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서도호를 '집 만드는 작가'라 부르면 절반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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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64)를 설명하는 가장 편한 말은 '집 만드는 작가'다. 서도호는 집을 만들어 온 사람이기 보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30년째 의심해 온 사람에 가까웠다.
서도호 하면 으레 떠올리던 천 집이 한 점도 없었다.
집을 충실하게 복원했는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라니, 서도호다운 심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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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 들고 다니던 방에서 가족의 주머니까지
예순넷에 달라진 '집'의 질문
서도호(64)를 설명하는 가장 편한 말은 '집 만드는 작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서울과 뉴욕, 런던에서 살았던 집을 알록달록한 천으로 실물처럼 다시 짓는 한국 작가.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먼저 알아본 세계적 설치미술가. 2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펼쳐진 그의 30여 년 작업 500여 점을 보고 나니, 이 익숙한 설명이 조금 게을러 보였다. 서도호는 집을 만들어 온 사람이기 보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30년째 의심해 온 사람에 가까웠다. 전시는 27일 일반에 공개된다.

더구나 이 작가는 2년 전에는 집을 치워버렸다.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에서였다. 서도호 하면 으레 떠올리던 천 집이 한 점도 없었다. 그는 당시 천 작업이 자신을 대표하게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대신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모형과 도면, 드로잉을 내놨다. 나를 집 만드는 사람으로만 보지 말라는 항변처럼도 들렸다.
2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정반대다. 집이 돌아왔다. 그것도 크게 돌아왔다. '둥지/들'은 길이만 22m다. 서울과 뉴욕, 런던, 베를린에서 살았던 집의 문과 방, 복도를 이어놓았다. 색깔 고운 천 건축이니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주소를 쓸 수가 없다. 실제 세상에는 없는 건축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도시의 복도와 문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 집을 충실하게 복원했는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라니, 서도호다운 심술이다.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더하다. 현재 사는 런던 집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고 지난 집 여섯 곳의 자물쇠,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와 콘센트를 한꺼번에 붙였다. '완벽한 집'이라는 제목과 달리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곤란해할 집이다. 어느 나라 어느 주소의 집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여러 집이 기억 속에서 그러하듯 마구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전시 입구 쪽에 놓인 32년 전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미국 유학 시절 만든 '516호/516호-I/516호-II'(1994~1995). 자신이 살던 방을 옥양목으로 정확히 재고 재단했다. 지퍼까지 달았다. 고정돼 있어야 할 건축을 맞춤 양복처럼 만들었으니, 필요하면 접어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훗날 서도호를 유명하게 만든 천 집의 첫 문장이 여기 있었다. 젊은 유학생에게 집은 '들고 갈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순넷의 서도호에게 집은 조금 다른 물건이 된 모양이다. '러빙/러빙'에서는 어린 시절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벽과 문, 창호에 종이를 붙이고 손으로 문질러 표면을 떠낸다. 러빙(rubbing·문지르기)과 러빙(loving·사랑하기). 작가는 '러빙/러빙: 서울 집'을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집을 통째로 들고 가려던 사람이 이제는 그곳의 피부를 만져 흔적을 남긴다. 개인의 집에서 시작했던 작업은 철거되는 런던의 공공주택 '로빈 후드 가든'으로도 향한다. 자기 기억만 귀한 게 아니라 남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도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500여 점 중 크기로는 한참 밀리는 신작 하나가 오래 남는다. '사랑의 기억'(2026). 서도호 자신의 코트 안감에 가족들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가 수십 개 붙어 있다. 그 안에는 가족과 관련된 작은 물건을 넣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부성애' 작업이다. 22m짜리 집이 코트 안주머니까지 줄어든 셈이다. 같은 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변화 때문에 서도호를 오래 따라다녔던 '노마드',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설명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틀리지 않는다. 서울에서 자라 미국으로 유학했고 뉴욕과 베를린, 런던 등을 오가며 살았으니 그의 집이 이동에서 출발했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예순넷의 작가는 떠나는 방법만큼이나 떠난 뒤에도 따라오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가족, 다른 사람, 없어진 장소, 몸에 남은 기억 같은 것들이다. 이동의 작가라고만 부르기에는 짐이 꽤 많아졌다.
전시장 밖 '시드 뱅크'에는 어린 시절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부터 대학 졸업작품까지 그 유명한 '서도호'가 되기 전의 물건들이 놓였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 1994년의 '516호'가 있다. 방에는 지퍼가 달려 있다. 접어 들고 떠나기 위해서였다. 32년 뒤 전시 끝의 코트에는 가족의 주머니가 달려 있다.

집을 들고 떠나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의 기억을 몸에 달고 다닌다. 그 두 물건 사이에 서도호의 30년이 있다.
전시는 내년 2월9일까지. 오는 12월18일부터는 뉴욕에서 살았던 아파트의 복도와 계단을 실물 크기로 옮긴 '아파트 A…' 전체 유닛도 서울박스에서 처음 한자리에 공개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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