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대 노정윤 “뇌경색 숨긴채 투병...홍명보 병문안도 거절”

1990년대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노정윤(54)이 오랜시간 침묵을 깨고 세상 앞에 섰다. 그가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27일 일본 매체 넘버웹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그는 반신마비를 딛고 다시 돌아왔다.
노정윤은 한일 관계가 지금과 달랐던 1993년 K리그 유공 대신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인 J리거 1호로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듬해 전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J리그 세레소 오사카, 아비스파 후쿠오카, K리그 부산, 울산에서 활약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출전했다. 독일 축구선수 로타어 마테우스에 빗대 ‘노테우스’라 불렸던 그는 2006년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다.

그는 2019년 1월 몸에 이상을 느껴 링거를 맞으러 가는 길에 병원 앞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노정윤은 “뇌경색이었고, 정말 죽을 뻔했다. 머리를 절개하는 큰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반신이 마비돼 매일 침대에 누워 지냈다”고 회상했다. 급히 귀국한 가족들을 학업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려 보낸 뒤 그는 홀로 병마와의 처절한 사투를 시작했다.
재활치료를 하루 3회로 늘렸고, 휠체어에서 홀로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웠는데도 병원 지하부터 6층까지 계단을 하루에 7번씩 오르내렸다. 그는 “오른손을 전혀 쓸 수 없어 난간을 붙잡고 이동했다. 병원 사람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하더라. 재활운동만 주구장창 해대니까”라고 털어놓았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치열했던 승부사는 병상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절 형제처럼 지냈던 모리야스 하지메 현 일본 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감독이 병문안을 오겠다고 연락했지만, 나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손을 내저었다. 노정윤은 “몇몇 사람에게만 투병 사실을 알렸던 터라 조용히 견디내고 싶었다”고 했다.
11개월만인 2019년 12월 퇴원한 뒤에도 그는 사투를 멈추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캄캄한 밤길을 목발을 짚고 걸으며 감각을 되살렸다. 고령의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외국에 있다고 둘러댔으나, 2023년 끝내 투병 사실을 전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세상에서 떠나보냈다. 장례식장에서야 어머니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아들을 처음 보고 크게 놀라셨다고 한다.

그는 선수 시절처럼 끈질기게 다시 일어섰다. 여전히 오른쪽 몸에 마비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혼자서 지하철을 탈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지난달 J3리그 오사카의 아시아 전략 앰버서더에 위촉돼 다시 축구계로 돌아왔다. 자신이 험난하게 개척했던 한일축구 가교를 다음 세대로 이어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노정윤은 한국축구를 향한 애정 어린 고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일본축구는 한 단계가 아니라 두 단계 위다. 대표팀만 뜯어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 프로팀부터 바꿔야 한다”며 “한국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민구단이 많은데, 단체장 4년 임기가 끝날 때마다 구단 대표와 직원이 싹 물갈이된다. 10년, 20년, 30년,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비전을 세울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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