했다. 이것은 카네기가 한 말이다. 카네기는 돈을 나눠주지 않고, 사회투자를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모험과 창의성,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결과의 평등에 따른 결과물만 챙기는 그런 사회로 가고 있다. 돈은 세금으로 얼마든 나온다는 것이 좌파 진보 정책의 논리다. 사회 역동성을 해친다. 그렇다면 누가 열심히 애쓰겠는가. 지금 실업수당 어디 좋은 지역에 살면 시에서 주고 군에서 주고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에게 자꾸 나눠주고 하는 것, 이것은 정말 필요한 사람, 노동 능력이 없거나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고령층, 빈곤층, 이런 사람을 줘야 하는데 멀쩡한 사람도 다 주고 근로 의욕을 꺾는다. 과거 문재인정부에서 제21대 총선 보름을 남겨두고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지원금을 뿌렸다. 이번에도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지급됐다. 경제의 정치화를 초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 또 우리 사회의 모험과 도전정신을 꺾는 것이 된다.
  복지 부담금, 복지 예산이 적다고들 한다. 나는 행정부에도 오래 있어 봤고 사법부에도 있어 봤다. 분배의 비형평성 문제지, 얼마든지 지금의 복지 예산을 갖고도 고르게 쓸 수 있다. 한번에 뿌려버린다는 것은 여론을 유리하게 돌리고, 결국 선거 표를 얻으려 하는 작전이나 똑같다. 앞으로 그렇게 되면 나라는 멍들어가게 된다.
  국민 세금을 높여서 분배 정책을 강화하겠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아가는 것은 안 된다. 마키아벨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재산상의 손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국가가 세금 올려서 내 재산 빼앗아가는 걸 부모 죽음보다 오래 기억한단 말이다. 역대 왕조 정치부터 쭉 시작해서 정권이 망한 제1원인은, 세금을 올려 국민을 힘들게 한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정책으로 평가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제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 며칠 전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기 전에 기내에서 SNS 글을 올렸는데,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날 지지하는 사람, 우리끼리 뭉쳐서 가자는 메시지로 들린다. 날 정말 지지한다면 밀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으로서는 하면 안 될 워딩이다.
  개혁이라는 것은 과거의 부정이 아니다. 과거의 재구축이 돼야 한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한다는 개혁,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는 개혁은 모두 실패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면 내 탈당 주장에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운신의 폭을 넓혀준 것이다. 하지만 과잉 충성하는 참모들, 청와대와 당의 충성 분자들이 그렇게 예민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기>를 원용했다. “말 위에서 내려와 모두의 대통령이 돼라, 싸움터에서 정권을 잡았지만 민주당만의 논리로는 안 된다….” 지금쯤은 말 위에서가 아니라 성벽에서도 내려와 성 안에서 백성과 어울려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데, 성벽은커녕 말 위에서도 안 내려오고 있다.
  통합을 위한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이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대하고 비판하는 야당 인사들을 찾아가 손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뿌리치고 돌아갈 사람 없다. 만약에 돌아가면 자기들 정치 생명도 끝난다.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과도 골프 회동을 하지 않았나.
  막걸릿집 가서 넥타이 풀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지, 골프 친다고 지금 말하는 통합이 되나…. 개헌에 끌어들이려는 사람들 일부를 만나는 것, 오히려 더 분열을 일으키려는 것 말고. 그래서 참 안타깝다.

-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했고, 또 1년 만에 그만두고 나왔는가. 계기를 말해 달라.
  성공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간 것은 아니다. 내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헌법적 소신을 거기에 가서 펴 보자 생각했다. 헌법에 충성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특정 대통령, 특정 정권, 특정 정파, 특정 당, 모두 내게는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보다, 듣기 싫더라도 필요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국민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었다.
  적어도 대통령이 잘못 나갈 때는 ‘경고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봤다. 경고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고, 나는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락한 것이다. 처음부터 생각이 다른 사람이 중요하고, 이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한 직언과 대통령의 반응 사례를 공개할 수 있는가.
  내가 지난해 12월 <조선일보> 전면 인터뷰를 했다. 국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부지기군 시기소사(不知其君 視其所使·그 군주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거든 그가 쓰는 사람을 보라)라는 말도 했었다. 이에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는 말이 돌았다. 대통령이 모 비서관을 보낸다고 했다.
  내가 비서관이 온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손으로 편지를 썼다. 그 자리에서 친전(親展)으로 해서 “이대로 대통령한테 그대로 전하라, 당신에게는 특별히 할 얘기가 없으니 그냥 가라”고 말했고, 그렇게 보냈다.

-편지에 뭐라고 적었는가.
  “지금 듣기에는 귀에 거슬리고 괘씸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 적었다. 언론에 말한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언을 하는 이유에는 다른 게 없다”고 했다. “첫째,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 둘째,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만일 이런 일로 대통령과 저의 사이에 신뢰가 깨졌다면, 즉각 물러나겠다”고 썼다. 나는 봉하기 전에 내가 쓴 것을 촬영해서 가지고 있다. 나중에 공개하려 한다.

-이 대통령은 편지에 응답했는가.
  대통령으로부터, 그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대전에 다녀오신 날 저녁 식사 무렵에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은 좋은데, 대통령실(당시는 청와대 복귀 전)과 상의해서 잘 해 보자”고 말했다. 내가 “인사, 사법개혁, 여러 정책 등이 잘못 가고 있지만 통합을 위해서는 큰 틀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하신 말씀이다.

-그에 어떻게 답했는가.
  신뢰가 깨졌다면 물러나겠다고 하자 대통령이 전화를 한 것 아닌가. 그때까지는 나는 신뢰가 안 깨졌다고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저한테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 방향으로 잘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결론은 ‘잘 상의해서’와 ‘잘 이끌어 가시고’ 였다. 만일 대통령과의 그 통화에서, 역정을 냈다는 것과 비슷한 기색이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표를 던지려고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전에,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나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만나거나 문자메시지로. 그런데 지금은 나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거의 사라진 것 같고,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참모 하나 떠나는 것, 직속 위원장 하나 떠나는 것 별것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은 것은 대통령의 심기나 맞추고 하나의 부속품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통합위원장은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통합위원회의 업무에 대해서 청와대에서 이래라저래라 관여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게 맡겨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에 저런 사람도 있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면, 오히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못 받아들인 것 같다.

-한국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딛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누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가.
  대통령이 며칠 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야기하지 않았나. “언제나 국민이 옳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듣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밝힌 것은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행동이다. 순방에서 돌아오며 바로 다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순방 중에도 유시민 작가를 공격하는 모습도 보여 안타까웠다. 대통령의 행동이 일관성을 잃었기 때문에 국민이 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지층마저 내부 분란이 있어 그것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인데, 사실 그것보다 더욱 큰 것, 즉 국민 전체의 마음을 잃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도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었다. 지금 국민 과반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왜 다시 지지층만 붙잡는가. 내가 오죽하면 ‘바람잡이’ 역할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더욱 정말 노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지지층 똘똘 뭉쳐서 당을 장악했잖나. 이젠 모든 게 대통령의 책임이 된다.

-직언과 함께 국민통합위원장으로서 시도했던 여러 노력이 있을 듯하다. 이제는 공개 가능한 노력이나 일화가 있겠는가.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국정 제1의 과제라고 밝혔었다. 나와 다른 진영이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나는 위원장 취임하자마자 전직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내가 법제처장으로서 모셨던 대통령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찾아갔다. 그의 측근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도 자리에 함께했다.
  나는 “여러 소신 발언 때문에 심려 끼쳐 미안하다”고 말했고, 이 전 대통령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었다”고 답하며 껄껄 웃었다. 나는 2년 반 법제처장을 한 뒤 마지막에는 갈아 달라고 임태희 당시 비서실장에게 요청해 그만뒀었다.
  나는 이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난 뒤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십시오, 이 전 대통령도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는 뜻을 전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악연이 없다. 둘 다 경제 정책에서는 실용주의였다. 처음에는 이것을 우상호 당시 정무수석에게 이야기했다. “알았다”고 하면서도 달갑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안 되길래, 한 달 뒤에 내가 다시 대통령에게 텔레그램으로 직접 이야기했다. 자세히 이야기했다. 당시는 우리가 이란 전쟁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고, 어려운 때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리만브라더스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통화스와프도 체결한 경험이 있잖나. 그를 따르는 실용주의 경제인, 학자도 많지 않은가. 이 분을 끌어들이면 국민통합에서 얼마나 좋겠는가. 이러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심지어는 내가 “두 분은 같은 경주 이씨이고 파도 같다(국당공파)”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텔레그램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되고, ‘하트’만 표시되고, 답이 없었다.
  이후 정무수석이 홍익표 수석으로 바뀐 이후에도 내가 또 만났다. 이러이러한 차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라고 제안했지만, “알았다”고 하고 답이 없었다.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는 대신 홍준표 대구시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만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일화를 공개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기분이 나빠서 앞으로 안 만나려 할 것 같다.
  그 이외에도, 나는 취임하고 나서 7대 종단 대표를 다 만났다. 이분들의 공통된 의견을 들어 보면, “통합을 하려면 많이 가진 사람, 힘 있는 쪽에서 먼저 팔을 내밀고 포용하고 양보해야 가능하다” “그것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5월에 대통령 앞에서 직언할 때에 함께 이야기했다.

-현재 국론은 이 대통령의 공소취소 문제를 두고도 분열돼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맺어지는 것이 가장 옳겠는가. 헌법과 통합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달라.
  나는 빙빙 돌려 이야기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고 싶지 않다. 이 공소취소 문제, 대통령 자신의 범죄 혐의와 관련한 문제는 모든 국정의 꼬임, 국민통합에 있어서의 최대 걸림돌이다. 대통령의 면죄의식 때문에 통합도 이러한 상황에 왔고, 정치권의 어떠한 극한 대립도 이 공소취소 문제가 가장 큰 한 원인이다.
  이 문제는 이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헌법상의 법치주의,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원칙 하에서 해결돼야 한다.
  조작 수사 의혹이 있다고 해서 특검을 가동하는 일이 논의되고, 법무부 안에 진상조사단도 만들었다. 나의 주장은, 조작 수사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가 잘못됐다는 주장, 즉 조작 수사가 있었다는 주장과, 그러므로 대통령의 공소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은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둘은 별개의 문제다. 이 점을 분명히 전제로 한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을 초월해서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법 아래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혜도 불이익도 받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사건도, 일반 형사 피고인과 동일한 법과 동일한 절차에 의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조작 수사 의혹은 끝까지 밝히되, 대통령 자신의 공소는 법원이 판단하게 하라” 이것이다. 대통령의 권력 즉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인 수사기관, 즉 특검이나 진상조사단, 공소청 검사의 권력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하게 하라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다음 달 2일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 제327조를 보면 법원이 판결로서 공소를 기각해야 할 사유를 두 개를 추가했다. ‘중대한 위법수사에 기하여 공소가 제기됐을 때’ 그리고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여 공소가 제기됐을 때’ 이 두 가지가 들어갔다. 수사기관에서 밝혀내면 법원은 반드시 공소기각을 선고해야 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내 사건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서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건에 대한 조작 수사 사실이 밝혀지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재개됐을 때 법원이 당연히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한다. 그때 재판이 재개돼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 안 받고,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서 공소취소를 한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어기는 대통령의 특권으로서, 법치주의를 흔드는 것이다. 왜냐, 다른 형사 피고인이 “내 사건 기소하면서 소추권 남용했어, 조작 수사했어” “내 사건도 재판 받기 전에 그리 해 주십시오” 들고 일어나면 어떡할 것인가. 왜 대통령 사건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나.
  대통령의 사건을 대통령의 권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조작 수사였다면 법원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 한 사람의 국민이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어긋나면 어떤 통합 정책도 반감되고 국민적 설득력이 없다.
  “아흔 아홉 가지 선정도, 한 가지 악행을 상쇄할 수 없다”고 했다. 지도자를 평가하는 이 잣대는 동서고금이 똑같다. 특검한테 공소취소 권한을 안 줬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는 검찰총장(공소청장)을 이용해서 그렇게 갈 수도 있다. 최근 검찰총장 대행의 말은 하겠다는 거나 다름없게 들리기도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통합의 노력과 모든 업적이 이 공소취소 하나에 묻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럴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기본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검찰총장이 지시해서 공소취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국가적 혼란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반복되는 우리 헌정사의 흑역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대통령은 “조작 수사를 밝히되, 내 사건 판단은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의해서 법원에서 하십시오” 해야 한다. 그 전제로서 임기 끝나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 원칙이고, 대통령도 이 점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국민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청와대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대법관 재(再)재청 갈등도, 사회적 분열을 낳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논쟁, 삼권분립 논쟁으로도 흐르는데.
  헌법 제104조 제2항,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법원조직법 제41조 제2항도 똑같이 이걸 받아 규정한다.
  이 조항은, 권력분립 내지 삼권분립의 상징적 조항이다. 사법부가 관여하고 입법부가 동의했고 행정부 수반이 임명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여기서 헌법기관으로 대법원장, 국회, 대통령이 나온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다. 이 헌법기관이 정한 권한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대법관 임명을 못한다는 차원에서. 여기에 정한 세 개의 권한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명백하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추천하는 정치적 요식행위가 아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국회가 동의 여부를 결정할 대상과, 대통령이 임명여부를 결정한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장의 제청권도,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결정한 범위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이게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의 절묘한 견제와 균형이 전제돼서 이러한 규정이 된 것이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유신헌법에 비로소 들어가서 폐기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천만에, 그렇지 않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1공화국 2공화국에는 아예 헌법에 그런 규정이 없었다. 1공화국 때는 제청권은 법원조직법에만 들어가 있었고 2공화국 때는 일정한 범위에서 법관의 선거제였다. 3공화국 헌법 때부터 비로소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한 번도 대법원장 제청권이 삭제된 적이 없다. 그대로 유지돼 있다.
  3공화국 헌법에서는 “대법관은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서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었다. 대법원장의 제청이 있으면, 단서에, 반드시 임명하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대통령의 임명권을 형식화시키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실질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제4공화국, 유신헌법 때에는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현행 헌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가 들어갔다. 연혁적으로 보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핵심이었다.
  결국 지금 청와대의 주장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보다 상위에 있다는 취지 개념 하에서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삼권이 관여하는 이 세 개의 권한은 동등하다.

-사법부와 청와대는 이번 정부 들어 다양하게 충돌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양측 모두 상대에게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해 혼란스럽다.
  헌법 정신을 외면한 정치적 계산, 정략적 술수 때문이다. 정략과 술수가 국가 공동체를, 연대를 무너뜨리고 헌법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 대법관 재제청을 청와대가 요구했다. 감히 대통령 임명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대법관 재제청에 대해서는 헌법이나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규정이 없다. 그리고, 대법관 제청이 되면 후보추천위원회는 해산하고 새롭게 구성하게 돼 있는데 청와대는 전에 구성한 후보추천위 중에서, 명백히 표시는 안 했지만, 제청해 달라는 취지다. 거기엔 김민기 고법판사가 들어가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인데 뺄 수가 있겠는가. 여기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지금 헌법재판관 중 한 분을 대통령이 임명한 상황에서, 또 그 헌법재판관의 배우자를 다시 대통령이 임명하려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인데, 지금은 재판소원이 시행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살펴보는 사건도 올라가고 있다. 법적 정합성이 안 맞는다. 대법관이 판단한 사안을 다시 또 배우자가 판단한다? 법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 정서상으로도 부적합하다. 그러한 상황을 굳이 왜 고집하는지, 어쩌면 국민의 수준을 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둘째, 청와대의 재제청 사유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실 적시가 없다. 재제청은 헌법 법률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기 때문에 재제청 해주십시오”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청와대는 헌법 제104조 제2항과 법원조직법 제42조 제1항을 들었지만, 이는 동어반복일 뿐인 것이다. 그것을 조희대 대법원장이 짚은 것이다. “헌법에도 근거가 법률에도 근거가 없는데, 재제청을 하려면 대통령의 처분이니 구체적 사유를 밝혀야 나도 할 거 아니냐” 이것은 옳은 이야기이다. 청와대가 든 헌법 제104조 제2항 등은 재제청 사유가 못 된다.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의 말이 설득력이 있고 헌법에 적합하다. 대법원장의 탄핵을 주장하는데, 탄핵 사유는 안 된다. 대법관 임명이 늦어진다는 정치적 이유? 그것은 오히려 탄핵 사유로 따지자면 헌법에 근거가 없는,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그 행위가 오히려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헌법전문가로서 이 주장을 하고 싶다.
  지금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이 들어가 있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가) 국회의원의 임명동의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장 제청권의 연혁, 부부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문제, 구체적 사유가 결여된 재제청 요구 등의 사안을 종합해 보면, 이 권한쟁의심판은 요건이 맞아서 본안으로 들어간다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권한쟁의심판은 재판관 6인이 찬성하는 게 아니라 과반 즉 5인이 되도록, 유일하게 요건을 완화시켜 두었다.

-대법관을 뽑는 문제도 결국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을 거치게 되는가.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해결책은 양쪽에서 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손봉기 판사에 대한 제청을 철회하고, 대통령도 재제청을 요구하지 않고 “새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새로 추천하는 사람으로 하자”고 해야 한다.
  사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청와대가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김성수 후보자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서 국회에 동의를 요청했고 김 후보자는 결국 대법관에 임명됐다. 김 대법관의 경우도 서면 제청이지, 대면 제청이 아니다. 대법원장이 가서 상의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지 않았나. 대면으로 제청해야 한다는 관행은 청와대가 스스로 깬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절차에서 서면제청이 원칙이어야 한다. 손봉기 판사에 대해서는 대면제청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었는데, 그 스스로가 논리 모순이다.
  이것도 덧붙이고 싶다. 지금 대통령은 2028년부터 매년 네 사람씩 3년간 대법관을 증원할 수 있다. 그러면 12명이 늘어난다. 하지만 2028년에는 총선이 있기도 하다. 이 총선에서 만일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잘 상의해서 국회에 동의를 요청한다고 해도 국회가 거부해 임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제도가, 소수당이 되고 불리할 때에도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그것이 진정한 개혁인 것이다.

-재제청 문제에 있어 조희대 대법원장의 판단이 옳다고 했다. 그런데 지속된 사법부와 청와대의 충돌 속에서 국민적 피로감도 상당하다. 현 상황과 관련해 대법원장의 책임은 없겠는가.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번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이었다. 이는 종전까지의 관례랄까 기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판단했던 것이라서, 깜짝 놀랐었다. 더구나 대선을 코앞에 두고는 사법 자제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당시에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했다. 나는 이걸 보곤 ‘저러면 안 된다’ 고 생각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에 대해서 대법원장으로서 지금까지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 남을 판단할, 심판할 권리라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 국민이 헌법을 통해 법관에게 부여했다. 법관이 가지고 있는 그 판단권, 사법권은 법적용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관성도 형평성도 없었다. 그 범위를 벗어난 사법권의 행사는 헌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법부는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국민의 의문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다. 국민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사법부는 정치로부터, 국회나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의문으로부터는 사법부가 답변을 줘야 한다. 아직도 일언반구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감이다. 

-10월 2일이면 검찰개혁의 결과 새 형사사법체계대로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서도 위헌 입장을 거두지 않은 국민통합위원장이었는데.
  10월 2일부터 출범하는데 준비는 안 돼 있고, 약자나 범죄피해자들의 입장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로 있다. 나는 적어도 보완수사권만 유지됐더라도 이런 혼란이나 이런 염려나 국민들의 우려가 덜 제기됐을 것이라 본다. 나는 검사의 수사권 완전 박탈은 명백히 헌법에 위반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헌법에는, 수사의 핵심권한인 영장신청권, 즉 구속영장 체포영장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서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은 검사만이 독점적일뿐 아니라 배타적으로 갖고 있다고 돼 있다. 체포영장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한다고 돼 있다.
  지금 중수청에는 검사가 없다. 그렇다면 공소청에 있는 검사를 통해서 영장을 신청할 것이다. 그런데, 공소청 검사는 자신이 수사하지도 않는 사건에 대해 영장을 신청하게 되는 것인가? 이는 법 감정에 안 맞는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일관되게, 검사로부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려면,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공화국 헌법에는 ‘수사기관의 신청’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에는 사법경찰관도 들어간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위헌이라고 본다.
  같은 논리로 보완수사권의 완전 박탈도 그래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것도 확고하다. 헌법 개정 없이 하다 보니 체계도 엉망이 되고 있다. 파견되는 검사들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 불분명한 것이 많다. 그래서 개혁이란 과거의 부정이 아닌 것이다.
  나는 물론 정치검찰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소와 수사를 분리하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을 통해 하고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다. ‘검찰에게 당했다’는 식으로, 그래서 검찰을 없앤다? 육사 출신들이 5·16과 12·12, 12·4를 주도했다고 육사를 없앤다는 것이나 같지 않은가.

-1호 헌법연구관이었고, 1세대 시민운동을 벌인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공익소송을 도맡았다. 이명박정부의 법제처장이었고,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위원장을 지냈다. 진영을 초월하여 다양한 경험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헌법을 공부하고 헌법 실무를 담당하고 헌법의 세계에 뛰어들어서 후학을 가르친 삶이 40년을 넘었다. 대학 때 학사 석사 때부터 헌법을 파고든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박사 때부터, 또 헌법재판소가 출범하면서 헌법을 생활규범화, 재판규범화하면서 1호 헌법연구관으로 그 현장에서 뛰었다. 당시 헌법연구관은 헌법재판관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왜냐면 새로운 것을 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생생한 현장에서 헌법이 어떻게 국민 삶에 파고들고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을 제한하고 또 권력의 파행에 대해 경고하는지, 경험하고 부딪혀 왔다. 때로는 살해 협박까지 받으면서 겪어 왔다.
  그런데, 날더러 MB정부 때 법제처장, 경실련 사무총장, 헌법재판소 연구관, 이재명 대통령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국민통합위원장을 지냈다며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나는 그런 데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고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첫째, 내가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헌법이라는 기본 가치다. 헌법적 가치, 헌법적 정신에 어긋날 때에는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일할 때에도, 대법원과 법무사법 시행규칙을 갖고 다툼이 있었는데, 그때 법원에서 파견 나온 연구관이 “법원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너는 앞으로 변호사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학계로 나가라”고까지 말했었다.
  MB정부 때에도 헌법 원칙에 어긋나면 일관되게 주장했고, 그만둘 각오를 하고 일했다. 출범 초기 소고기 고시 문제로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눈물 흘리며 사과하고 그랬었다. 고시는 시행령, 시행규칙의 밑이다. 그때 법제처장인 나는 “적어도 시행령을 거쳐서 법제처에서 심의하고 우리가 판단할 겁니다” 했는데 고시로 해 버렸다. 그래서 내가 “재야에 있다면 헌법소원하겠다, 위헌이다” 해서 난리가 났었다. 이후 당시 야당 의원들은 “법제처장이 위헌이라고 했다”며 플래카드를 붙이기도 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에, 며칠 되지도 않았을 때, “법무부가 인사검증권을 시행령으로 가져오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신설해 통제하는 것도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감히 새로 출범한 정부에게 그렇게 하겠는가. 마지막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헌법정신을 왜곡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중립내각 구성하고 임기 단축하고 헌법 개정을 선언하라”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 비상계엄 2주 전이었다.
  내 일관된 소신의 바탕에는 헌법이 있었다고 말하려 한다. 헌법의 정신. 관용과 진실 자제의 정신 말이다. 나는 헌법 최고의 가치는 제1조가 아니라 제10조라고 본다.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이다. 이 앞에서 어떤 것도 자기 목적적일 수 없다. 반드시 이를 거쳐야 한다. 나보고 보수주의자다 진보주의자다? 나는 관심이 없다. 헌법주의자, 헌법적 자유주의자인 것이다.
  지금 이재명정부가 헌법대로 가지 않으니까, 거기서 중책을 맡고 있다가도 부딪히고 나왔지 않은가. 잘 지내면 좋을 것이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헌법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내 소신은 헌법이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배신자네 어쩌네 하는 말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헌법 원칙을 들어서 대통령도 아주 예민해할 문제를 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평소 헌법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민통합의 ‘나침반’이 돼야 한다고도 여러 차례 말했다. 직접 체감한 우리 사회 속에서의 헌법의 힘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헌법소원은 돈이 안 되는 소송이고, 해놓고도 욕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돈을 못 벌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2004년 수도이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은 이후에는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사무실에 와서 불 지르겠다는 위협도 있었다. 내 주장은, 헌법이 정한 합의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습헌법도 헌법이라는 논리를 생각해 냈다.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경국대전 이후 관습헌법이다. 그것을 바꾸려면 헌법 개정 절차나 국민 투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내가 주장한 관습헌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가 그 무렵 변호사로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가서 자료를 구하러 왔다고 하니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한국 헌재가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을 할 때에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고 하니 연구관이 악수를 청하고 재판관에게 소개도 했다. 자신들도 모르고 간과했던 판단이었다고 말하더라. 이런 것이 내가 체감한 헌법의 힘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윤석열 전 대통령 비상계엄과 탄핵 당시에도 나는 헌법의 힘을 믿었다. 끝까지 위헌 결정이 나리라고 확신했고, 헌법의 힘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당시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오지 않았나. 나는 지금도 믿는다. 이것을 포기했다면 헌법은 장식규범으로 전락하고, 우리의 법치주의는 물건너가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문형배 재판관이 권한대행으로서 상당히 평가를 받고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1등 공신은 오히려 주심이던 정형식 재판관으로, 나는 보고 싶다. 유일하게 윤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재판관이었고, 누가 봐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나는 정 재판관의 헌법적 양심과 재판관으로서의 양식을 믿었다. 그는 나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나이는 적지만 머리는 하얗다.
  헌법은 기본권 보장 기능도 있지만 사회적 통합 기능이 있다. 헌법적 가치는 관용과 진실, 자제의 정신에 입각한 공동체 정신이다. 우리 국민이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으나, 이러한 국민이 하나로 갈 수 있는 길은 또한 헌법이 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다.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통합이 가장 기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 더 많이 가진 주체가 양보하고, 다수결이 절제하는 것을 우리 헌법은 요구하고 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토대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다수의견을 어떻게 집약하는가의 문제보다, 그 과정에서 소수자의 의견을 어떻게 경청하느냐이다.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토대가 다수결에 있지만 다수결에 기초한 헌법은 그 다수의 힘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헌법 원칙이 분명한데도 다수의 법률로 그 헌법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국민통합뿐 아니라 법치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다.
  헌법은, 헌법 자체가 권력의 제한 규범으로서 강자에게 허용하는 한계를 제한한다. 권력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행사하게끔 놔두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억제력이 국민에게 가게끔 되돌린다. 그것이 헌법이다.

-중학교 졸업 6개월 후 대학입학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때 금산사에 들어가 2년간 책 500여권을 독서해 유명하다. 인터뷰를 하는 사무실에도 책이 가득하다. 젊은 날 독서에 뜻을 든 이유는 무엇인가?
  “책과 더불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가 지금 내 삶의 모토이다. 처음부터 모험, 도전정신, 호기심이 강했다. ‘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홍성대 선배가 나온 학교인, 태인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전주고로 갔는데,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구나, 나 혼자 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 길을 선택했다.
  부농은 아니어도 중농은 됐던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만에 14개 과목 전과목을 합격하고, 대학 예비고사도 합격했다. 그런데 바로 대학에 들어가긴 뭐해서 금산사에 들어가서 2년간 책만 읽었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뭔가 지식에 대한 갈구, 삶의 좌표에 대한 갈구, 내가 흡수하고 싶은 것에 대한 흡수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거창하게 되겠다 정의를 추구한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반드시 지키는 나름의 독서 원칙이 있을까.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른 사람들은 사고가 자유스럽고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는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험심이 강하다. 내가 이제까지 소신의 일관성을 지켜온 것도 절에서 읽은 500권, 그때 얻은 지식과 지혜가 자양분이 됐고, 내 삶의 밑천이 됐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것은 나한테는, 우리가 밥을 하루 굶어도 허기지고 그렇지만 책을 하루만 손에서 떼도 정신이 허기진다. 지금도 1주일에 두세 권은 소화한다.
  지식만을 얻고 싶어 하는 건 진정한 독서가 아니다. 나를 지켜주는 것이 책이다. 나는 여행을 가도 책을 뭘 가져갈 것인가부터 걱정한다. 책을 읽는 방법 중 하나로는 ‘노마드 독서법’이 있다. 필요한 것을 골라서, 자유롭게 겹치고 건너뛰면서, 뭐든 읽고 싶은 분야를 읽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뭔가를 얻는다.
  이어령 선생이 예전에 내가 쓴 <책, 인생을 사로잡다>에 추천사를 써 주시면서 그런 말씀을 했다. “나는 이석연을 법조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독서인이고 동시에 창조인인 것이다.” 그 덕에 그 책이 <책이라는 밥>으로 제목을 바꾸면서도 10쇄를 찍었다.
  내가 일관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책 때문이다.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E. H. 카가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사람은 항상 아웃사이더로서 주류에 반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고 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80%, 아니 그 이상 전부가 책이었다. 나는 전공서적까지 합치면 26권의 책을 썼다. 교양서로 독서 역사 여행에 대해 썼고, 그런 것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영향을 준 책들, 권하고픈 책들을 말해 달라.
  한 권을 말한다면 사마천의 <사기>다. 사마천은 성공한 권력자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실패자들까지,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빗대 서술했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기술했다. <사기>에서 전해지는 교훈들은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들고 싶다. 파우스트는 아무리 방황하지만 올바른 길을 찾아간다. 그 책의 키워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해서 ‘저 사람이 어떻게 가는지 보자’고 하지 않나. 내가 쭉 겪어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무언가에 도전할 때에는 방황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올바른 길을 다 찾아가더라.
  그리고, 나를 오늘로 이끌어준 하나의 스승이 있다면 조지훈 선생이다. ‘승무’나 ‘완화삼’으로 시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철학자이자 교수이자 지식인의 각성을 이끈 시대의 지사였다. 특히 ‘지조론’을 보면 그렇다. 내가 직언하고 쓴소리하며 산다 한들 나도 두려움이 없지 않다. 나도 고민하고 밤새워가며 ‘내가 이 말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 직언을 함으로써 내가 받는 불이익보다 내 공동체가 얻는 이익이 크다면, 내가 받는 불이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줄 수 있게 이끌어준 것이 ‘지조론’이다. 선비의 길, 그리고 공직자의 도. 거기에 보면 “직언하는 선비는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고 했다. 역사의 준엄한 감시가 있기 때문이다. “바른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을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 뭐하러 살아가겠는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예전엔 직언할 때 목숨을 내놓고 했다. 요새야 직언하면 자리를 잃을 뿐이다. 나도 거기서 용기를 얻었었다. 공직자들은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최근까지 계속 고언을 전달한 대통령에게 권할 책도 있나.
  <정관정요>. 당태종은 위징 방현령 등의 직언이 있었기 때문에 성군이 됐다. 당태종은 보수를 껴안고 개혁의 대의를 완성한 중국 최대의 군주로 꼽힌다. 직언 안하는 신하와 참모는 오히려 질책했다. 나는 대통령의 독서 폭이 넓은 것으로 안다. 과거에 읽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읽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공개적으로 추천해 본다.

-점점 극단적으로 분열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과 원로의 역할은 무엇인가.
  언론과 헌법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도자기 가게에 뛰어든 황소와 같다. 다 박살낸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정론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어 중 하나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그 아래에 따르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닮으려 노력했다. 큰 바위 얼굴처럼 말이지. 그렇게 찾은 것이 처음에 이야기한 매천 황현 선생이다. 그리고 또 함석헌 선생,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한경직 목사 등이다.

-거듭 말하는 소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자칫하면 폭력적이거나, 독선 아닌가.
  소신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소신은 자기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팩트 앞에서는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원칙 앞에서는 그 자리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신이어야 한다.
  소신이란 독선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한다. 반대하고, 제잘난 척하고, 독선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나는 증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적 자유주의의 핵심에는 관용이 있다. 민주주의의 진짜 실력은, 내 편을 보호할 때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자유까지도 지켜줄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의 참된 원리가 작동한다.

-국민통합위원장의 일은 끝나고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바다는 파도를 품는다”는 말을 좋아한다. 파도만 보면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사라진다. 하지만 조금 멀리서 보면, 그 파도는 바다 안에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진보 보수, 지역, 세대, 계층, 젠더… 이 갈등들은 하나의 파도라고 본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나는 그 바다가 헌법이고, 우리 공동체 정신인 관용과 진실, 자제, 포용의 정신이라고 본다. 나는 어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젠 안 하려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렇게 살 생각이 없다. 평생 읽고 경험하고 고민한 것을 글과 강연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권력이 선을 넘는다고 판단될 때에는 어느 정권이든 어떤 상황이든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쓴소리만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 생각도 없다. 우리 사회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지 않고도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내 역할 중 하나라고 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단정하지 말아 달라고 국민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파도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바다에 속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젊어서는 파도와 싸웠다. 이제는 파도를 품는 바다가 되고 싶다. 바다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방향까지 잃는 것은 아니다. 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바로 헌법이다.
  끝으로, 향후 추구하고자 하는 내 삶의 방향을 말해 본다. 명말 청초의 선비 장조라는 사람이 쓴 ‘유몽영’에 나오는 명구다. 능한세인지소망자 방능망세인지소한(能閒世人之所忙者 方能忙世人之所閒), 세상 사람들이 분주하게 쫓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그들이 소홀히 여기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 이제는 남들이 쫓는 것을 쫓지 않을 자유를 갖고 싶다. 즉 명예, 부, 이익에서 거리를 두면서 학문, 문학, 예술, 사색에 몰입하고자 한다.
  내가 큰 바위 얼굴까지는 아니지만, 귀감이 될 만한 원로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이렇게 길게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 약력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1978년 전북대 법학과 졸업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1980년 법제처 사무관 및 법제관(1980~1989)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7기)

1989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1989~1994)

1991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1998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 경실련 사무총장(1998~2001)

2003년 감사원 부정방지대책 위원장(2003~2004)

2008년 법제처장(2008~2010)

2011년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현)

2025년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2025~2026)

이경원 이슈&인터뷰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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