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은결, “나의 가장 강력한 주문은 ‘될때까지’” [송원섭의 와칭]

한국을 대표하는 마술사 이은결(44)은 ‘온리 원’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실력 뿐만 아니라, 마술을 대하는 태도가 여느 마술사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일루셔니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올해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에 한창인 이은결을 만나 봤습니다.
일류 마술사의 공연은 바로 코앞에서 봐도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대체 마술이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이은결이 생각하는 ‘마술의 본질’이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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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마술계에서 트릭의 정체는 무엇보다 소중한 비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 이은결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아무리 꼭꼭 감춘다고 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과연 비밀이 있을까요? 저는 마술을 보는 분들이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마술을 하나의 연출적 완성도로 평가해 주시면 좋겠어요.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에 사용된 특수 촬영 기법들을 다큐멘터리로 공개한다고 해서 영화의 감동이 줄어들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관객이 ‘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연구하고 노력했구나’ 하고 느껴 주시면 정말 큰 칭찬일 것 같아요.”
그의 30주년은 데뷔 30년째가 아니라 ‘마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30년’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6년, 이은결의 아버지는 어느 날 신문에서 마술 학원 광고를 보았습니다. ‘마술을 배우면 대인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광고 문구를 본 아버지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들을 떠올렸고, 그날로 이은결을 학원에 등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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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엄마가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평택 미군 부대 앞의 보육원에서 일하셨는데, 아침에 저를 데리고 가서 저녁때 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매일 있었으니까 저도 거기서 산 셈이죠. 저는 항상 거기서 만난 아이들을 웃겨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때 꿈은 코미디언이었죠.”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은결은 먼저 빠져나와 정문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다른 아이들이 이은결 혼자 엄마와 함께 집에 가는 걸 보면 슬퍼할 것 같아서였죠. 그 시절부터 서사와 의미를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미군 기지 앞이다 보니 미군 아저씨들을 주변에서 수시로 볼 수 있었어요. 그때 의자에 앉아 있으면 힘센 아저씨들이 ‘비행기를 태워 준다’면서 여럿이 의자째로 저를 들고 달리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기분요? 마냥 좋았죠.”
그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인 ‘플로팅 인 더 스페이스’는 바로 이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무대에서 그의 공연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플로팅 인 더 스페이스’는 그날 관객 중에서 6~7세의 어린이 한 명을 선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선정된 어린이는 평생 자신이 우주를 날았던 기억을 간직하게 됩니다.
“참가할 어린이를 찾을 때, 정말 관상을 잘 봐야 해요(웃음). 씩씩하게 손을 들어도 막상 무대에 올라오면 얼어붙어서 우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를 찾아야 하는데, 많이 하다 보니 어린이 옆에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함께 보면 성공률이 더 높아지더라고요.”
이은결의 기준은 ‘어린이와 함께 동심으로 즐기고 있는 표정이 역력한 분들’입니다. 부모에게서 ‘우리 아이를 올려 보내야지’ 하는 욕심이 느껴지면 어쩐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사실 그의 마술 세계에서 ‘동심’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2019년에 제가 올렸던 공연의 제목이 ‘디 일루전(The Illusion)’이었거든요. 그때 부제가 ‘순수로의 회귀’였어요. 가끔 객석을 보면, 공연을 즐기기보다 ‘오늘 내가 네 트릭의 진실을 밝혀내고 말겠다!’라는 자세로 눈을 치뜨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공연을 보다가 결국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시면 보람을 느끼죠. 제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마음속 상상력을 해방하는 계기를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일류 마술사를 만드는 건 혹독한 고민과 연습
하지만 이런 기술들을 익히고 다양한 마술을 고안해 내는 과정은 동심과는 거리가 먼, 혹독한 노력과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스승이 누구냐는 질문에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유명한 마술사들의 영상을 보면서 분석하고 독학으로 단서를 찾아다니며,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노력과 고민’을 강조하는 스타일 때문에 한때 그는 ‘나는 좋은 스승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을 제자로 받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친구들이 자기만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더 노력하고, 더 고민하라’고 독려했어요. 그런데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실망하고 중간에 마술을 포기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게 저 때문인 것 같아서 후회를 많이 했죠.”
그래서 언젠가부터 유망주들을 만나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기보다는 약간 거리를 두고 조언자로 남는 쪽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만약 아들이 마술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하고 싶다면 시켜야죠. 그런데 제가 했던 것처럼 하라고 하면, 아마 걔도 안 할 거예요(웃음).”

계속해서 끝없는 연습과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과연 이 사람이 어려워서 포기한 일은 어떤 것이 있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없어요. 지금까지 ‘혹시 이런 걸 무대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끝내 실패한 건 하나도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될 때까지’ 하거든요. 하다가 안 되면 잠시 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어도 결국은 다 해냈어요. ‘될 때까지’ 하면 다 돼요.” 문득 ‘그릿(Grit)’으로 유명한 앤절라 더크워스의 ‘재능에 노력을 곱해야 기술이 되고, 기술에 다시 노력을 곱해야 업적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은결에게 ‘정말 초능력이 있다면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은가’를 물었을 때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있으면, 그걸로 세계를 정복하고, 그래도 취미로는 마술을 하고 있을 것 같네요(웃음).”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사실 그는 이미 초능력을 갖고 있더군요. 바로 ‘부단한 노력’이라는 이름의 초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을 더 많은 사람이 ‘동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용하는 모습이 고마울 뿐입니다.

SBS TV에선 25일 저녁 ‘THE 이은결 - 추석 특집 매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지난 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의 30주년 기념 공연 하이라이트를 방송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마술을 제대로 경험하기에 TV 화면은 부족할 수밖에 없죠. 부디 더 많은 분들이 그가 만들어내는 '현장의 공기'를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2026.10.2~4,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2026.10.30~11.1, 용인 포은아트홀 ▲2026.12.4~6,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2026.12.11~13, 평택아트센터 대공연장 ▲2026.12.24~26,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2027.1.15~17, 대구 아양아트센터아양홀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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