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넘어 웰니스로…114조 중국 뷰티시장을 다시 본다

김매화 2026. 9.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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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의 색보다 성분을 따지고 샴푸를 고르면서 두피 건강을 살피며, 잠을 얼마나 잘 잤는지에 따라 그날 사용할 화장품을 추천받는다. 2026년 한국 뷰티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웰니스(Wellness)’다. 스킨케어·메이크업·헤어·바디로 나뉘었던 전통 화장품의 경계가 무너지고 피부 건강과 영양·의료·수면까지 하나의 뷰티 산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단순히 더 예뻐지기 위한 화장품에서 몸과 생활 전체를 관리하는 산업으로 시장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다.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에서 한 고객이 K-뷰티 브랜드 '구달'의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고객들은 올리브영에서 직원의 개입 없이 필요한 상품을 체험하고 둘러보는 '발견형 쇼핑'을 할 수 있다. 노유림 기자

대표적인 변화가 ‘스키니피케이션(Skinification)’이다. 모든 뷰티 제품을 스킨케어처럼 만드는 흐름이다. “두피도 피부”라는 개념 아래 히알루론산 등을 넣은 두피 세럼이 보편화됐고 나이아신아마이드와 같은 기능성 성분을 쿠션이나 블러셔에 넣기도 한다. 과거 소비자가 색상과 커버력, 브랜드를 보고 메이크업 제품을 샀다면 지금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고 피부에 어떤 효과가 있는가까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과 스킨케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셈이다.

여기에 화장품과 의약품이 결합하는 ‘메디컬 웰니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약사와 의사가 유튜브에서 피부 성분을 설명하고 소비자는 화장품 매장뿐 아니라 약국에서도 피부 관리 제품을 찾는다. 뷰티 전문가 김지연 디렉터의 소개에 따르면 올리브영에서 제약회사 기반 브랜드의 매출 비중은 2020년 1분기 0.7%에서 2026년 1분기 12.3%까지 높아졌다. 올리브영이 제약 기술 기반 제품을 모은 ‘어드밴스드 더마’ 영역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뷰티 산업의 영역은 ‘바르는 것’에서 ‘먹는 것’과 ‘자는 것’으로도 넓어진다. 피부과 시술로 알려진 리쥬란은 화장품뿐 아니라 먹는 콜라겐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올리브영도 이너뷰티와 수면 관련 상품까지 웰니스 카테고리를 넓히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에이슬립은 스마트폰 마이크로 수면 중 호흡을 분석하고 이를 피부 상태와 연결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화장품 한 병의 효능을 경쟁하던 시장이 소비자의 식사와 수면, 건강 상태까지 아우르는 ‘생활 루틴’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판 올리브영이라 불리는 watsons에 각종 화장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바이두캡쳐


114조원 중국 시장, K뷰티의 경쟁 상대가 달라졌다

자 그렇다면 이제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 보자. 유로모니터(Euro monitor)에 따르면 중국의 뷰티·퍼스널 케어 시장은 2025년 전년 대비 2% 성장해 5525억7800만 위안, 한화 약 114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경기 둔화와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중국 소비자들은 임상적 근거가 있는 항노화와 예방형 관리 제품에는 지출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연구개발과 제품 출시 속도를 높이면서 글로벌 브랜드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고 유로모니터는 분석했다.

프로야는 항노화와 기능성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강화하며 중국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올라섰다. 바이두캡쳐


K뷰티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도 여기에 있다. 과거 중국시장에서 경쟁 상대가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프로야(珀莱雅), 위노나(薇诺娜) 등 중국 토종 브랜드가 직접적인 경쟁자로 성장했다. 프로야는 항노화와 기능성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강화하며 중국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올라섰고, 위노나는 민감성 피부와 피부 장벽이라는 전문 영역을 집중 공략해 중국의 대표적인 더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가격이 싼 ‘중국산 화장품’이 아니라 성분과 효능, 연구개발을 앞세운 브랜드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뷰티 시장에서 ‘한국산’이라는 프리미엄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그럼에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27.3% 증가한 70억 달러로 역대 상반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이 14억5000만 달러로 최대 수출국이 됐지만 중국도 10억1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14.4%를 차지했다. 중국 위주였던 K뷰티가 미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중국은 여전히 포기하기 어려운 핵심 시장인 셈이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중국 소비자를 포함한 외국인이 한국에서 K뷰티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올리브영의 올해 1~8월 국내 오프라인 매장 외국인 구매액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보다 1조원 돌파 시점이 석 달 빨라졌다. 외국인 매출 비중도 2022년 2%에서 올해 8월 33%까지 높아졌다. 중국은 미국·일본·싱가포르·태국과 함께 구매액 기준 상위 5개국에 포함됐다. 외국인 고객은 평균 6개 상품을 구매했고 35%는 한 번에 10만원 이상을 결제했다. 인기 품목 역시 기초화장품에 이어 색조, 헤어 케어까지 다양해졌다.

이는 과거 명동 면세점에서 유명 한국 브랜드를 대량 구매하던 중국 관광객의 소비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지금은 한국에 와서 올리브영 매장을 직접 둘러보고 한국 소비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중소·인디 브랜드와 더마 제품, 헤어·바디 제품까지 탐색한다. 한국 여행 자체가 새로운 K뷰티 제품을 발견하는 일종의 ‘쇼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소비의 대상도 하나의 유명 브랜드에서 한국의 뷰티 루틴과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 화장품’ 아닌 ‘한국식 솔루션’을 팔아야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K뷰티의 경쟁력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중국 로컬 기업과 가격이나 마케팅 물량으로 정면 승부하기보다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피부과학과 더마 화장품, 피부 시술 후 관리, 이너뷰티, 수면과 AI를 연결하는 뷰티테크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묶을 필요가 있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들에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강점이다. 쿠션 파운데이션에서 피부 진단 기술, 슬립테크까지 한국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과 서비스가 해외로 확산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K뷰티의 다음 승부처는 화장품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다. 해외 소비자가 자신의 피부 문제와 건강 상태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한국식 웰니스 루틴’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에 달렸다. 한류 스타와 한국산이라는 이미지가 K뷰티의 첫 번째 중국 시대를 열었다면, 두 번째 시대의 경쟁력은 성분과 임상 근거, 의료·건강 기술, 그리고 이를 소비자의 일상으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114조원 중국 뷰티 시장에서 K뷰티가 다시 성장하려면 ‘한국 화장품’을 파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이 만든 뷰티 솔루션’을 팔아야 한다.

김매화 기자 jin.meihu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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