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직거래 노리는 트럼프, 입으로 ‘비핵화’ 6번 허물었다

이유정, 윤지원, 심석용 2026. 8. 24.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과 손가락이 작게는 한반도, 크게는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SNS 메시지 한 줄로 한·미 연합연습을 확 줄여버린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보냈다. 혈맹이라던 한·미 동맹은 북한과의 직거래에 동원되는 ‘쿠폰 동맹’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핵보유 기정사실화→한국 내 핵무장론 자극과 북한의 오판→북·미 간 한국 안보 사안 거래→한·미 동맹 균열’의 도미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입으로 6번 허문 北 비핵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23일 중앙일보가 지난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날까지 백악관 기자회견과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전수 분석한 결과 트럼프는 24차례, 월평균 1.4회꼴로 북한 관련 메시지를 냈다. 이 가운데 6차례(25.0%)는 ‘핵 전력(nuclear power)’ 3회, ‘큰 핵 국가(big nuclear nation)’ 1회, ‘핵무력(nuclear force)’ 1회, ‘핵무기(nuclear weapons)’ 1회 등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표현이었다.

취임 첫날 김정은을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했고, 올해 4월에는 한국을 겨냥해 “핵 무력 바로 옆 험지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19일에는 아예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했다. 반면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과 세 차례 미·일 정상회담, 한 차례 미·중 정상회담 결과물에는 대체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겼다. 트럼프의 발언과 미 정부 공식 입장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北은 요구 커지고, 南에선 자체 핵무장론 강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22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핵무력의 확대강화 방침을 재천명하고 국방자산을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이 틈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올해 2월 9차 당대회에서 북ㆍ미 대화 재개 조건으로 비핵화 의제 포기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제시했다.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삼지 말라는 요구는 트럼프의 잇단 발언으로 힘을 받은 모양새다. 향후 북한은 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연습 중단을 요구하고, 나아가 주한미군 감축 문제까지 압박할 수 있다. 평소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가 감축 카드를 꺼낼 경우 한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가 조기 종료되는 2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 일대에서 연합 도하훈련에 참가한 미군 장병이 부교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시스

더 큰 문제는 이런 결정을 한국과 협의 없이 밀어붙일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16일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연합연습 축소를 지시했다며 “취소하기에는 늦었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등 한국의 핵심 안보 이슈가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의구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 연합연습 영구 중단이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논의된다면 동맹 체제 자체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내 자강론과 자체 핵무장론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 공동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69.1%)이 자체 핵무기 보유에 찬성했다.

다만 트럼프의 발언은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일 뿐 미국이 비핵화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는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조차 ‘배드 딜’이라며 거부했다”며 “주한미군도 대중 견제 역할이 커진 만큼 완전 철수는 미국이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윤지원·심석용 기자 uu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