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관리 종주국 한국, 지금 해야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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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빗물관리 종주국'이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물관리에서 빗물이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말하는 '빗물관리 종주국'은 우리가 과거에 훌륭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의 강우관측 역사를 오늘의 물관리와 국제협력으로 연결하고, 정부와 학계,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빗물관리 모델을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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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영 기자]
대한민국을 '빗물관리 종주국'이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물관리에서 빗물이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홍수와 가뭄, 상수도와 댐은 익숙하지만, 정작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자체를 중요한 물 자원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58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종 시대 조선은 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그 결과를 국가의 농정과 물관리에 활용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필자가 대한민국을 '빗물관리 종주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는 이 빗물관리 지혜가 2026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어떻게 다시 세계의 관심과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일찍 비의 중요성을 알고 국가적으로 관리했던 나라에서 오늘날 우리는 왜 빗물을 잘 보지 못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세계의 빗물 전문가들이 프놈펜에 모였다
2026년 9월 1일부터 6일까지 캄보디아 프놈펜과 시엠립에서 제4차 IWA 빗물관리 국제학술대회(4RWHM 2026)가 열렸다. 주제는 'Rainwater for Tomorrow: Water, Climate, Culture'였다. 빗물을 단순히 모아서 사용하는 기술로만 보지 말고 물과 기후, 문화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자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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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물 관련 기관들, 프놈펜에서 세계와 함께하다 2026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4차 IWA 빗물관리 국제학술대회(4RWHM 2026) 행사장. 'Rainwater for Tomorrow: Water, Climate, Culture'라는 주제 아래 국내외 협력기관과 Knowledge Partner들의 로고가 함께 걸렸다. |
| ⓒ 한무영 |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한국의 물 관련 학회와 기관에도 Knowledge Partner, 즉 '지식파트너'로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대한상하수도학회, 한국수자원학회, 한국물환경학회, 대한환경공학회,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응용생태공학회, 적정기술학회 등 여러 학술단체가 뜻을 같이했다. 한국물포럼, 한국환경한림원, KCL, (사)물과생명(Rain For All), 환경재단, 에코나우 등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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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놈펜에 모인 빗물 지식파트너들 학술대회에 함께한 국내외 기관들의 로고. 한국의 물·환경 관련 학회와 기관들도 Knowledge Partner로 참여했다. 이제 이러한 지식의 연대를 실제 행동의 연대로 발전시키는 것이 다음 과제다. |
| ⓒ 한무영 |
우리는 측우기를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과학문화유산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측우기의 진정한 가치는 오래된 기구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비를 재려고 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백성의 삶을 지키고 농사를 돕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며 나라가 물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비를 측정했다. 다시 말해, 측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물 관리를 위한 측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말하는 '빗물관리 종주국'은 우리가 과거에 훌륭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역사를 가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홍수라고 부르고, 너무 적게 내리면 가뭄이라고 부른다. 도시에서는 비가 내리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하수도로 내보내려고 하면서, 정작 물이 부족해지면 먼 곳에서 다시 물을 끌어온다. 그러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그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물 자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를 측정하고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가능한 한 떨어진 곳 가까이에 머물게 하며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자연의 물순환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585년 전의 지혜를 오늘의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프놈펜에서는 이미 작은 행동이 시작됐다
프놈펜 학술대회에서는 논문만 발표하지 않았다. 빗물과 식수, 도시와 기후, 교육과 문화에 대해 토론했고 레인스쿨 학생들도 참여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비의 가치를 영상으로 만들어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국제 빗물 비디오 콘테스트에는 모두 16편이 출품됐다. 이 행사의 목적은 단순히 1등을 가리는 데 있지 않았다. 학생과 청년, 학교와 시민들이 자신의 눈으로 비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비의 가치를 사회에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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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물은 기술을 넘어 교육과 문화의 문제 9월 3일 열린 Education & Cultural Forum. 프놈펜 학술대회에서는 빗물을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문화, 시민의 행동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논의했다. |
| ⓒ 한무영 |
그 현장에서 필자의 생각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빗물관리의 오랜 역사적 유산을 가진 대한민국이 이 국제적인 움직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식 파트너에서 행동 파트너로
답은 반드시 거대한 국가사업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지식파트너로 참여한 기관들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작은 행동 하나씩만 시작해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물 관련 학회에서는 빗물에 관한 특별세션을 열 수 있고, 연구자는 우리나라의 빗물관리 경험과 연구결과를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다. 교육기관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비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가르칠 수 있고, 학교 한 곳에서는 자기 학교 지붕에 떨어지는 비를 직접 측정해 볼 수도 있다. 기업이나 기관 하나가 레인스쿨 한 곳과 연결될 수도 있으며, 시민단체와 언론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좋은 빗물 사례를 찾아 사회에 알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식 파트너(Knowledge Partner)는 자연스럽게 행동 파트너(Action Partner)가 된다.
한국이 잘하는 ODA에 집중한다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에 정부와 국회가 함께한다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빗물을 홍수 때 처리해야 할 물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중요한 분산형 수자원으로 바라보고, 물관리와 기후적응, 교육과 국제개발협력 정책 속에서 그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ODA(공적개발원조)에서도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물 문제를 한국이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경험을 축적해온 분야, 그리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현지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세계와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빗물관리는 그런 분야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세종시대부터 이어진 강우관측의 역사적 자산에 현대의 빗물관리 기술과 연구, 그리고 레인스쿨에서 축적하고 있는 교육과 운영 경험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설을 건설해 넘겨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의 지붕과 비, 자재와 사람을 활용해 스스로 운영하고 다른 학교와 마을로 확산할 수 있도록 돕는 ODA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국회도 이러한 가능성을 논의할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의 강우관측 역사를 오늘의 물관리와 국제협력으로 연결하고, 정부와 학계,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빗물관리 모델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대규모 사업 하나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이 잘하는 것을 찾아 집중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나라와 나누자는 것이다. 과거의 빗물관리 지혜를 오늘날의 기후위기와 물 문제를 해결하는 대한민국의 자산으로 발전시켜 세계와 나누자는 것이다.
프놈펜의 약속 아부다비로
이제 다음 무대는 1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2026 유엔 물회의다. 세계는 SDG 6, 즉 모든 사람이 안전한 물과 위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하늘에서 각 마을과 학교, 집의 지붕으로 직접 배달되는 빗물을 얼마나 진지하게 물 자원으로 생각해 왔는가.
댐도 필요하고 상수도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물 문제의 해답이 반드시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학교와 작은 마을, 섬과 산간지역, 재난지역에서는 바로 그곳에 떨어지는 비를 안전하게 모아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프놈펜에서 확인한 레인스쿨의 경험도 그래서 중요하다. 거대한 물 정책에 대한 논의가 어린이 한 명이 마시는 깨끗한 물 한 잔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예산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업만 바라보지 않고, 지금 당장 한 학교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물관리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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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놈펜의 약속을 다음 세대로 4RWHM 2026에 참가한 전문가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빗물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고 작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프놈펜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
| ⓒ 한무영 |
585년 전 조선은 비를 측정하고 그 정보를 국가가 활용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자랑하는 것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지혜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프놈펜에서 만난 학생들은 빗물을 배우고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직접 빗물을 모아 사용하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영상으로 비의 이야기를 전했다. 세계의 전문가들은 물과 기후, 문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의 여러 물 관련 학회와 기관들도 지식파트너로 그 여정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그 이름 뒤에 작은 행동 하나씩을 붙이면 어떨까. 세종시대의 빗물관리 지혜가 박물관 속 역사에서 끝나지 않고 프놈펜을 거쳐 아부다비로, 그리고 세계의 학교와 도시로 이어졌으면 한다.
'빗물관리 종주국'이라는 이름은 과거의 업적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지혜를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덧붙이는 글 | 이번 프놈펜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국내 여러 물 관련 학회와 기관에 지식 파트너로 함께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많은 기관이 기꺼이 뜻을 같이해 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필자가 바라는 것은 백드롭에 기관의 로고 하나를 더 붙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회에서 빗물을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연구자 한 사람이 새로운 사례를 만들고, 학교 한 곳이 자기 지붕에 떨어지는 비를 측정하고, 학생 한 명이 "이 물을 왜 그냥 버리지?"라고 질문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큰 변화가 반드시 큰 사업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85년 전에도 시작은 단순했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제대로 재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제도가 되었고 역사가 되었다. 2026년 프놈펜에서도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다. 이제 그 씨앗을 아부다비로 가져가고 더 많은 나라와 학교에 나누어 주고 싶다. 언젠가 9월 3일이 세계 사람들이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비의 가치를 생각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행동 하나를 시작하는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때 대한민국이 '빗물관리 종주국'이라는 이름을 과거의 자랑이 아니라 오늘의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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