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 말한 트럼프, 캐나다에 50% 관세폭탄…카니 “전쟁이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 결렬 뒤 미국이 200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현재 캐나다는 미국과 “전쟁 중”이라며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반면 미국은 캐나다가 유리한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캐나다의 보복 관세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니는 협상 결렬 이튿날인 22일 오전(현지시간) 22분 간의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제안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들이 요구한 것을 내어주지도 않을 것”이라며 “달러에는 달러로, 캐나다는 미국의 새 관세에 동일한 규모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설 뒤 이어진 문답에서 기자가 “총리의 어투가 무역전쟁에 나서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카니는 “왜냐하면 우리가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는다면, 그건 전쟁 중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공격받았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카니는 캐나다가 트럼프의 처벌적 관세에 공격당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미국과 ‘전쟁 중’으로 규정했다”며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질서의 파열을 강조해 반향을 일으켰던 연설 때와 달리 카니가 이번에는 미국을 캐나다와 세계 경제에 위협을 가하는 공격 주체로 명시했다”고 전했다.
양국은 50% 관세 부과와 관련해 최근 합의에 근접한 듯 했지만, 전날 막판 협상이 결렬됐다. 카니는 미국이 “나쁜 합의”를 압박했다며 협상단을 철수시켰고, 미국은 예정됐던 22일 0시부터 관세 부과에 나섰다. 관세는 당초 지난 19일을 기해 발효될 예정이었는데, 트럼프가 시한을 사흘 연장했다. 이에 막판 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됐지만, 결국 파행을 맞았다.
양국은 협상 결렬의 원인을 두고 서로 상대방에 책임을 돌렸다. 카니는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너무 적은 것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카니는 미국 측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관련, 캐나다산 콘텐트와 프랑스어 콘텐트를 진흥하려는 캐나다의 정책을 후퇴시키려 압박했다고 전했다. 또 출판·영화 제작 등 산업에 대한 보조금, 상품 포장에 영어와 프랑스어 병기를 의무화하는 제도까지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는 캐나다의 공용어다.
카니는 프랑스어로 “우리는 미국과 포괄적 합의에 거의 도달했지만, 그들이 입장을 변경했다. 여기에는 프랑스어 및 프랑스어권 문화, 캐나다 문화에 대한 위협이 포함됐다”며 “바로 그 이유로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순간 이번 단계의 협상은 끝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프랑스어와 문화를 보호하는 걸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다.
그간 트럼프는 수차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병합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캐나다에 모욕적인 언사를 거듭해 왔다. 관세 협상에서 프랑스어권 문화까지 문제삼자 캐나다는 이를 정체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결렬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카니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캐나다의 무역 정책을 미국 관세에 맞게 일치시키라며 무역협정 체결 권한을 제한하려는 요구도 했다면서 이를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시도”이자 “주권의 문제”로 규정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밖에도 카니는 미국이 캐나다산 자동차에 부과할 관세를 계산할 때 캐나다산 부품의 가치를 제외해달라는 캐나다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중·대형 트럭의 관세율 인하도 거부했다고 전했다. 알루미늄이나 철강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는 제품 생산 기업에도 별다른 양보를 하지 않았다.
반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철강과 자동차, 목재 등 “캐나다가 민감하게 여기는 품목”의 관세를 인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캐나다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충분히 말했고, 이제 대응 조치를 취했다”며 “우리는 캐나다의 보복에 대응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측이 제시했다는 구체적인 협상안도 공개했다. 미국이 캐나다산 연질목재에 부과한 10% 관세를 철폐하고, 자동차는 미국산 부품이 포함된 차량에 추가 감면을 적용해 관세율을 최저 7%까지 낮추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철강은 일정 물량에 한해 관세를 50%에서 25%로, 알루미늄은 물량 제한 없이 50%에서 25%로 낮추고,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의 관세도 10∼25%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50% 관세도 전면 유예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카니가 미국의 막판 요구를 공개하며 날을 세우자 그 역시 제안의 세부 내용을 밝히며 맞불을 놓은 셈이다. 협상이 결렬됐다고 해도 협상 과정에서 오간 제안의 내용 등을 이처럼 상세히 밝히는 것은 외교·통상 협상 관례에 어긋난다. 양국의 무역 갈등이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가 부과한 수입관세는 캐나다가 매해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의 약 5%에 적용된다. 대상 품목은 하키 스틱부터 와인, 맥주, 우유, 가구, 시멘트 등까지 매우 다양하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은 약 8800억 달러 규모다.
카니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영향을 받는 산업 보호를 위해 오타와 정부가 일부 철강 제품 등에 선별적인 관세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제품과 가전제품, 농업장비, 펄프·제지, 전자제품 분야도 거론했다. 보복 관세 조치는 다음달 8일부터 시행된다.

AP통신은 이번 관세 부과로 양국 모두에서 상품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경제적 여파보다 정치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양국은 캐나다 유제품 시장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 등 민감한 문제를 놓고 수십년 간 무역 갈등을 벌여왔지만, 9·11 테러 이후 캐나다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하는 등 긴밀한 동맹 관계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캐나다를 대하는 방식은 이런 전통적인 협력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라고 AP는 지적했다. “캐나다 국민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트럼프 측근인 피크 훅스트라 주캐나다 미국 대사를 추방하라는 청원에는 24만8000명 가까이 서명했다”면서다.
특히 트럼프가 이번에 관세 부과를 위해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만들어진 법까지 동원한 점을 주목했다.
지난 2월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다고 판결하자 트럼프는 관세를 정당화할 다른 법적 수단을 강구해 왔다. 그리고 “캐나다를 응징하기 위해 대공황 시절 만들어진 조항인 관세법 338조까지 꺼내들기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1930년 미 의회는 전 세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이름을 따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은 세계 교역을 위축시키고 대공황을 더 악화한 것으로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고 AP는 전했다.
특히 338조는 지금까지 실제 관세 부과에 활용된 적이 없었다. 해당 조항은 미 대통령이 미국 산업을 불리하게 대한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 최고 5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조사도, 관세 부과 기간에 대한 제한도 없는 막강한 조항인데, 이를 트럼프가 캐나다에 처음으로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미 언론들은 이번 협상 결렬이 미·캐나다·멕시코 간 자유무역협정(USMCA) 갱신을 위한 미국과 멕시코 간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 이뤄진 점도 주목했다. 미국과 캐나다 간 관련 협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가운데 관세 여파로 협상 개시 자체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유지혜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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