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서도호를 '집 만드는 작가'라 부르면 절반만 맞다

김희윤 2026. 8. 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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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64)를 설명하는 가장 편한 말은 '집 만드는 작가'다. 서도호는 집을 만들어 온 사람이기 보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30년째 의심해 온 사람에 가까웠다.

서도호 하면 으레 떠올리던 천 집이 한 점도 없었다.

집을 충실하게 복원했는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라니, 서도호다운 심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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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서 30년 작업 500여점 한자리
접어 들고 다니던 방에서 가족의 주머니까지
예순넷에 달라진 '집'의 질문

서도호(64)를 설명하는 가장 편한 말은 '집 만드는 작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서울과 뉴욕, 런던에서 살았던 집을 알록달록한 천으로 실물처럼 다시 짓는 한국 작가.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먼저 알아본 세계적 설치미술가. 2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펼쳐진 그의 30여 년 작업 500여 점을 보고 나니, 이 익숙한 설명이 조금 게을러 보였다. 서도호는 집을 만들어 온 사람이기 보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30년째 의심해 온 사람에 가까웠다. 전시는 27일 일반에 공개된다.

서도호 작가가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구나 이 작가는 2년 전에는 집을 치워버렸다.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에서였다. 서도호 하면 으레 떠올리던 천 집이 한 점도 없었다. 그는 당시 천 작업이 자신을 대표하게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대신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모형과 도면, 드로잉을 내놨다. 나를 집 만드는 사람으로만 보지 말라는 항변처럼도 들렸다.

2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정반대다. 집이 돌아왔다. 그것도 크게 돌아왔다. '둥지/들'은 길이만 22m다. 서울과 뉴욕, 런던, 베를린에서 살았던 집의 문과 방, 복도를 이어놓았다. 색깔 고운 천 건축이니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주소를 쓸 수가 없다. 실제 세상에는 없는 건축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도시의 복도와 문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 집을 충실하게 복원했는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라니, 서도호다운 심술이다.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더하다. 현재 사는 런던 집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고 지난 집 여섯 곳의 자물쇠,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와 콘센트를 한꺼번에 붙였다. '완벽한 집'이라는 제목과 달리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곤란해할 집이다. 어느 나라 어느 주소의 집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여러 집이 기억 속에서 그러하듯 마구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전시 입구 쪽에 놓인 32년 전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미국 유학 시절 만든 '516호/516호-I/516호-II'(1994~1995). 자신이 살던 방을 옥양목으로 정확히 재고 재단했다. 지퍼까지 달았다. 고정돼 있어야 할 건축을 맞춤 양복처럼 만들었으니, 필요하면 접어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훗날 서도호를 유명하게 만든 천 집의 첫 문장이 여기 있었다. 젊은 유학생에게 집은 '들고 갈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었다.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 서도호가 여러 도시에서 살아온 집의 문손잡이와 스위치, 콘센트 등 세부를 현재 거주하는 런던 집의 구조 위에 겹쳐 만든 작품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기억이 한 채의 집 안에서 포개진다. 국립현대미술관

그런데 예순넷의 서도호에게 집은 조금 다른 물건이 된 모양이다. '러빙/러빙'에서는 어린 시절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벽과 문, 창호에 종이를 붙이고 손으로 문질러 표면을 떠낸다. 러빙(rubbing·문지르기)과 러빙(loving·사랑하기). 작가는 '러빙/러빙: 서울 집'을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집을 통째로 들고 가려던 사람이 이제는 그곳의 피부를 만져 흔적을 남긴다. 개인의 집에서 시작했던 작업은 철거되는 런던의 공공주택 '로빈 후드 가든'으로도 향한다. 자기 기억만 귀한 게 아니라 남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도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500여 점 중 크기로는 한참 밀리는 신작 하나가 오래 남는다. '사랑의 기억'(2026). 서도호 자신의 코트 안감에 가족들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가 수십 개 붙어 있다. 그 안에는 가족과 관련된 작은 물건을 넣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부성애' 작업이다. 22m짜리 집이 코트 안주머니까지 줄어든 셈이다. 같은 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가나자와 버전)’(2012). 서도호가 뉴욕에서 살았던 아파트의 복도와 계단을 실물 크기의 반투명 천으로 재현했다. 전체 유닛은 오는 12월18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에서 공개된다. 전택수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이 변화 때문에 서도호를 오래 따라다녔던 '노마드',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설명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틀리지 않는다. 서울에서 자라 미국으로 유학했고 뉴욕과 베를린, 런던 등을 오가며 살았으니 그의 집이 이동에서 출발했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예순넷의 작가는 떠나는 방법만큼이나 떠난 뒤에도 따라오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가족, 다른 사람, 없어진 장소, 몸에 남은 기억 같은 것들이다. 이동의 작가라고만 부르기에는 짐이 꽤 많아졌다.

전시장 밖 '시드 뱅크'에는 어린 시절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부터 대학 졸업작품까지 그 유명한 '서도호'가 되기 전의 물건들이 놓였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 1994년의 '516호'가 있다. 방에는 지퍼가 달려 있다. 접어 들고 떠나기 위해서였다. 32년 뒤 전시 끝의 코트에는 가족의 주머니가 달려 있다.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408 409 런던 E14 0HG’(2018). 철거를 앞둔 런던의 공공주택 단지 로빈 후드 가든을 기록한 영상작품. 개인의 집에서 출발한 서도호의 시선이 사라지는 공동체의 공간과 기억으로 확장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집을 들고 떠나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의 기억을 몸에 달고 다닌다. 그 두 물건 사이에 서도호의 30년이 있다.

전시는 내년 2월9일까지. 오는 12월18일부터는 뉴욕에서 살았던 아파트의 복도와 계단을 실물 크기로 옮긴 '아파트 A…' 전체 유닛도 서울박스에서 처음 한자리에 공개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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