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뵈었던 명진스님, 그가 남긴 말의 무게

김형민 2026. 8. 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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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우자동차가 만든 차 중에 '레간자'라는 게 있었다.

2007년 명진스님이 봉은사 재정 공개를 선언했을 때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전부터 명진의 명성은 들어 알고 있던 바, 그분이 서울의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 강남 땅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도 특이했는데 그 재정을 공개해 버리고 '수행은 수행자가 하고, 살림은 신도들이 꾸리는' 파격적인 실험까지 전개한다니 놀라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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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의 명복을 빌며

[김형민 기자]

과거 대우자동차가 만든 차 중에 '레간자'라는 게 있었다.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3총사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이 차의 마케팅 포인트는 소음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카피가 "소리 없이 강하다". 누군가 종교들이 지닌 부(富)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불교는 레간자야. 소리 없이 강해." 사실 불교는 1주일에 한 번 나오라고 신도들을 닦달하지도 않고 주보를 내서 누가 이만큼 돈 냈어요 광고하지도 않고, 십일조를 내야 천국에 뭐가 쌓인다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리고 그 예외가 좀 덩어리가 컸다.

언젠가 오대산 등산 갔다가 마을 버스를 탔는데 거기서 절 직원들이 돈을 요구하자 일행과 함께 벌떼같이 봉기했다. 승강이하다가 열 받은 절 직원이 잠깐 사무실에 응원(?)을 청하러 내린 순간 마을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액셀을 밟아 버리면서 우리는 뒤풀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월정사뿐이랴. 지리산 천은사는 지방도로를 점거하고 통과비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소리 없이 강하다."

명진스님의 파격 실험
 2007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봉은사 재정 공개를 선언했다.
ⓒ 권우성
2007년 명진스님이 봉은사 재정 공개를 선언했을 때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전부터 명진의 명성은 들어 알고 있던 바, 그분이 서울의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 강남 땅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도 특이했는데 그 재정을 공개해 버리고 '수행은 수행자가 하고, 살림은 신도들이 꾸리는' 파격적인 실험까지 전개한다니 놀라울 수밖에. 근엄한만큼 자신의 살림도 근엄한 비밀 하에 있기를 바라던 스님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명진스님의 실험을 불쾌해 했다. 그 외에도 이리저리 명진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에게 명진을 운동권 좌파라고 한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처럼.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명진스님이 내뱉은 한 방을 듣고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자기 부인이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이라 할 판이다." 즉 네 마음에 안 들면 다 좌파냐?라고 일갈한 것이다. 뒤이은 한 방. "지나가다가 개가 짖어도 좌파 개라고 할 것이다." 일종의 '좌파 공포증'에 걸린 한국의 자칭 우익들의 가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구하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그들의 옆구리를 찔러버린 창날은 그렇게 흔치 않았다. 난데없는 좌파 딱지에 준엄하게 분노하고 명철하게 항변하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말이다.
▲ 2010년 3월 23일 오마이뉴스 기사 안상수의 명진 좌파 운운은 목격자의 증언으로 진실로 드러났다.
ⓒ 오마이뉴스
100억대 봉은사 재정이 공개된 뒤 오히려 신도들은 늘었고 절 재산은 더욱 커졌다. 명진스님은 그렇게 얘기한 바 있다.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탐심을 막는 훌륭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세계일보 2007년 12월 8일) 참으로 간단한 이치다. 무언가를 감춘다는 것은 소유욕의 강력한 발현이다. 즉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치나 간섭에 대한 저항이다. 종국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감춰졌다는 사실 자체가 감춰지는 것이었다. '소리 없이 강하도록' 말이다.

명진은 그 감춤의 성벽 한 귀퉁이를 허문 셈이었다. 아니 봉은사 정도라면 성문 근처의 옹성 하나는 열어젖혔다 할 수 있겠다. 그 뒤 화계사가 재정 공개를 선언했고, 몇몇 절이 그 뒤를 이었으며, 조계종 종단차원에서 체면치레 이상의 재정 공개를 원칙으로 표방했던 상황이고 보면.

다음 생에는 한 시간 이상의 인연이 쌓이길

2007년께였을 것이다. 명진스님과 알고 지내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해 왔다. "명진스님이 너 한 번 불러 오라시는데? 블로그 글 잘 보고 있다고. 내가 친구라고 하니까 한 번 데리고 오라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틈이 나자마자 달려가 명진스님을 뵈었다. 짧은 만남이었고 베풀어 주시는 차맛이 정말 좋았다는 기억 정도가 선명할 뿐이지만, 이런 말씀하신 기억도 난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울게 만들기보다 어렵다고 하잖아요? 열변을 잘 토하는 사람은 많은데 웃기면서 사람들 마음을 잡는 사람들은 드물죠. 중들도 그래요. 무게 잡고 엄숙하려고만 들지. 그런데 결국은 그 무게에 자기가 짓눌리더라고. 그러니까 재미있는 글 많이 써 줘요. 사람들 많이 웃게 하라고."
▲ 명진스님 명진스님의 웃음은 그럴 수 없이 자연스러웠다.
ⓒ 오마이뉴스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야 많다. 웃는 모습이 이쁘다는 사람은 더 많다. 그런데 웃는 모습 외에는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내게 명진스님 뿐이다. 내 앞에서 명진스님은 항상 입을 귀에 걸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그가 입을 한 일(一)자로 다문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오히려 이분이 1000일 기도를 감당한 수행자이고, 때로는 죽비같은 소리 내며 전두환 정권과 싸우고 이명박 정권에 호통치던 그분인가 싶을 정도로 웃음을 얼굴에서 떼지 않았다.

언젠가 울리히 벡 교수가 그를 방문했을 때 하셨다는 말씀은 오히려 요즘 더 귀를 울린다. "무엇인가를 확신할 때가 가장 위험하며, 이것만이 진리라는 생각 등에서 아만(我慢)과 독선이 나온다. 불교의 핵심은 어떤 것이 참 부처인지 모른다는 것이며, 모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종교나 사상이든 다 허구에 불과하다." 무슨 사안이 생기면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들고 스스로 갈라치고 남에 의해 갈라쳐진 채 상대방에게 어떤 낙인을 던질지 골몰하는 세태에서 그 말씀은 얼마나 살가운가 그래서 무거운가.

명진 스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제주도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셨다는 후문이다. 갑작스런 사고가 유감스럽기는 하나 그 마지막 순간 또한 명진스님답다는 생각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에는 한 시간 이상의 인연이 쌓이기를.
 명진스님의 웃음은 그럴 수 없이 자연스러웠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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